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1경으로 불리우는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황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 서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 한다.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의를 3층으로 석축을 해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 박의림"현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한다. 호반둘레 약 2km, 호수면 158,677m2, 저수량 6,611,891m3,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몽리면적은 289.4정보이며, 보수 당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어 삼한시대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제천시민의 휴식터와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 어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하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이 남아 있다. 의림지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자 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술도 또한 사나왔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 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바가지 퍼 다가 스님을 뒤쫓아 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독이 났으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뒷 광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 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치악기맥이 한강정맥 삼면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흐르며 치악산 감악산 석기암봉을 지나 용두산으로 가면서 제천시 송학면, 제천시 봉양읍, 제천시의 3면 경계점인 피재점(750)에서 동쪽으로 0.3km 지점에 있는 등고선상730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9번군도 피재(530)-등고선상730봉에서 동남방향으로 솔봉(730.8)으로 가는 치악백곡솔봉단맥을 떨구고 서남방향으로 흐르며 백곡산(763.9)이 솔봉과 까치봉을 지나 의림지로 여맥을 가라 앉힌다.
영동지방에는 1m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이나 제왕산을 오르고 싶지만 울마누라는 시큰둥이다. 길은 미끄럽고 산에 오를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그래서 동내 뒤산인 까치봉에 올라 보기로 하고 의림지로 향한다. 의림지 솔밭공원의 노송군락은 온통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솔밭공원 끝머리로 전몰장병 수천명이 안장된 단청이 아름다운 충렬각이 있다. 일년에 12번 제를 지낸다고 하는 충렬각 옆으로 화장실이 있고, 대구에서 올라온 한팀의 산객들이 시산제를 지내고 산행준비를 하고 있다. 충렬각 뒤편으로 까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흰눈을 뒤집어 쓴 노송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걷기에 부담이 없는 유순한 등산로를 타고 오른다. 많은 눈이 내렸지만 포근하여 습기를 잔뜩 먹은 눈이 솔잎과 함께 아이젠을 찬 등산화 밑으로 달라 붙어 성가시게 한다.
<이상은 의림지와 솔밭공원 풍경임>
<까치산 산행들머리>
<등산로 초입>
까치봉은 별로 볼 것이 없는 산이다. 다만 용두산과 함께 빼곡하게 산판을 덮고 있는 노송군락이 일품이다. 처음에 유순하던 등산로는 얼마 가지 않아 된비알로 바뀐다. 된비알은 목조계단으로 바뀌고 다시 된비알이 목조계단으로 바뀌며 까치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사진을 기막히게 찍어 평지처럼 보이지만 까지봉 된비알은 아리랑 고개나 다름없다.
<제1의림지>
<목조계단>
<급경사로>
언 제 : 2014년 2월 9일(일) 눈오다 맑음
어데에 : 제천의 산 까치봉 솔봉(2시간)
누구와 : 마누라
<까치봉 정상>
<산불감시초소>
이 된비알때문에 내가 까치봉을 체력단련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오르다 보면 눈덮힌 송림사이로 의림지가 내려다 보인다. 계속되는 된비알에 내복까지 껴입은 비둔한 하체가 무겁기만하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에서 솔봉까지는 유순한 등산로로 걷기가 매우좋다. 솔봉에서 서울에서 오셨다는 한팀의 산객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까치봉~솔봉능선>
<세명대학교>
<솔봉정상>
<약수터 하산길>
솔봉에서 백곡산까지 가보려다 약수터로 하산을 한다. 점심때도 지났고 물한통 없이 빈손으로 운동삼아 올라왔고 오늘이 마누라 귀빠진 날이라는데 점심도 안먹이고 산판을 헤집고 다니다기에는 후환이 두려운 까닦이다. 약수터 하산길은 매우 가파른데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눈이 수북히 쌓여 있다.
<피재길>
습기를 가득먹은 눈은 낙옆과 함께 아이젠을 찬 발바닥으로 달라 붙는데 보통 3~5cm정도로 두껍게 달라붙어 수시로 떼어내야 하며 아이젠이 무용지물이 되어 줄줄 미끄러진다. 버벅대며 약수터에 도착하여 시원한 약수물로 목을 축인 뒤 피재길을 따라 제2의림지를 돌아 솔밭공원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친다. 공어(빙어)로 유명한 으림지는 며칠간의 포근한 날씨로 얼음이 녹아 북적이던 빙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어졌는데, 제2의림지에 한팀의 빙어 났시꾼들이 얼음판에 자리하여 여유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백곡산 까치봉 등산지도>
<약수터>
<제2의림지>
<제2의림지 빙어낚시 풍경>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산행.여행 > 충 청 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려한 암릉과 기암을 따라 오르는 <학봉> (0) | 2014.03.24 |
---|---|
해안절경을 따라 걷는 서산의 <황금산> (0) | 2014.02.16 |
상고대의 유혹따라 오르는 <금수산> (0) | 2014.01.27 |
청풍호 자드락길 7코스 <약초길> (0) | 2014.01.08 |
박달재에서 맞이하는 갑오년 해맞이. (0) | 2014.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