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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주능선(화북~문장대~입석대)

바위산(遊山) 2011. 10. 10. 17:46

40여년이 다 되어가는 고딩졸업하던 해 여름 속리를 찾으니, 그때는 지금처럼 등산로도 발달되지 않았고 산객이 별로 없는 여름철이라 녹음으로 뒤덮힌 산중은 고요 그 자체로 속세를 떠난 속리의 참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청주가 고향인 만큼 유난히도 많이 올랐던 속리산이지만 마지막으로 오른 것이 족히 7~8년은 된 것 같다. 속리산 아래 팬션을 하는 친구의 놀러 오라는 성화에 친구도 만나 볼 겸, 속리산으로 향한다.

속리산에 도착하여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멀리 청주에 가 있다고 기다리란다. 멍한 기다림에는 소질도 인내심도 없어 홀로 속리산으로 오른다. 화북매표소에 주차를 하고 5천원이라는 비싼 주차료에 투덜거리며 산으로 오른다. 들머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속리산은 그 수려함과 장쾌함에 충분히 산객을 압도한다. 조금오르면 오송폭포가 나온다. 오송폭포를 구경하고 되돌아 나와 성불사로 향한다. 

<성불사와 문장대 갈림길>

 

<오송폭포>

성불사 초입에는 길 양옆으로 앉아 있는 쌍사자 석상이 반기고 '이뭣고' 를 써놓은 돌비석이 보인다. 무어라 써 놓았는지 궁궁하긴 하지만 느지감치 시작한 산행으로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하고 지나친다.

<성불사>

 

<피안불로장생문>

이은상이 노래한 성불사의 밤에 나오는 성불사는 원래 황해북도 봉산군 정방리 정방산(正方山)에 위치한 사찰이라고 한다. 신라 말기인 898년(효공왕 2년)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고, 1374년(공민왕 23년)에 나옹(懶翁)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곳 성불사에도 성불사 노래비가 있다.

 

<성불사>  - 이은상 -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 저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울게 하여라 / 댕그렁 울릴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 끊인젠 또 들리라 소리나기 기다려서 / 새도록 풍경소리 데리고 잠 못이뤄 하노라 

이 노래는 1930년대 작품으로, 민족적 정서와 애수가 담긴 노래이다. 이 노래는 곡의 성격이나 가사의 내용으로 미루어, 어느 한적한 산사(山寺)에서 작곡된 것 같은데 사실은 그가 미국에 체류했을 때, 향수를 달래려고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불사를 한 번 둘러 보고는 다시 갈림길로 나와 산으로 오른다. 아직 단풍이 이르기는 하지만 녹음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것을 보면 단풍철도 그리 멀지 않은 느낌이다.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하고 숲이 울창하여 걷기가 좋다. 화북코스는 속리산의 여러 등산코스 중 문장대로 오르는 가장 짧고 수월한 코스다. 다만 여느 국립공원처럼 등산로를 정비하는라 돌을 깔아 놓아 식상하게 만든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기암이 서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서면 동쪽으로 청화산과 수리봉 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이미 2시가 넘었으나, 점심을 준비하지 못하여 전망대에 앉아 간단히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산으로 오른다.

<전망대>

 

<청화산.시루봉>

 

 

 

<암석지대>

 

 <목조다리> 

 

<초가을 단풍>

 

고도를 높일수록 주변으로 웅장하고 수려한 암봉들이 올려다 보인다. 두번째 전망대인 너럭바위 위에는 부자(父子) 산객이 간식을 먹다가 나의 늦은 등산을 걱정을 해준다. 대부분 하산을 하고 있는데 산에 오르는 모습이 염려되는가 보다.

 

 

 

 

  

 

 

 

오를수록 키작은 관목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산상이 다가옴을 말해준다. 산죽군락을 지나 잠시 오르면 문장대 안부에 다다른다. 오늘 비로봉까지는 둘러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촉박하여 문장대에 오르지 않고 곧바로 문수봉으로 향한다.  

 

 

문수봉에 올라서면 조망이 아주 좋다. 서북으로 문장대를 떠난 산맥이 관음봉을 지나 묘봉과 상학봉으로 뻗어 나가고 남으로 청법대, 신선봉, 입석대, 비로봉을 지나 천왕봉까지 뻗어 나가며 마루금을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수려한 산맥이다.

<신선봉.입석대.천왕봉>

 

<문장대>

 

속리산은 우리나라 8대 명산에 속할만큼 산세가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로 찾는 문장대 길은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산을 좋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식상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나도 속리산을 많이 올랐지만 처음 두번을 제외하고는 법주사~문장대길을 오르지 않고 묘봉이나 입석대나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고는 하였다. 화북코스는 오래전 아내와 함께 오르고 오늘이 두번째 산행이다.  

<속리산 주능선-충북알프스2구간>

 

문수봉에서 신선대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유순한 능선이다. 산상은 서서히 단풍색으로 물들고 기암과 암봉들이 즐비한 주능선의 풍경은 가히 선경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구한 세월을 안고 있는 산, 수억년 아니 그보다도 더 많은 세월을 한 곳에 서서 수없이 많은 비바람에 시달리며, 이렇듯 아름다움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한 산에 비하면 인간의 삶이란 스쳐가는 찰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청벽대>

인생무상이던가, 청법대를 지나 신선봉 휴게소에서 대포 한 잔 하고 헤드렌턴을 점검하니, 밧데리 방전이다. 다행이 휴게소에 밧데리를 팔고 있어 교체하고 입석대로 향한다. 시간상으로 볼 때 야간산행을 면치는 못 할 것 같다.  

 

 

 

 

<멀리 서북능선-충북알프스1구간>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은 부드러운 육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봉우리는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문장대이다. 요즘은 속리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구병산과 속리산을 연계한 "충북알프스코스"도 인기가 있다. 충북알프스는 1구간 : 활목재~문장대(11.29km, 9시간 소요), 2구간 : 문장대~장고개(18km, 12시간 소요), 3구간 : 장고개~고시촌(구병산 주능선, 15.7km, 9시간 소요)의 3구간으로 구분되며 총연장 43.9km로 3일 정도는 잡아야 종주를 할 수가 있다. 오늘 걷는 코스는 2구간코스로 보면 된다.

 

 

언   제 : 2011년 10월 8일(토)

누구와 : 나홀로, 소요시간 : 5시간

어데에 : 속리산 주능선(화북-성불사-문장대-청법대-신선대-입석대-신선대-화북)

 

 

 

 

속리는 추억이 많은 곳이다. 많이 오른 곳이기도 하지만 사연도 많다. 어린시절 입장료가 없어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몰래 숨어든 기억도 있고, 서북능선(묘봉~상학봉~관음봉~문장대) 종주로 피똥싸게 고생을 한 적도 있고 가족(강아지 포함)들과 두어번 오른 기억이 있다. 또한 오래 전 늦은 겨울 아이젠, 스틱, 배낭, 렌턴은 커녕 먹거리나 물한병 없이 맨몸으로 올랐다가 칠흙처럼 어두운 밤에 눈에 빠지고 미끄러지며 이 능선을 걷다가 미끄러운 길을 밤이 늦도록 엉금엉금 기어서 하산한 기억도 있다.

 

 

<신선대>

 

입석대까지 전진한 뒤 다시 신선대로 돌아온다. 비로봉까지가 목표였으나, 해는 서쪽으로 급하게 떨어지고 있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다시 대포 한잔하고 슬며시 지름길을 물으니, 휴게소 화장실 뒤로 비지정 샛길이 있단다. 그러나 험하고 길이 희미하니, 홀로 산행은 위험하여 안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산행경력과 많은 알바 경력을 무기로 주인장의 충고를 무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입석대>

 

그러나 이길은 매우 험하다. 사람하나 겨우 빠져 나갈만한 좁고 가파른 암벽사이를 빠져나가기도 하고, 집채만한 바위돌 틈과 너덜지대를 통과하기도 하여야 한다. 숲이 있는 곳은 그런대로 등산로가 뚜렷하나, 바위돌이 널려 있는 너덜에서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이미 산속은 어둠으로 채워져 간다. 헤드렌턴을 켜고 이리 저리 길을 찾아 버벅대며 하산을 한다.

속리산이란 속세를 떠난 산이라는 뜻일진데, 어둠속에 묻힌 비지정 샛길을 홀로 걷는 것이야 말로 속세를 떠났음이다. 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새소리 바람소리 산짐승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산속은 어둠과 적막에 가두어져 있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점점 둔탁해지는 나의 발자욱소리, 그리고 거친 숨소리 뿐이다. 

어둠을 뚫고 하산하니, 성불사 소각로 자리가 날머리로 나온다. 가득하던 차량은 모두 빠져 나가고 내차만이 텅빈 주차장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신라 "헌강왕"때 최치원이 속리산을 찾아 "도불달인 인달도 산비리속 속리산"이라 하였다. 이는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 사람은 도를 멀리하고 /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라고 읊으니, 속리산이란, 속세를 떠난 산이 아니고 속세가 산을 떠났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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