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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중단된 소요산 미완산행

바위산(遊山) 2011. 8. 3. 21:34

언   제 : 2011년 7월 31일(일)

누구와 : 마누라

어데에 :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노환으로 멀리 포천에 입원하고 계신 작은 어머님 문병을 하러 포천으로 향한다. 문병 후 소요산을 찾아간다. 소요산 아래 모텔에서 하루밤을 지낸 후 아침 일찍 소요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들머리에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폭우로 인하여 계곡과 암자와 등산로가 많이 유실되어 위험하다고 한다. 멀리서 와서 일박까지 한 것이 안타까운지, 주변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단독으로 출입이 허용되었다.

 

 

 

서울에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5km의 거리에 있는 소요산은 해발 587m의 작은 산이다. 그러나 해발은 낮아도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줄지어 있는 서울 근교의 명산이다. 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 또는 경기의 소금강 등으로 불린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골짜기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겪은 기암괴석이 단풍과 어우러지고 곳곳에 폭포와 암자가 있어 더욱 절경을 이루는 산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족산행지로도 좋으며,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좋고, 가을이면 단풍과 낙엽이 아주 좋다. 소요산 주차장에서  단풍길을 따라 1km정도 걸어 일주문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원효폭포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계곡길을 따르면 소요산 정상 의상대로 오를 수 있다. 산행은 자재암에서 시작된다. 자재암 옆에는 나한전 석굴과 청량폭포가 있다. 원효폭포, 원효대와 자재암에는 원효대사의 전설이 있다.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면서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요석공주가 매일 아침 자녁으로 설총을 데리고 지금의 일주문 부근에 와서는 대사가 수도하는곳을 향해 삼배 절을 시키며 설총이 공부에 전념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원효폭포가 나온다. 원효폭포 아래는 국악을 하는 몇명의 소녀들이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대며, 발성 연습을 하고 있다. 폭포를 떠나 자재암으로 향한다. 자재암 청량폭포 앞부분은 폭우로 유실되어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다시 나와 공주봉으로 오른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절터를 지나 돌탑들이 늘어서 있다. 등산로와 계곡을 덮고 있는 폭우에 밀려온 돌들이 걷기에 불편하다. 그래도 돌탑은 전혀 유실되지 않았다. 탑에 깃들어 있는 정성과 인내 때문인 것 같다.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다. 소요산이 단풍산행지로 손꼽는 이유 중 하나는 94년 개장한 신북온천과 초성리 열두개울 계곡과 삼정리에 약수터가 가까이 있어서일 것이다. 신북온천으로 갈 경우에는 중백운대와 상백운대 사이의 530봉에서 북쪽 감투봉을 지나 이시랑고개로 내려가면 된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다. 산 중턱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의상대는 소요산  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어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장관이다.

소요산은 신라의 고승 원효가 개산하여 수도하던 곳이다. 원효가 한때 갑자기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려나 내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 라고 외치고 다녔다. 다른 이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이 얘기를 들은 태종무열왕은 그 뜻을 알아채고, “원효가 장가를 들고 싶어 하는구나.” 라고 하면서 장정 네 명에게 원효를 데려오게 했다. 원효는 요즈음으로 치면 태권도 5단 쯤 되는 무술 유단자라 쉽사리  끌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장정들은 원효를 요석궁으로 데려 갔다. (어느 스님말씀이 요석공주의 허리는 개미허리만큼이나 가늘었다고 하나 믿을 수 없다.)

몇 달 원효와 같이 있던 요석공주가 애기를 낳으니 이분이 이두문자를 집대성한 설총이다. 파계승이 된 원효는 소요산에서 설총과 함께 수도하고 있었고 요석공주가 경주에서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한번은 원효가 지금의 자재암 근처에 초막을 치고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약초를 캐던 어떤 여인이 와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원효가 그 여인과 함께 있는데, 그 여인이 갖가지 방법으로 원효를 유혹했다고 한다. 원효는 말하기를 “심생즉종종법생이요, 심멸즉 종종법멸이니 자재무애로다” ‘마음이 생(生)한 즉 갖가지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멸(滅)한 즉, 온갖 법이 멸(滅)하는 것이니, 나는 마음에 막힘이나 거침이 없도다.“ 라고 말하면서 따르지 않으니, 그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물러났다고 한다. 그 여인은 관세음보살이었다. 무애자재한 이의 일상생활이란 '송곳 끝에 올라가 있어도 그 넓이가 온 세계와 같고, 비록 끓어오르는 지옥에 있다하더라도 극락세계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자재암이라는 암자의 유래가 그래서 연유한다.

 

 

 

   

▲사라탑과 멋쟁이 화장실

 

 

▲자재암

 

 

 

 

 

 

▲유실된 자재암 마당(펌)

 

 

 

 

 

  

 

 

 

 

 

 

▲절터

 

 

   

 

▲돌탑군락▼

 

돌탑군락을 지나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다 이내 거세게 쏟아진다. 산속은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침침할 정도로 어두워 진다. 수해복구에 고생을 하는 분들에게도 미안하고, 허락은 받았다지만 수해로 입산금지가 된 곳을 폭우속에 오르는 것이 부담스러워 중턱에서 하산을 결정한다. 모처럼 먼곳에서 찾아 온 소요산행은 아쉬움만 만들어 놓고 불발이 되고 말았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고 하니, 가을이 되면 다시 한 번 찾아 와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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