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영 남 권

석천계곡, 석천정사, 삼계서원

바위산(遊山) 2011. 7. 30. 10:03

언   제 : 2011년 7월 23일(토)

누구와 : 마누라

어데에 : 봉화의 석천계곡과 석천정사

 

바위에 새겨논 석천정▼

 

▼충재선생(沖齋先生)산수구장(山水舊庄) "충재선생의 산수에 있는 옛집"

석천정사(石泉精舍)는 충재선생의 큰아들인 권동보(1518~1592)가 초계군수로 향리로 돌아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봉화의 유명한 춘양목으로 1535년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대부분 서너칸의 한채규모로 짖는것만 보아 왔는데 이 정자는 34칸의 큰 규모이기에 정사(精舍)라고 하며. 이는 최초부터  학문과 수양을 위하여 지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되어 진다. 큰규모에 비해 대문은 한두명이 들어 갈 정도로 작은편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있는 산수요(山水寮) 라고 현판이 달린 각1칸짜리 방2개와 정자가 꾸며져 있다. 

▲석천정사

 

닭실마을과 관계유적을 둘러보고 이웃하고 있는 석천계곡에 들렀다. 석천계곡은 잠시면 둘러볼 수 있는 그리 길지 않은 계곡이지만 석천정사와 함께 암반과 아름드리 노송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계곡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계곡의 끝머리에 있는 석천정사를 둘러보고 조심조심 돌다리를 건너면 계곡트레킹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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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정사 - 계곡을 향하여 정사의 문을 열면 계곡이 훤이 보이도록 하였다.

닭살마을 인근에 위치한 석천계곡은, 전설이 담긴 기암괴석과 금강소나무 숲 사이로 내성천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건축된 석천정사(石泉精舍)와 바로 옆의 삼계서원(三溪書院)은 그 건축미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며, 여름철 시원한 소나무 숲과 바위계곡에 흐르는 계곡물을 찾아오는 피서객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이곳의 장점은 일찍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훼손되지 않고 이어져 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다.

봉화삼계서원(奉化三溪書院)은 문화재자료 제417호 봉화읍 삼계리에 위치한다. 조선 중종때 명신 충재 권벌(1478∼154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당시 안동부사였던 김우옹이 조선 선조 21년(1588)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 31년(1601)에 한강 정구가 사당을 충정공사, 당호를 정일당(精一堂), 동재를 사무사(思無邪), 서재를 모불경(母不敬), 정문을 환성문(喚惺門), 문루를 관물루(觀物樓)라 각각 명명하였다. 그리고 현종 1년(1660)에 삼계서원으로 사액받았다. 고종 5년(1868)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충정공사·환성문·관물루가 훼철되었다가 1951년에 복원하였다. 권벌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명종 2년(1547)에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평안도 삭주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에 그 곳에서 죽었다.

▲삼계서원

서원의 배치는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봉화 삼계서원은 정연한 전학후묘의 배치법을 지니고 있으며 공간의 위계성이 돋보인다. 관물루와 사당은 복원된 건물로 당시의 모습은 지니지 못하고 있으나 동재와 서재에서 당시의 모습을 부분적이나마 찾을 수 있다. 또한 닭실마을과 연계되는 삼계서원의 위치와 충재선생의 인물사적 측면과 더불어 고려할 때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석천계곡은 일제시대 신작로가 세워지기 전 달실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랜 여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계곡에서 잠시 쉬며 여독을 풀었다고 한다. 기이한 기암괴석과 울창한 소나무숲에 아기자기한 계곡의 물이 웅장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은 남여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석천계곡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석천계곡과 석천정사를 둘러보고 관계유적지와 닭실마을을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한다면 가벼운 운동과 함께 좋은 트레킹이 될 것이다. 계곡에는 가족단위로 더위를 식히러 나와 올갱이도 잡고 고기도 구으며, 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석천계곡주차장

 

 

 

▲봉화건국운동기념비

 

 

 

계곡의 암벽에는 ▲'청하동천'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글씨는 석천정사에서 많은 유생들이 모여 밤낮으로 학문에 정진하는데 밤이면 도깨비가 나타나 유생들의 수가 자꾸 줄어 들게 되었다. 어느 한 명필이 입춘날에 바위에다 靑霞同天이라고 썻더니 도깨비가 사라졌다고 하며, 그 후부터 석천계곡을 청하라고 하였다는 유례가 전해오고 있다.

▲주차장 정자에는 산행 후 찾아 온 산악회 단체관광객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주차장에서 다시 석천정사로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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