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 2009년 12월 12일(토)
날 씨 : 흐림
동 행 : 이구회원(가족동반)
지인들의 모임에서 가족동반으로 송년여행을 떠났다. 자차를 이용하여 어달항(묵호항)에 집결하여 항구에서 대게와 문어 등 먹거리를 구한다. 자주 들른 곳이라 낮익은 풍경들, 항구를 드나드는 고깃배와 난전을 이루는 어시장, 어시장의 한 옆에서는 여전히 몇 몇 아낙들이 부지런히 횟감을 다듬고 있다. 이런 풍경들은 오래전부터 변한 것이 거의 없는 듯하다. 여늬 시장도 그렇지만 시장은 분주함과 경쟁으로 서민들의 삶이 꿈틀대는 듯하다. 그래서 '삶에 지쳐 의욕을 잃은 사람이라면 시장에 가보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
<가는 길에 들른 정선의 화암팔경중의 하나인 소금강>
항구에서 구한 먹거리를 들고 인근의 횟집에 자리한다. 회와 대게와 문어 등 푸짐한 먹거리는 좋았지만 빈속에 넘 많이 마셨나? 얼큰하여 모두 노래방으로 향하고, 연말을 맞아 연이은 술자리에 지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 싸지 않은 숙소는 방은 넓었으나, 화장실에 방수가 시원치 않아서 변기에 앉아 있으면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친환경적(?) 팬션.....ㅠㅠ)
아침 일찍 일어나 항구로 나갔다. 부지런한 어부들은 벌써 고기를 싣고 들어 온다. 수조에 오징어를 가득채운 고깃배도 보이고, 그리 많지 않은 어획량에 시름찬 모습도 보인다. 고기가 항구로 올라오면 경매꾼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손이나 휴대용 칠판을 이용하던 경매가 지금은 전표에 경매가를 적어 내는 방식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경매가 이루어지는 한옆에선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고기잡이를 마친 배를 정리하는 모습도 보이고, 아침식사를 하려는 갈매기들이 흘린 고기를 노리고 정신 사납게 이리저리 날아 다닌다.
항구를 벗어나 묵호항 주차장 앞으로 등대로 오르는 산책로가 있다. 허름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 입구에 "등대로 오르는길"이라는 안내문구가 보인다.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인가? 담장에는 그림과 함께 싯귀가 적혀 있어 나름대로 운치를 느낄 수가 있다. 그 순간 대문을 빼꼼이 열고는 요강을 들고 나와 골목길 하수구에 부어버리는 노파의 모습이 민망스럽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오며, 몸에 배어버린 습(習)이려니 하고 애교로 보아주고 싶지만 찝찝함은 어쩔수가 없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면 길게 늘어선 방파제와 함께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절을 말하는 담장에 써놓은 '늙은 어부의 노래'란 싯귀도 보인다. 가난했던 시절,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여도 풍요를 느껴보지 못 한 세대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등대로 오른느 길은 짧지만 가파르다. 약간의 숨이 차 오를때쯤, 길옆에 달아 놓은 표지판에는 "숨이 차시죠, 담배를 끊으세요"라는 금연켐페인이 걸려 있다. 그 문구를 보면서, 마누라의 잔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담배를 빼어 물고 뻑뻑 빨아대는 나라는 인간은 무감각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영원히 치료 못 할 불치병이거나, 이미 도가 터서 우연만한 일에는 무감각해져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다. 1968년 제작된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과 "연풍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2003년 5월에는 이를 기념하여 “영화의 고향”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조금더 오르면 묵호등대가 나온다. 묵호등대는 묵호동 해발 67m의 산중턱에 위치한다.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묵호등대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오징어잡이가 한창인 여름밤에 등대에 오르면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불빛이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등대홍보관과 주변에 소공원과 휴게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의 산책로와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이른 시간이라 등대와 홍보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곳에서 북으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간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가파른 산자락에는 작은 집터들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서울에서도 대표적인 판자촌인 난곡에서 나도 어려웠던 시절을 가까이 한 적이 있다. 그 곳은 삶에 지친 가난한 민초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새벽이면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지고, 밤이 되면 하루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추운 판자집을 데워줄 새끼줄에 매달린 구공탄 한두장과 쌀봉지들이 들려 있곤 했다. 그 시절, 저 비탈진 산자락에 게딱지 같이 달라 붙은 판자촌에는 힘겨운 하루를 보낸 가난한 어부들이 얼아 안되는 가족의 먹거리를 챙겨 들고, 무거운 다리를 끌고 숨차게 저 길을 올랐을 것이다.
산책로 옆으로 작은 팬션이 보이고 구름다리가 나온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소공원이 나오고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전망대에 서니, 잔뜩 흐린 날씨에도 구름사이로 태양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한 젊은 여인이 떠오르는 해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다. 저 여인은 무엇을 기원할까? 건강, 사랑, 취업, 부(富)? 나도 가족의 풍요와 건강과 화목을 기원해 본다. 가끔은 거국적으로 국가의 발전과 통일을 기원하는 등 변덕을 떨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의 갈망을 기원하는데 그치는 것 같다.
구름다리를 지나 해안도로로 내려서면 '까막바위'가 나온다. 남대문의 정동방이라는 까막바위 안내석 아래는 세종이 워쩌구 저쩌구 설명이 있는데, 외우진 못하겠고~ 사진을 한장 찍으려 가까이 가니 제법이나 큰 파도가 바위를 때리며 파편을 날린다.(새벽에 세수를 안하고 나온 것을 알아 차린것 같기도 하구~)
까막바위를 지나면 문어상이 있다. 문어상에는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조선중엽 온화하고 인품있는 호장(지역유지)이 있었는데, 하루는 2척의 약탈자들이 탄 배가 급습을 하였다. 호장은 이에 대응하여 용감히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침입자들은 약탈한 재물과 호장을 배에 싣고 돌아가려 하자 마을사람들이 달려들어 구하려 하였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이때 호장이 침략자들을 크게 꾸짖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광풍이 몰아쳐 호장이 탄 배가 뒤집혀 모두 죽게 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한척이 도망을 가려하자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배를 뒤집어 침략자들을 모두 죽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은 호장의 혼이 문어로 변신하여 침략자들을 무찔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마을에는 평온이 찾아오고, 지금도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면 복을 받게 되고, 죄를 지은 자가 지나가면 죄를 뉘우치게 된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문어상 아래 적혀 있는 것을 옮겨 적은 것 임) 그 후 쬐끔 좋은 일이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쬐끔은 착하게 살아 온 것 같기도 하다....^^* 산책을 마치고 아직은 한적하기만 한 재래시장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곰치국으로 해장을 하고 따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술독이 좀 빠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여행중에 적당한 음주는 분위기를 돋구기도 하지만, 지나친 음주는 여행의 줄거움을 반감시키니 자제를 하여야 할 것 같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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