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2010년 8월 28일(토)
누구와 : 나홀로
어데에 : 경북 상주의 노음산(노악산)
소요시간 : 3시간 30분
잔뜩 가라앉은 날씨에 가끔씩 빗방울이 흘뿌린다. 찌부덩한 몸과 마음을 털어 버리기에는 산행만한 것도 없다. 오늘은 홀로 상주의 노음산을 찾아 간다. 병원에 들러 잠시 일을 보고 출발하는 바람에 2시간을 달려서 노음산 들머리 남장사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을 아랑곳 하지 않고 몇몇 행락객들이 계곡에서 고기를 굽고 소풍을 즐기고 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조금 걸어 내려와 저수지앞 석장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 석장승은 원래 남장동에 있었는데, 1968년 저수지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높이 186㎝의 크기로,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다듬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비뚤어진 얼굴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 눈과 커다란 주먹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 송곳니는 아래로 뻗어 있다. 가슴에는 한가닥의 수염이 있으며 그 밑에 ‘하원주장군(下元周將軍)’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성난 표정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 보다는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엿보이는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승 앞면에 ‘임진 9월입’이라는 기록과 조선 철종7년(1856)에 지은 남장사 극락보전 현판의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순조(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노악산은 갑장산(805.7m), 천봉산(435.8m)과 함께 상주3악을 이루는 산이다. 일명 노악산이라고도 하는 노음산(725m)은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찾는이가 드물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이 산의 산행 기점은 남장사 입구에 있는 제실저수지 위에 있는 석장승 옆이며, 단조로운 산행코스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산 아래쪽은 여러가지 잡목이 섞여 자라며, 위로 갈수록 참나무, 단풍나무등이 많이 분포하며, 특히 울창한 숲속에 있는 남장사는 이름난 명승지이며, 서쪽 아래로는 북장사가 있다.
한낮인데도 숲이 우거진 산판은 잔뜩 흐린 날씨로 인하여 땅거미가 내려 앉은 초저녁처럼 어둑어둑하고 가끔씩 흩뿌리는 비로 인하여 음습하다. 비에 젖은 숲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주능선 안부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 석장승 0.9km, 정상 2.2km라는 안내판이 있다. 주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완급을 거듭하여 그리 힘들지 않은 산행을 할 수 있는데다, 어제는 주(酒)님을 적당히 모신탓인지, 컨디션이 좋다. 발걸음도 가볍고 능선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오르다 보면 커다란 암봉이 능선을 가로 막는다. 암봉을 우회하여 잠시 오르면 능선은 다시 부드럽게 이어진다. 수목이 울창한 능선엔 운무기 밀려왔다 밀려가고를 반복하여 꿈속을 걷는 듯하다.
주능선 첫번째 봉우리인 옥녀봉에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서면 남장사와 함께 저수지와 남장마을이 아스라히 내려다 보이고, 상주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좋다면 갑장산과 대궐터산을 비롯하여 형제봉과 속리산, 도장산 등 주변의 명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운무로 인하여 보이지 않고 어쩌다 가끔씩 조망을 티우기도 한다.
<남장사와 남장마을>
<노음산 등산지도>
<상주시>
남쪽 전망대에서 잠시 오르면 북쪽을 전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망대가 나온다. 노송 한그루가 쓸쓸하게 서 있는 전망대에 서면, 밀려가는 운무 사이로 올라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그러나 능선을 경계로하여 남쪽은 시계가 좋으나, 능선을 넘는 바람이 운무를 만들어 북쪽 산골짜기를 가득채워 놓는 바람에 북쪽은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지나온 능선>
<암릉구간>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암릉구간이 나온다. 노음산의 백미는 이 암릉구간에 있는 것 같다. 철사다리와 밧줄구간을 지나 양쪽으로 수십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암릉에 오르면 상주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북쪽은 운무에 채워져 있어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임릉위로 불어 오는 가랑비를 머금은 바람은 상쾌하게 살갓을 두둘긴다. 참으로 좋은 풍경, 시원한 바람이다.
<노음산>
암릉구간을 지나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노음산 정상에 서게 된다. 잡목으로 에워쌓인 정상부엔 소나무 한그루 아래로 정상표지석이 있다. 벌써 2시가 넘었으니, 시장끼가 밀려 온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에다. 몇마리의 벌과 모기가 성가시게 한다. 밥그릇을 잡은 손등위에는 잠자리가 날아와 앉는다. 홀로 산행시 잘 먹지 않는 편이나, 오늘의 점심은 모처럼 맛난 식사가 되었다. 밥한톨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웠으나, 물이 부족하다. 날이 선선한 탓에 얼린 물통이 채 녹지 않아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자 곧장 산행을 시작한다. 잔뜩 흐린 날씨와 바람이 금방이라도 많은 비를 몰고 올 것 같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조금 지나면 다시 한 번 전망대에 서게 된다. 산은 적막하여 바람소리와 나무가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후드득 거림이 다다. 들머리에서 들리던 세력 잃은 매미들의 힘없는 울음소리도 산상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적막함, 그것은 외로움 같은 것을 만들어 놓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혼잡하고 잡다한 세상살이에서의 해방일지도 모른다. 좋다, 이렇듯 적막한 산길을 걷는 것이 너무도 좋으니, 세파에 찌든 마음과 몸을 모두 정화시키는 것 같다. 산행의 즐거움은 아름다운 산하를 보고 느끼는데도 있지만, 이렇듯 심신의 건강을 얻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아닌가 싶다.
하산길에 또 하나의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 서면 북동으로 꽤나 규모있는 저수지가 보이고 아스라히 먼곳으로 시가지가 보인다. 랜즈를 당겨 찍어보았는데, 아마도 문경읍이 아닌가 싶다. 하산로는 잘 발달되어 있다. 등산로가 이렇게 발달되었는데도 날씨 때문인지, 오늘 노음산 산행을 하면서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나지 못했으니, 노음산 산신령께서 반가워 하셨을 것 같다.
하산하여 관음선원과 남장사를 둘러 본다. 관음선원 대웅전과 남장사 대웅전 앞으로 파초(?)를 심어 놓아 분위기 있는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을 돌아 보는 중엔, 얼마나 많은 비를 뿌릴려는지 모기때가 극성이다. 수십마리, 아니 수백마리는 될 듯한 모기들이 완전 포위를 하고 쫓아 다닌다. 손으로 대충 휘둘러 잡아도 몇마리씩은 손에 잡힌다. 사위어 가는 여름이 아쉬워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장사는 꽤나 규묘가 있는 대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경북팔경의 하나다. 신라시대 832년(흥덕왕7년)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하여 장백사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186년(명종16년) 각원화상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신라 말 최치원이 지은 쌍계사 진감국사비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돌아온 국사가 상주 노악산 장백사에서 선을 가르치니 배우는 이가 구름처럼 모였다’는 기록이 있고, 상주의 명찰 모두 진감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다. 1889년 보광전, 1903년 칠성각, 1907년에는 염불당을 건립하였다. 1978년 7월 영산전의 후불탱화에서 주불과 16나한상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들을 봉안했다는 기록과 함께 사리 4과와 칠보류가 발견되었다.
이밖에도 극락보전 안에 업경대 2점이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골에는 4기의 부도가 있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된 석장승 1기가 있다. 이곳에서 목판본이 개판되기도 하였는데, 조종경(1495∼1535)의 "독암유고" 1권과 부록 1권, 이춘원(1571∼1634)의 "구원시집" 5권 등이 있다. 절 주변의 계곡은 별로 깊지 않으나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전국 2230개 사·암 중 6개 전법도량의 하나로 지정 받아 지역사회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회변동에 주도적으로 대응 역사인식과 전통사찰로서 복지관·자활후견기관을 수탁받아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기도와 수행의 대표적 가람으로 우뚝 서 있다.
남장사를 둘러보고 일주문을 빠져나와 맑은 계곡물에 땀을 씻으니, 그 상쾌함이 아주 좋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계곡을 한 번 둘러 본 뒤에 귀가를 위하여 차에 오르자 빗줄기가 거세어 진다. 잔뜩 흐린 날씨에 부슬부슬 가랑비는 내렸지만 그리 큰비를 만나지 않았는데, 산행이 끝나자 마자 빗줄기가 거세어 지는 것을 보니, 오늘 노음산을 오른 유일한 손님에 대한 노음산신령의 보살핌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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