요선정 북쪽 강변에는 제명록기적비가 있다. 조선 단종의 선위에 즈음하여 절의를 지키신 원호, 조여, 이수형, 세 분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임금의 안위를 근심하며 치악산에 올라 성수를 기원한 충절의 표상으로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다.
540여 년 동안 보존되어 온 위대한 사적이 불행히도 근년에 도로확장으로 파괴된 것을 1991년 영월충절헌창회에서 이를 안타깝게 여겨 세분 선생후손들과 의논하여 원 위치에서 동남방 100보 가량되는 이곳에 복원하게 되었다. 이처럼 절의 높은 세분 선생의 충절을 영원히 기리고 전국민에게 알리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제명록기적비(題名錄記蹟碑)를 세운다.
<요선정.요선암 들머리의 미륵암>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에는 ‘무릉리’와 ‘도원리’라는 마을이 있다. 강원도에서도 경치가 수려하기로 유명한 이 고장은 그야말로 신선이 살 만한 무릉도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특히 무릉리 산193번지를 중심으로 하는 일대는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그 밑으로는 맑은 강이 흐르는데, 강 아래의 넓은 바위에는 조선시대 중기 문인으로 유명한 양사언(1517~1584)이 쓴 요선암(邀仙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요선정 오르는 길>
요선암’이란 ‘신선이 와서 춤추고 간 바위’라는 뜻이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된 요선암의 아름다운 돌개구멍은 바위가 살아있는 듯한 절경을 만들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남한강의 한 갈래인 주천강 상류로 풍경이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요선암이라고도 불린다.조선시대 요선암에는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다녀갔다. 이들은 요선정(邀仙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풍류를 즐겼다.
<요선정>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서 향촌의 발전과 자손들의 번영을 희구하면서 논의했다. 이곳 무릉도원리에는 요선암에 모여 계를 조직하고, 계의 이름을 요선계(邀僊契)라고 하였다. 요선계는 양반과 평민이 함께 한 마을계로 약 3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요선계는 지금도 봄, 가을로 일 년에 두 번씩 모임을 갖는다.
요선정은 1915년 이곳 주민들이 정자를 세우고 주천 청허루에 보관되어 오던 숙종의 친필시를 이곳에 모셨다. 건물은 앞면 2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앞면 오른쪽에는 이응호가 쓴 ‘요선정’, 왼쪽에는 ‘모성헌’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외에 홍상한이 쓴 청허루중건기, 요선정기, 중수기가 걸려 있다.
주위에는 석탑과 마애불이 있어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흥사 가는 길목에 있는 요선정과 요선암은 풍류좋기로 유명한 주천강에서도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조선 중기에 양사언이 이곳 경치에 반해 큰 바위에 신선이 놀다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기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맑고 시원한 강물에 갖가지 모양의 반들반들한 화강암 바위들이 진풍경을 이루어, 영월의 무릉계곡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선암은 돌개구멍이라고도 부른다.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란 뜻을 가진 의미로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등이 기반암에 들어가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며 기반암을 마모시켜 발달하는 지형이다. 이러한 현상이 유수한 세월동안 반복되어 포트홀 내부를 침식시키는 현상으로 주로 화강암ㅇ이나 사암등 단단한 암석에 잘 발달하며 주로 원형이나 타원형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아래로 는 요선암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구름이 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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