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상해)는 동중국해 연안에 있으며 북으로 양쯔강[揚子江] 어귀와 남으로 항저우[杭州] 및 위판 만[玉盤灣]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면적에는 상하이 시뿐 아니라 주변의 교외지역과 내륙의 농업지역도 포함된다.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도시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상하이는 중국의 항구 중 서방 무역을 최초로 개방한 항구로 오랫동안 중국의 상권을 독점해왔다. 1949년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거대한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점차 늘어나는 중국의 국내 수요에 충당되고 있다. 교외 공업지구와 주택단지가 세워지고 토목공사도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공원과 그밖의 오락시설이 마련됨에 따라 도시가 크게 변모했다. 면적 6,185㎢, 인구는 3천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장가계 여행중 일정상 잠시 머물던 상해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상해임시정부가 있던 곳이다. 상해임시정부는 1918년 미국의 웰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론을 발표하자 신한청년단은 김규식을 대표자로 하여 파리로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의 정당성 및 국제연맹의 동의를 통한 외교독립을 추진하였다. 이때 김규식은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을 논의하는 파리강화회담, 미국의 국민회와 동지회를 흡수한 통합 임시정부를 발족하였다. 1919년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 망명임시정부 중의 하나다. 그해 9월에 통합하여 발족한 통합임시정부는 명목상 한성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승계하였지만 임시정부의 인적·물적 구성은 상해 임시정부 체제로 유지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을 남기셨다. 5000년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은 외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해 나라를 지켜왔으나, 100여년 전 일제에 의한 침략을 겪어야 했던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의 조상들은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미국 등 머나먼 타국까지 전전하며 독립운동을 펼쳤고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독립운동가 이웃마을에 살던 회장님>
나라를 빼앗긴 가난하고 힘없는 민족의 임시정부청사는 생각보다 비좁고 초라해 보였다. 청사 안에는 그 시절 사용했던 방이며, 부엌, 가구나 소품 등을 그대로 진열해놓고 있어 새삼 아픈 역사가 가슴 시리게 한다. 온 국민이 단결하고 노력하여 통일을 이루고 부국강병하여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과 고통을 겪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내 소품들>
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고 찾아간 곳은 상해 여행지 중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타이캉루’다. 타이캉루(泰康路)는 우리나라의 홍대 골목이나 삼청동 혹은 인사동을 연상케 하는 곳으로 처음 이곳이 예술인들의 골목으로 불렸던 명성처럼 골목 입구에는 사진 갤러리들과 공방들이 즐비하고 이색적인 카페, 펍(pub), 전통공예점 등이 즐비해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아기자기한 카페 골목이다.
잡화점들이 많아 특히나 눈이 즐거워지는 곳으로 아침과 밤의 전혀 다른 분위기로 유명하다. 아침에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여유롭고 친근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저녁에는 좁은 골목에 비춰지는 조명 아래 숨겨진 바(bar)의 입구나 골목의 풍경들이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전혀 다른 거리에 와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한낮에 찾아가 이도 저도 아닌 풍경을 둘러보고 남경로로 들어섰다.
남경로는 중국 최대의 번화 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으로 상하이의 명동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총길이만 5km가 넘고 각양각색의 상점과 레스토랑, 백화점, 호텔등이 위치하여 주말이면 발을 디딜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 남경로는 인민공원을 기준으로 동과 서로 나뉘는데, 남경동로에는 제일백화점이라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백화점들과 패션 상점들이 있고 남경서로에는 중국 전통 공예품과 차를 파는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국의 명동에 비견될 수 있는 이곳은 거리 폭이 명동의 두배정도는 되어서 걸어다니기가 훨씬 편하고 또한 차가 다닐 수 없는대신 그 사이로 미니열차가 수시로 관광객과 쇼핑객들을 태우고 다닌다. 또한 거리 중간중간 마다 쉴 수 있는 넓은 의자들이 있어 지친 다리를 쉴 수 있게 해준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님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무척 깨끗하다는 사실인데 자동차와 함께 노점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고 수시로 자동 청소차가 다니며 남경로 여기저기를 쓸고 닦으며 다닌다.
이 번잡한 남경로를 구경하는 것은 그리 흥미가 없다. 공원에 앉아 있으니, 도심의 번화가 인데도 참새떼가 날라와 먹이를 주워먹고 있다. 아쉬운 것은 구두닦이가 다가와 구두를 신은 친구에게 서비스를 하여준다더니 대충 솔질을 하고는 1만5천원을 요구한다.....ㅠㅠ 거리 구경에 별 흥미가 없으니, 아침 먹으면 중앙공원에 모여 앉아 시간을 때우는 노인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가 장가계로 향한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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