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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바고의 <몬족왕궁>과 <쉐모도파고다>

바위산(遊山) 2014. 11. 27. 04:18

미안마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곡창지대로 전세계에 쌀을 수출할 정도로 부유했던 나라였다. 국토의 면적은 한반도의 3배, 인구는 7천만에 육박하며, 비옥한 넓은 평야와 지하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하여 온나라에 황금사원과 파고다가 즐비할 정도로 금 생산이 많고, 나무를 켜는 제제소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5.16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62년 '네윈'이 주도한 군부가 구테타를 일으키며 군부독재정치가 시작되었다.

<3일간 묵었던 호텔>

가난에 허덕이던 우리에게 쌀을 원조해주던 부유한 나라 미얀마, 그러나 새마을운동으로 환경을 개선하고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에 올인한 박정희 대통령과는 달리 사회주의식 군부독재로 50여년을 이어오면서 아시아의 최빈국으로 전락하였다. 같은 군부독재하에서 우리가 눈부신 성장을 한 것에 비하여 바닥으로 몰락한 미얀마를 볼때, 한 나라의 지도자 역할이 국가와 국민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세명대학교 원우회인 민송2기 동문들이 6시간이 넘는 논스덥 비행으로 찾아간 곳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미얀마다. 늦은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의 후질그레 변두리에 자리한 작은 호텔(우리나라 모텔수준)에 도착한다. 이 호텔은 규모는 작으나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대로 깨끗한 편이다. 여장을 풀고, 준비해간 소주 한 잔 찌끄리고는 늦은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창문틀에 도마뱀이 기어다닌다. 이거이야 말로 친 환경적 호텔이 아니던가?   

<일찍 일어난 사람들만 한 컷>

 

 

동남아의 대표적인 찰기 없는 안남미로 지은 푸실푸실한 밥과 향신료가 배인 몇가지 반찬을 뒤적뒤적하다 수저를 내려 놓게되는, 부실한 아침을 대충 마무리하고 찾아간 곳은 양곤에서 북동쪽으로 76㎞ 떨어진 페구강 연안에 있는 몬족유적지가 있는 바고(페구)다. 일찍이 몬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왕국시대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쌀과 목재의 주요집산지로 많은 정미소와 제재소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꽃가게>▲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삼채>▼                                                             ▼<씹는 담배>

양곤에서 바고로 가는 도중에 들린 전통시장은 어수선하다. 비좁은 시장골목과 조금은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먹거리와 잡화들을 파는 상인들과 손님들이 어우러저 매우 북적인다. 특이한 것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삼채의 원산지가 미얀마라는 것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적은대신 입안을 붉게 물들이는 씹는 담배를 즐긴다는 것, 그리고 가는 곳마다 꽃을 팔고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불교나라로 집이나 사원, 심지어는 차량에도 부처상을 장식하고 매일 기도하고 헌화를 하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휴게소 카페>

양곤에서 바고까지는 80km가 채 안되는 거리지만, 비옥한 곡창지대를 가르는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도 2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드럼통에 장작불을 때서 아스팔트를 녹이고 수작업으로 조성한 포도는 로울라 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요철이 심한데다 낡은 중고버스(이곳에서는 양호한 편이라 함)가 요동을 더하여 덜덜거리며 저속으로 달려야 한다. 중간에 휴게소 역할을 하는 카페에 들러 시원한 쥬스와 아이스커피로 더위를 식혀본다. 메뉴판의 음식들은 미얀마 화폐로 1,200~1,500챠트 정도로 우리나라의 환율과 비슷하여 계산하기가 쉽다.

바고(페구)는 5~8세기경 몬왕국의 수도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1057년에는 미얀마족이 세운 파간왕조의 아나우라타 왕이 몬왕국을 정복한 뒤, 3만명의 몬족을 파간 왕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인구가 크게 줄어든 페구는 1287년 파간왕국이 몽골족에 멸망할 때까지 거의 문헌에 나타나지 않았다. 페구는 몬족이 독립을 되찾으면서 1369년 새로운 몬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당시에도 항구였던 페구는 충적평야지대 어디에서나 쉽게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불교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페구는 미얀마가 1635년에 수도를 아바로 옮긴 뒤 주도가 되었다가 1740년 몬족이 반란을 일으켜 독립왕국을 세우면서 그들의 수도가 되었다. 1757년 미얀마의 알라웅파야 왕이 몬족의 영토를 침략하여 그나마 남아 있던 독립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면서 이곳도 파괴되었지만, 종교 건축물들은 전쟁의 화를 피해 손상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1852년 영국에 합병되었으며, 1862년에는 영국령 미얀마가 수립되면서 수도가 양곤으로 옮겨졌다.

<몬족왕궁>

알라웅파야 전쟁과 몬족의 탈출로 이 지역 인구는 또다시 줄어들었다. 영국은 후에 이 지역을 미얀마의 주요한 쌀 생산지이자 수출지역으로 발전시켰다. 페구는 삼림지대인 페구산맥(서쪽)과 시탕강(동쪽)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비옥한 토지에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 유일한 농작물인 쌀이 양곤을 통해 각지로 수출되고 있다. 

<현지가이드 삐삐양>

바고에 도착하여 처음 찾아간 곳은 몬족왕궁이다. 이 왕국은 전화로 소실되어 왕궁터와 기둥의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영국인이 발견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고 한다. 미얀마의 유적이나 파고다가 대부분 그렇듯이 왕궁은 화려한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어 한때 번성했던 몬족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바고는 1970년대 후반 인구 67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몬족은 지난 1,000년 동안 현재의 지역에서 살아왔는데 미얀마에 문자(팔리어)와 종교(불교)를 전한 사람들이 바로 이 몬족이다. 중국 서부지역에서 이라와디 강 삼각주에서 시작되는 저지대 너머 남쪽으로 타이크라 해협까지 흩어져 살았다고 한다. 1057년 남쪽으로 이주해온 미얀마인들이 몬족의 도시 타톤을 정복했으나 1757년까지 왕국이 존속되다가 마침내 미얀마인들에게 정복당했다.

대부분 미얀마어와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몬어(語)를 함께 쓴다. 농업이 주요산업이며 주로 관개를 이용해서 쌀을 경작한다. 마을은 보통 곡물창고와 외양간을 갖춘 4각형 초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곳을 가도 마을 대부분에 사원이 있는데 탑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부처 그림을 모시는 사당, 휴게소나 회의장소는 물론 학교 역할도 한다. 가족은 확대가족보다는 핵가족 단위로 이루어진다. 한편 몬족의 종교인 소승불교는 정령숭배 신앙과 한데 뒤섞여 있다.

<항금마차>

 

 

<발굴된 유물>

 

 

 

 

 

몬족왕궁을 떠나 찾아간 곳은 왕궁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쉐모도 파고다다. 쉐모도파고다는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117m의 높이로 2,200년 전 몬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처음엔 소규모였으나 이후 부처의 치아를 보관하게 되면서 증축을 거쳐 현재의 높이와 규모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곳은 평야지대로 돌을 구하기 어려웠던만큼 흙으로 구운 벽돌로 모양을 잡고 표면을 금으로 붙혀 만들어진 전탑으로 1930년대 지진으로 붕괴되었는데 보수하면서 당시에 떨어진 첨탑 부분을 그대로 장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지진으로 무너진 전탑>

 

 

<부처상에 물을 부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부처가 도를 닦았던 보리수>

 

 

 

 

 

<범종 - 이 곳에서는 누구나 종을 울릴 수 있도록 한다>

 

 

 

 

 

이곳은 대부분 비슷한 탑들이 줄지어 있는데,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비나 기부로 불탑을 세운다고 하며, 우리나라처럼 스님들이나 정부에서 관리를 하지 않고, 소승불교에 전념하는 스님들은 수도원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순수하게 민간단체가 사원을 관리하며 사원이 공원처럼 이용되어 가족끼리 소풍을 와 음식을 먹고 쉬는 유원지 같은 분위기로 누구나 사원에 있는 범이나 북, 징 등을 두둘길 수가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  

3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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