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도 어느 한 부분만 좋고, 다른 부분이 좋지 않았다면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듯, 산도 숲과 바위와 계곡이 어우러져야 좋은 산이다. 울창한 수림만 있어도, 수려한 암봉만 있어도,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좋은 산이라고 할 수 없다. 수락은 이러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산이다. 오늘도 홀로산행을 해볼까 하는데, 울마눌 동창모임을 포기하고 산행에 동참하겠단다. 퇴계 '이황'은 '유산여독서(有山餘讀書)'라 하여 '산에 드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하였다. 그것은 산에 오르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고 깨우치게 된다는 뜻으로, 문명의 원천이 자연에 있어서 자연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면 삶의 근원을 깨우치기 어렵다는 것일게다. 젊어서 책을 보고 학문을 쌓는 일에 열중하였다면, 나이가 들면 산에 올라 인생을 깨우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서울과 의정부와 남양주를 경계로 하는 수락산(水落山 637.3m)은 한자 뜻대로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는 뜻으로 폭포가 많음을 말한다. 산의 동쪽으로 분포하고 있는 금류폭포, 은류폭포, 옥류폭포의 수려함에서 이름지어 진 것 같다. 또한 지세의 기복이 심하고 산에 바위가 넓게 분포되어 있어 산머리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는 일이 많아서 수락(首落)이라 불렀으나, 임금을 말하는 머리가 떨어진다는 수(首)자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물수(水)자로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수락산은 산의 정상부의 주능선과 지능선에 아지자기한 암릉 구간들이 많아서 암릉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가 있는 곳이다.
수락산역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다. 몇 번을 오락가락한 끝에 골목에 주차공간이 있어 주차를 하고 산으로 오른다. 수량이 적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더위를 피하여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의 모습도 보인다. 수도권에 위치한 수락산은 산꾼들이나 만날 수 있는 오지의 산과는 달리 남녀노소 구분없이 행락객들과 산꾼들이 혼재되어 호젓한 산행을 즐기려는 산꾼이에게는 식상함이 있을 수도 있다. 오르는 중에 '천상병길'이 나온다. 이곳에는 천상병 시인을 기리기 위하여, 목판에 천시인의 노래를 써서 곳곳에 세워 놓았다. 중학교때부터 시를 쓰며, 평생 500원짜리 막걸리 한통에 행복해하던 그는, 문학과 예술을 핑계로 기인행세를 하려는 어설픈 자들이 보이는 모방과 천박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진정한 천재시인이며 기인이었던 것 같다.
목조다리를 건너 조금 오르다 급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다. 유실된 등산로를 통나무를 가로 놓아 정비한 이길은 걷기가 편하지 않다. 태풍이 지나가면 조금은 시원해 질 것을 기대했건만 오늘도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278봉까지 30분 가량 오르는 길은 땀으로 질펀하게 만든다. '물개바위(?)' 라 부르는 암릉을 지나 첫번째 봉우리에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앞으로 막걸리나 맥주등 음료수를 파는 좌판이 있고, 북서로 삼각산과 도봉산이 보이고 남으로는 불암산이 보인다. 모두가 수려한 수도권의 산이다.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주능선을 따라 걷는다.
전망망대에서 389봉으로 가는 능선은 부드러운 숲길이다. 그러나 태풍 '곤파스'가 강타한 수도권의 피해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능선에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여기저기 드러누워 있다. 이는 다져지고 패인 등산로를 복구하지 않아 뿌리가 깊게 박히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태풍에 뽑힌 나무들은 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만들어 놓는다. 공원관리팀은 조속이 복구 및 정리작업을 하여야 할 것 같다.
<탱크바위>
능선의 끝으로 점점 고도를 높이며, 암릉지대가 나온다. 389봉에 올라 잠시 땀을 식히며 조망을 즐기고는 탱크바위로 오른다. 탱크바위로 오르는 길은 로프가 없어 위험하다. 바위에 약간의 홈을 파놓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여 놓았으나, 암봉사이를 우회하여 오르는 길은 위험하므로 초심자들은 주의를 요한다. 탱크바위에 오르면 북으로 수려한 암봉들이 올려다 보이고 남동으로 불암산이 길게 누워 있고 남서로 우리 타고 올라온 능선이 길게 이어지다가 도심의 고층건물 사이로 여맥을 가라 앉힌다. 서울은 한강과 더불어 '수도불사북'의 명산과 관악이 있어 행복한 도시임에 틀림 없다.
<타고 올라온 능선길>
<수락산 정상부>
위가 탱크바위 앞 암봉슬랩구간인데. 로프 없이 아슬아슬 슬랩지구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이 보인다. 장비를 갖춘 크라이머도 아닌데.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도 암봉타기를 좋아하여 릿지산행을 하고픈 마음은 있으나, 좀처럼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 가끔 암봉산행을 할때면 울마눌 왈(曰), 자기는 안전한 곳으로 오르고, 나보고는 무리한 곳으로 올라 갔다 오라고 하는데, 이유가 알송달송하다.
<불암산>
수락산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정규 등산로로 오르면 그리 위험하지도 어려움도 없다. 다만 다니던 길이 식상하거나 암봉마다 올라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고 위험도 감수하여야 할 것 같다. 탱크바위를 내려와 조금 오르다 보니, 등산로가 희미하다. 정규등산로로 돌아가기가 귀찮아 그리 만만치 않은 직벽을 타고 오른다. 직벽을 올라 조금 걷다보니, 한팀의 산객들이 암반에 올라 앉아 한잔 하였는지, 다같이 합창을 하며 쉬고 있다. 구수한 노래와 함께 그 모습이 정겨워 보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고, 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을 생각한다면 자제하여야 할 것 같다.
<내려다 본 탱크바위>
산행일 : 2010년 9월 4일(토)
어데에 : 계곡과 암봉이 어우러진 '수락산'
누구와 : 마누라
날 씨 : 맑음(무더위)
시 간 : 5시간
탱크바위를 지나 또 하나의 암봉을 올랐다 암봉사이로 빠져 오르면 도솔봉에 오르게 된다. 도솔봉엔 많은 산객들이 올라와 있다. 무더위를 불구하고 산을 찾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으나, 무더위로 인하여 체력손실이 빠른 탓인지 굳세게 산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보다는 여기 저기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봉우리마다 있는 좌판에서 막걸리 등을 마시는 산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도솔봉>
<치마바위>
도솔봉을 지나 치마바위로 오른다. 치마처럼 늘어진 바위슬랩지구를 곧바로 오르 내리는 사람도 있으나, 우회로가 있으니,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와중에도 슬랩을 내려서다 가벼운 부상을 입는 것을 목격하였다. 수락엔 암릉구간에 바위에 철심은 박아 놓은 곳이 많다. 바위에서 약간 돌출되도록 박아 놓은 철심은 반질반질하게 달아서 오히려 불편하고 위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옛날에 강원도 영월 땅에 사는 사냥꾼이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호랑이는 경기도 양주 의 산속에 살고 있었는데 영악하기 짝이 없어 인근 마을의 소와 말, 그리도 개와 돼지 등을 자주 물어갔다. 피해가 늘자 백성들은 관가에 호랑이를 잡아 줄 것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관가에서는 호랑이를 포획하거나 사냥하는 사람에게 많은 상금을 내리겠다고 방을 붙였다. 포상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사냥꾼들이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그 호랑이를 잡지 못하였다.
<배낭바위>
영월의 사냥꾼이 이 소문을 들었으나, 얼마 전에 아내를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탓에 선뜻 호랑이 사냥에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아버지에게 왜 호랑이 사냥에 나서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솔직하게 아직 어린 너만 홀로 집에 남겨두고 사냥을 떠날 수 없어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 저도 이제 산을 타고 달리며 어지간한 짐승은 사냥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함께 가도록 하여 주십시요" 어린 나이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고 튼튼한 아들이 요청에 걱정이 되긴 하였지만 한편 대견스럽기도 하여 호랑이 사냥에 동행하기로 하였다.
치마바위를 지나면 코끼리바위가 나온다. 암봉의 상단에 누군가 일부러 올려 놓은 듯, 바위가 하나 있는데. 렌즈를 당겨 찍어보니 영낙없이 코끼리를 닮았다. 코끼리바위 중간에는 종을 닮은 바위 하나가 매달려 있는데, 이것이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것이 요상하다.
<종바위와 코끼리바위>
호랑이가 은거하는 양주에 도착한 사냥꾼은 골짜기 작은 동굴에 짐을 풀고 숙소로 삼았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호랑이의 흔적을 살피며 추적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영악한 호랑이였다. 자신의 뒤를 쫓는 집념과 기술이 다른 사냥꾼들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호랑이는 산등성이를 넘어 다른 골짜기로 피신했다. 그러자 사냥꾼 부자도 그 흔적을 찾아 도솔봉 바위봉우리와 종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능선을 넘으며 추적을 계속하였다.
<하강바위>
그러나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예민한 호랑이를 따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추적하고 쫓기는 싸움이 며칠 간 계속되던 어느 날 사냥꾼은 동굴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며, 어린 아들에게 쉬라고 권했다.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아무리 나이보다 튼튼하다고는 해도 아직은 어린 아들에게 무리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을 나선 사냥꾼은 비를 맞으며 호랑이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다시 추적에 나섰다. 한편 호랑이는 이날도 사냥꾼 부자의 눈을 피해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자신을 뒤쫓는 사냥꾼을 살펴보니 혼자가 아닌가. 호랑이는 사냥꾼 부자가 숙소로 삼고 있는 동굴로 달려가, 깊은 잠에 곯아 떨어져 있는 아들을 덮치고, 아들은 커다란 호랑이의 기습공격에 비명도 질러보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한편 호랑이 추적에 실패하고 동굴로 돌아온 사냥꾼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들이 보이지 않아 살펴보니, 아들이 누워있던 자리에 핏자국이 선명하고 호랑이의 발자국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잡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호랑이에게 잃은 사냥꾼은 밖으로 뛰쳐나와 아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락아! 수락아!”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들 이름이 '수락'이었다. 사냥꾼은 수락이를 부르며, 어두운 밤까지 아들을 찾아 헤매다 낭떠리지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 이 산에서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골짜기와 능선에서 “수락아! 수락아!” 하고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수락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다.
수락산은 도봉산과 함께 서울 북쪽의 경계를 이룬다. 거대한 화강암 암벽과 기암괴석 봉우리가 우람한 아름다운 산이다. 요즘은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멋진 산으로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더불어 서울의 4대 명산으로 불린다. 서쪽 비탈면에 쌍암사와 석림사, 남쪽 비탈면에 학림사와 흥국사, 동쪽 비탈면에 내원암 등 사찰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지하철 4호선 상계역과 당고개역, 7호선 수락산역에서 바로 오를 수가 있다.
<철모바위>
하강바위를 내려서서 정상아래 도착하니, 전화벨이 울린다. 주차장이 개인 것이라며, 빨리 차를 빼달란다. 분명 거주자 우선주차장이 아닌 것을 확인했는데도 우기기를 계속한다. 잘못 보았나 싶어 하산시간을 기다려 달라하고 급히 정상에 오른뒤에 하산을 서두룬다. 정상 암봉에는 태극기가 매달려 있다. 그러나 한쪽 끈도 끊어지고 일부는 훼손된 것 같아 차리리 없는 것이 날 것 같다. 이곳에도 좌판이 있다. 수락엔 봉마다 좌판이 있어서 현찰만 같고 오르면 음료나 먹거리나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락산 정상암봉>
<의정부로 향하는 능선>
<수락산 정상>
<사진촬영전망대>
가파른 하산길은 마음이 급하다. 수락폭포를 지나 이어지는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군데군데 산객들이 땀을 씻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피로도 몰려오고, 쉬었다 내려오고 싶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주차가 마음에 걸려 걸음을 재촉한다. 석림사를 지나 집단시설지구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주차지역으로 향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에 따라 인상도 변한다고 하더니만 주차지엔 욕심과 심술이 가득한 표정의 노파가 어데론가 전화를 하여 주차자리가 났음을 알리는 것 같다. 확인후 산행의 즐거움을 절반은 감소시킨 할머님께 따져볼까 하였으나, 지난일에 시비를 가려 앞날을 도모하지 못한다면, 따져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수락은 남성미가 있는 삼각과 도봉의 암봉들처럼 장쾌함은 덜하지만 속속들이 차있는 암봉과 수려한 계곡으로 겉보기 보다는 속살이 아름다운 여인같은 산이 아닌가 싶다.
- 천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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