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2010년 10월 17일(일)
날 씨 : 맑음
누구와 : 마누라
어데에 : 서울 경기의 관악산 육봉능선
시 간 : 5시간(먹고 쉬고 포함)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산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명산의 능선에는 가을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관악산은 오래전에 참으로 많이 올랐던 산이다. 젊은 날 무작정 상경하여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신림동이고 주말이면 가까운 관악산과 삼성산에 자주 오르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관악산은 고향의 뒷산처럼 언제나 향수를 불러오는 그리움의 산이었다. 특히 삼막사가 있는 삼성산에는 보리밥을 팔고 있어서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정상에 올라 당시 700원 하던 보리비빔밥에 된장국 한그릇을 받아 들고 바위에 앉아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은 관악의 육봉능선을 둘러보고 싶어 들머리인 과천의 중앙공무원교육원으로 향한다. 교육원 앞 도로변은 주차차량으로 가득하고 은행나무 가로수가 고운 단풍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곳에서 직등하는 길이 없어 철조망이 쳐놓은 좁은 소로를 따라 산으로 들어서야 한다. 사연이 있는지 몇몇 산객들은 이해관계로 산행 들머리를 막고 있는 행태에 대하여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 놓는다. 산행안내판을 지나 들머리로 들어서면 곧바로 사방댐이 보인다. 사방댐을 지나 조금 오르면 너른 바위지대가 나오고 몇몇 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관악산(冠岳山·631m)과 삼성산(三聖山·455m)은 서울 남측을 에워싸고 있는 산이다. 남태령을 통해 동서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천연의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바위산인 관악산은 산세가 미더워 조선 태조에 의해 북한산, 용마산, 덕양산과 더불어 외사산(外四山)으로 꼽혔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도를 깨닫고 성불했다는 삼성산과 이웃하고 있다.
<육봉1.2.3봉>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불리었으며, 산맥이 과천의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에 닿아 있다. 산은 그리 크지 않지만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도심에서 가까워 가족동반 당일산행 대상지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합천 가야산과 더불어 산세가 석화성(石火星·바위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 형상으로 꼽히는 관악산은 찾는이들이 많고 등산로도 여러곳에 발달되어 있어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연주사와 원각사 두 절을 지어 화환에 대처했다고 하는 정상의 원각사와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데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는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또한 광화문에 있는 해태상과 남대문의 간판이 세로로 세워져 있는 이유도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위함이며, 호랑이 형세를 하고 있는 산의 호기(虎氣)를 잡기 위하여 삼성산 자락에 호압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가을색이 완연한 숲길을 걷다보면 목조다리가 나오고 조금더 오르면 문원폭포가 나온다. 육봉능선의 암릉을 타려면 목조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꺽어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지도도 없고 안내판도 없는 바람에 계속 골을 타고 오르게 되었다.(과천시장님 등산로 분기점마다 안내판좀 세워 주세유...^^* ) 폭포의 윗쪽 슬랩지대에 바위가 서 있고 누군가 커다란 글씨로 이름을 남기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더니만 이름 하나 더럽게 남기는 바람에 두고두고 욕먹을 짓을 한 것 같다.
사람이 많다보니 별 사람도 다 있다. 이 양반 산객들이 오르고 내리는 등산로로 다리를 쭉뻗고 낮잠을 즐기고 있다. 그 모습이 태평스럽기는 하다만, 그 넓은 산판에서 햇볕도 따가운데 하필 등산로로 발을 뻗고 낮잠을 잔다냐....ㅠㅠ 계속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아 걷기는 좋으나, 앞뒤로 늘어서 있던 산객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더니만 결국 모두 사라지고 우리만 걷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능선으로 올라간 것 같은데 우리만 골짜기를 따라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골짜기가 끝나고 한 번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능선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게 모야? 연주봉이 눈앞에 우뚝 솟아 있지 않는가, 결국 골을 타고 정상 부근까지 올라 온 셈이 되어 버렸다.
<남릉>
연주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에 연주대가 있고, 연주대에서 남쪽 아래로 연주암이 있다. 연주암은 본래 관악사로 신라때 의상대사가 현재의 절터 너머 골짜기에 창건했으며, 1396년 이성계가 신축했다. 그러나 1411년(태종11)에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뜻을 알고 유랑하다가 이곳 연주암에 머물게 되었는데, 암자에서 내려다 보니 왕궁이 바로 보여 옛 추억과 왕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 한 나머지 왕궁이 안 보이는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고 한다.
<연주암>
연주암이란 이름은 이들 왕자의 마음을 생각해서 세인들이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절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했다. 1868년 중수작업 때는 극락전과 용화전을 새로 신축했으며, 그뒤에도 1918, 1928, 1936년에 중수작업을 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본당인 대웅전과 금륜보전이 있고, 연주대에 응진전이 있다. 대웅전 앞뜰에는 효령대군이 세웠으며, 고려시대 건축양식으로 된 높이 4m의 3층석탑이 있다. 그밖에도 비단에 그려진 16나한의 탱화와 고려시대 것이라는 약사여래석상이 있다. 이 석상은 영험(靈驗)이 많다 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서릉>
연주대는 1392년 이성계가 무악대사의 권유로 국운의 번창을 빌기 위해 연주봉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30㎡ 정도 되는 대(臺)를 구축하여 그위에 암자를 지은 것이다. 연주대에는 응진전이라는 현판이 있는 불당이 있고, 효령대군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있다. 연주대 바위 벼랑은 같은 간격을 두고 줄을 그어내린 듯이 침식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닌 말바위[馬巖]가 있다.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戀主臺)는 고려가 망하자 10명의 고려 충신들이 관악산에 숨어살면서 간혹 정상에 올라 송도를 내려다보며 통곡을 했다는 애틋한 사연이 있는 곳으로 지명도 임금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그리워할 연(戀)자를 써서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지어졌다 한다.
<송신탑 오르는길>
<관악산 정상>
<연주봉과 연주대>
능선에서 송신탑을 지나 연주봉으로 오르는 길은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연주암 뒷편으로는 서울의 산들이 그러하듯 음료와 막걸리, 컵라면이나 어묵등을 파는 노점이 있어 간단히 시장끼를 때울 수가 있다. 연주봉에서 삼봉(육봉능선의 최고봉)으로 향하는 길은 부드러우면서도 곳곳에 기암과 암릉이 있어 아기자기하다. 삼봉 암봉에는 태극기가 달려 있다. 이곳에 서면 삼성산과 함께 약간의 개스로 선명하지는 않지만 도심의 고층건물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팔봉능선과 능선 아래 자리한 불성사가 지척에 내려다 보인다.
<관악산 산신령?>
<육봉능선>
<왕관바위>
태극기가 달려 있는 삼봉에서 육봉능선으로 접어들자 등산객 한 분이 다리 골절상을 입고 119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 바위산행은 아기자기함과 스릴을 즐길 수는 있지만 항상 위험구간에서의 사고를 경계하여야 할 것 같다. 헬기가 상공을 날아 다니며, 위치를 파악하고 있으나 구조대가 올라 오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다. 일행들이 나무가지를 꺽어 부목을 대고 묶었으나, 끈이 없어 엉성하다. 배낭안에 몇년동안 써보지 못하고 지고만 다니던 비상약품통을 뒤져보니, 압박붕대와 결속끈이 있어 꺼내주고 왔다.(나도 좋은 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하느님이 잘 몰라주는 것 같기도 하구~)
<삼봉-육봉능선 초입>
<팔봉능선>
<불성사>
육봉능선은 아래서부터 올라야 하는데, 오늘은 연주능선에서 꺼꾸로 하산을 하여야 한다. 암릉은 항상 오를때 보다는 하산길이 위험하고 버벅대야 한다. 암릉을 타고 내려오다 보면 칼바위가 나온다. 칼바위를 타고 넘는 길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육봉능선에는 이렇게 위험한 구간이 몇군데 있다. 4봉에 다다르면 30m쯤 되는 커다란 암벽에 릿지산행을 하는 클라이머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암벽을 내려서서 3봉사이에 있는 석문을 지나 2봉과 1봉을 지나면 육봉능선 산행은 마무리 된다. 아래로 쭉~ 육봉능선과 지능선의 모습이다.
<칼바위 타는 홀로 여산객의 모습>
<석문>
석문을 지나 2봉을 내려서기도 만만치는 않다. 1봉에 올랐다가 길게 바위슬랩을 타고 내려서야 한다. 이곳은 그리 가파르진 않지만 조금 미끄럽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꼬마(초딩) 아가씨가 슬랩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줄줄 내려가는데,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야~ 다행히 중간 바위턱에 엉덩이가 걸리면서 멈추기는 멈췄지만..... 엉덩이가 무지무지하게 아픈 모양이다. 1봉을 내려서서 잠시 숲길을 걸으면 골을 타고 오르는 목조다리 분기점이 나오고 날머리에 다다른다. 20여년만에 찾아 온 관악은 그 수려함과 다양함으로 왠지 처음 찾는 미지의 산처럼 설레임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관악에서도 가장 험로이며, 처음 오르는 육봉능선 암릉의 수려함과 스릴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악은 수려한 암봉과 가을색으로 물들어 가는 숲이 어우러져 좋은 산행이 된 것 같다.
<관악산>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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