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날 가은에서 바라 본 희양산>
오늘이 경칩(驚蟄)이다.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 난다는데 방구석에 쳐박히기는 아까운 날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눈과 비가 많이 내린 것 같다. 영동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다 하니, 영동지방의 산을 찾아 간다면 좋은 눈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무지무지하게 갈 곳이 많다는 마누라를 대신하여 연과장과 함께 희양산을 찾아간다.
산행들머리인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에 위치한 은티마을은 희양산과 악휘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 만나는 합곡점에 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때문에 가끔 수해를 보는데 그 개울 줄기가 여인네의 오줌 줄기 같다 해서 수해의 방패막이로 마을 앞에 남근석을 세워 놓고 끔찍이도 위하고 있다. 그 양근석이 있는 개울가의 작은 숲이 산행의 기점이 된다. 남근석에서 다리를 건너 왼쪽의 농로로 들어서면 길은 서서히 언덕으로 오른다. 팬션을 옆으로 과일 나무를 심은 넓은 밭 가운데로 이어지던 길이 산길로 접어든다.
희양산은 경북 문경의 가은과 충북 괴산의 은티마을을 경계로 하는 산이다. 그러나 문경쪽은 대부분 봉암사의 사찰림으로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그래서 희양산 산행을 할려면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올라야 한다. 희양산은 괴산 35명산중에서도 내가 좋아하고 여러번 올랐던 산이다. 예전에는 멋들어진 노송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은티마을 들머리 비좁은 주막집 앞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하였으나, 몇년전에 들머리에 주차장을 조성하고 식당과 간이매점도 조성되어 있다. 이 사설 주차장은 승용차 주차료로 3,000원을 징수하고 있다. 오늘 산행코스는 주치봉~주왕봉~희양산을 돌아 오는 코스다. 서낭당이 있는 주막집을 떠나 20분쯤 오르면 이정표가 나온다. 희양산은 서너개의 등산코스가 있으나, 이정표가 없어 목표로 한 길을 찾기가 어렵다.
<안동권씨 묘지>
은티마을 20분, 구왕봉 50분, 악휘봉 100분이라는 이정표를 지나 주치봉과 구왕 봉 사이에 있는 호리골재로 오르는 길은 완만하여 걷기가 좋으나 포근한 날씨가 등줄기를 적시게 한다. 가볍게 옷을 덜고 호리골재로 오르면 무덤이 한기 나온다. 묘비에는 안동권씨의 지묘라 써있다. 이곳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는 구왕봉으로 향한다. 우리보다 앞서 오르던 대전에서 오신 산객들이 간식을 먹고 따라 붙는다.
언 제 : 2010 . 03 . 06 (토)
누 구 와 : 연과장
어 디 에 : 우리나라 100대 명산, 괴산35명산 희양산, 구왕봉
산행시간 : 6시간 30분
<전망바위>
<부부바위>
<마당바위>
<구왕봉>
산은 오를수록 운무가 가득하고 눈이 덮혀 있다. 운무를 타고 내리는 안개비는 나뭇가지에 맺혔다 땅으로 떨어진다. 산아래의 포근한 날씨와는 달리 차츰 차가운 공기가 손을 시리게한다.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바위를 지나 마당바위에 올랐다가 잠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구왕봉정상에 서게 된다. 높이 887m의 구왕봉은 희양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요즘은 희양산과 연계산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구왕봉을 내려서서 희양산으로 오르는 길은 유난히도 밧줄구간이 많다. 봄이라 월동장구를 최대한 줄이고 아이젠 하나 들고 온 것이 화근이다. 춘래산상불이춘(春來山上不以春)이라 봄은 왔으나 산상은 봄이 아니다. 눈덮힌 암벽구간을 젖은 밧줄을 잡고 오르다 보니, 한컬래 밖에 준비하지 않은 장갑은 이미 물걸래가 되어 쥐어짜면 구정물이 줄줄 흐른다. 당연 손이 시릴것은 뻔한 이치다. 3월말까지는 월동장구를 소홀이 하여서는 아니 될 것 같다.
구왕봉을 내려서서 바위 위에 자리잡고 점심을 먹는다. 찰밥에 구운김과 산나물이 다인 소찬이지만 군계란을 안주로 소주 한잔까지 곁들이니 그 맛이 일품이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서넝당터에 다다르면 송림이 빼곡하고 능선의 오른쪽은 목책이 쳐저 있다. 고란초등 회귀식물을 보존하고 자연생태를 보존하고자 한다는 안내판 옆으로 봉암사 사찰림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같이 서있는 것을 보아 관사(官寺)의 짜고찌는 고스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뒤따르는 산행팀은 구왕봉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한 것 같다. 이분들의 여유로움은 산행이 목적이기 보다는 지인들끼리 어울려 휴일을 즐기는 것 같다.
서낭당터를 지나 다시 한 번 밧줄구간에 다다른다. 눈덮힌 밧줄구간은 길게 이어지고 가파르다. 그칠듯 이어지는 눈덮힌 밧줄구간은 많은 체력을 소비하게 한다. 서울에 살며 구미에서 근무한다는 중년의 홀로 산객이 따라 붙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성터와 희양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안부에 오른다. 홀로 산객은 안경을 잃어 버려 이곳에서 다시 원점회귀로 하산을 택하고 우리는 희양산으로 향한다.
<끼잉~낑>
송림이 어우러진 너럭바위에 오르나, 조망이 일품이던 전망대는 운무가 가득하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나무가지에는 상고대가 살짝 녹았다 다시 얼어 붙어 얼음꽃을 피워 놓았다. 너럭바위 전멍대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희양산 정상에 다다른다. 거대한 단일암봉으로 이루어진 희양산의 모습도, 기대했던 시원한 조망도 완전 제로로 산상으로 오를수록 더욱 무겁게 드리운 운무가 지척을 가로 막는다.
희양산은 높이가 998m로 소백산맥 줄기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다. 백화산을 일으켰던 소백산 줄기가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그 산들 중 하나가 희양산으로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다. 산 중턱에서 정상쪽으로 암벽을 두르고 솟은 모습이 특이하며 옛날 사람들은 장엄한 암벽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증대사가 희양산의 지세를 보고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 최고의 수도도량사인 조계종 산하 봉암사에서 스님들의 수도에 방해가 된다며 출입을 금하고 있다.
<성터>
성터로 하산하려던 계획은 눈덮힌 등산로를 발견하지 못한체 사람들의 발자욱을 따라 걷다보니 그냥 지나쳤다. 걷다보니 시루봉으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지도를 보아도 온통 운무에 쌓인 산상은 위치와 방향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오래전이지만 몇번 올랐던 기억을 더듬어 시루봉 안부에 다다른다. 폭우에 시달려 황폐해진 계곡으로 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조금 더 하산하니, 산판은 눈대신 젖은 수목들이 싱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불과 200~300m의 고도 차이로 급변하는 날씨는 겨울을 맞이하고 보내는 환절기의 길목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풍경인 듯하다.
길게 계곡을 타고 은티마을에 도착하니 6시간 30분을 소요하고 산행을 마친다. 산골은 적막하고 땅거미가 몰려오는 맞은편으로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운무를 뒤집어 쓴채 수려하고 장쾌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돌아 오는 길에 수안보에 들려 반주와 함께 배를 채우고 온천수에 몸을 풀고는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향한다. 온천관광의 대명사처럼 호왕을 누리던 수안보는 바가지와 불친절의 오명을 쓰고 쇠락해가는 관광지가 되어 버렸으나, 요즘은 많은 노력으로 깨끗하게 정돈되고 상인들의 친절한 모습들이 눈에 띠게 달라졌으니 이제는 수안보를 다시 찾아도 좋을 것 같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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