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의 애환이 흘러 내리는 동강에 다녀오다.
2009년 8월 16일(일) 맑음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장마 질려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박은 낙엽 위에나 쌓이지 /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 오늘 갈런지 내일 갈런지 정수정망 없는데 /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 놨나 /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애정과 이별 수심과 상사 등을 노래한 정선아리랑의 고장인 아우라지는 한낮의 폭염때문인지, 한산하기만 하다. 아우라지 비문이 서 있는 돌탑옆의 나루터에는 연인인 듯 한 두 남녀가 이별여행이라도 하는 것일까? 한낮의 불볕 양광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아우라지 강 바닥에는 준설을 하는 중장비가 소음을 만들어 놓고, 티없이 맑은 동강의 푸른물을 온통 황토빛으로 바꾸어 놓는다. 옛날의 아우라지는 이 고장에서 생산된 임목을 뗏목으로 엮어 동강을 타고 운반하던 집합처로 떼꾼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고, 후엔 탄광의 성업으로 전국에서 광부들이 몰려 들었던 곳이다.
나이가 드는 탓인지 이른 새벽이면 눈을 뜨게 되고 창밖으로 보이는 첫번째 풍경은 먼 산 마루를 휘감고 있는 운무의 아름다움이다. 이런 날 태산(太山)에 오른다면 들꽃과 운무와 장쾌한 능선을 걷는 산행이 일품이리라! 그래, 소백의 도솔봉이 미답이니, 운무가 걷히기 전에 도솔봉에 올라 보자! 그러나 야심찬 나의 산행계획은 시큰둥한 아내의 표정에 의하여 좌절되고 만다. 폭염속에 산에 오르기를 꺼려하는 아내의 동조를 끌어 내기가 만만치 않다.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모습이 스스로 애처롭기는 하나, 깨우친 것이 있다면 길은 여러 갈래이고, 궂이 고집해야 될 만 한 길도 없다는 것이니, 대략 절충안을 모색하여 동강을 찾아 간다.
동강은 산행을 할 때나 물놀이를 하기 위하여 자주 찾은 곳이나, 동강을 한꺼번에 둘러 볼 생각으로 찾아 간 적은 없는 것 같다. 아우라지를 떠나 함백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옥순봉이 나온다. 단애를 이룬 강가의 푸른 암벽에 크고 뾰족한 암봉이 하나 솟아 있는데, 대나무 죽순처럼 생겼다 하여 옥순봉이라 부른다. 청풍호의 옥순봉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단일봉으로서의 모습은 영낙없는 죽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암벽 아래로는 공사로 인한 본강의 흙탕물과는 달리 티없이 맑은 물이 흘러 내리고 몇명의 태공들이 견지낚시를 즐기고 있다.
30여년 전 몇차례 기차를 갈아 타고서야 찾아 왔던 정선의 동강은 몇몇 탄광이 있는 계류에서 흘러 내리는 강물이 검은색을 띠고 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탄광이 성업을 이루던 시절의 이 고장 어린이들은 미술 시간에 강물을 검게 그렸다는 일화도 있다. 오래 전에 탄광촌에서 막장일을 했다는 지인이 거나한 술기운을 벗삼아 들려주던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살아 가는 이야기는 한 권의 소설과도 같이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이 찾아 와, 탄광에서 막장일을 했다는 탄광촌, 그리고 그들이 살아 가던 애환은 이제 추억의 한편으로 밀려 가고 탄광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떠나버란 정선은 광관객들이나 찾아 오는 오지의 한적한 마을이 되어 버렸다.
<백운산행때 산상에서 내려다 본 동강>
아우라지 강변에서 조금 더 올라 가면 탄광이 문을 닫고 지금은 폐선이 되어 버린 철길에서 철도자전거를 탈 수 있는 레일바이크 시설이 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레일바이크의 인기는 최악이겠지만 봄, 가을, 겨울이면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탈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문경에도 레일바이크가 있지만 그 규모나 주변 경관의 수려함에서 정선의 레일바이크를 앞서지 못할 것 같다.
아우라지를 떠난 동강의 물줄기는 백운산 칠족령 기슭을 지나 나리소와 바리소의 적벽 아래로 흐르며, 좋은 풍경을 만들어 놓으니, 소(沼)의 모습이 밥그릇을 엎어 놓은 바리를 닮았다 하여 바리소라 부른다 한다. 예전엔 떼꾼들이 뗏목을 타고 지나던 물길은 지금은 레프팅을 즐기는 여행객들의 보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힘이 들었는지 강변에 보트를 대고 쉬는 모습도 보이고, 강 건너 외딴 농가를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나룻배의 모습도 보인다.
나라안에서 100대 명산이라는 백운산엔 칠족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곳 백운산 아래 있는 문희마을과 점재마을은 이웃하고 있지만 강과 산으로 막혀 있어 몇백리를 돌아야만 왕래를 할 수 있던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옛날 이 곳에 살던 한 선비가 옻을 채취해서 항아리에 담아 놓았는데, 하루는 기르던 개가 없어져 찾다보니, 옻 항아리에 들어 갔던 개가 옻묻은 발자국을 남겨 놓아, 이를 따라간 길로 길을 낸 것이 칠족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바리소를 지나면 뾰족한 돌과 바위들이 자리하여 물이 적을 때면 황새와 천둥오리 등의 철새들이 떼지어 날라 들었다는 황새여울이 나온다.
<잣봉 산행시 전망대에서 바라 본 어라연>
황새여울을 지난 동강의 물길은 두꺼비바위를 지나 잣봉 아래로 휘돌아 흐르며, 동강 제일의 풍광이라는 어라연을 만들어 놓는다. 537m의 작은 산인 잣봉에 오르면 어라연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어라연은 잣봉과 연계하여 강변을 걷는 가벼운 트레킹코스로도 아주 좋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들어 물고기의 보고로 물반 고기반이라는 어라연은 조선조 비운의 왕이었던 단종의 영혼이 신선으로 머물고자 하니, 물고기들이 모두 나와 이를 반기었다는 전설이 깃든 어라연이다. 3개의 바위를 삼선암이라 부르기도 하고 가운데 바위를 옥순봉이라고 부른다.
<동강레프팅>
<두꺼비바위>
어라연에서 500m쯤 내려오면 된꼬까리가 나온다. 뗏목이 꺼꾸러질 듯 가파른 물살때문에 떼꾼들의 애를 먹이던 된꼬까리에는 "전산옥(全山玉)"이라는 여인이 운영하던 주막이 있었으며, 주막은 떼꾼들의 쉼터로 성황을 이루어 떼꾼들의 노래인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도 나온다. "눈물로 사귄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 금전으로 사귄정은 잠깐이라네 / 돈 쓰던 사람들이 돈 떨어지자 /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 / 놀다 가세요 자고 가세요 /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띠워 놓았네 / 만지산의 전산옥이야 술상차려 놓게나~", 이렇듯 떼꾼들은 한양까지 뗏목을 옮기며, 힘들게 벌은 돈을 곳곳의 주막을 거치면서 술과 여자에게 허비하고 한강나루에 도착하였을 때는 정선으로 돌아 오는 여비만을 달랑 남겨 놓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백운산 기슭 깍아지른 듯 한 절벽에는 석회동굴로 세계 제일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를 자랑하는 백룡동굴이 있다. 이 곳 주민 정무룡씨 형제와 우재성씨가 발견한 이 동굴은 백운산의 백자를 따고 정무룡 형제의 룡자를 따서 백룡동굴이라 명칭하고 천연기념물 260호 지정되었다. 길이가 1,860m로 3개의 지굴을 가진 이 동굴은 아직 개방하지 않고 있으나, 금년 10월까지는 기반시설을 마치고 11월 부터 개방을 할 예정이라 하니, 세계 제일이라는 백룡동굴에 기대를 걸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동강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과 수려한 풍광으로 언제 찾아도 정감이 어리는 곳이다. 동강의 본류를 벗어나 계류로 들어가도 곳곳에 수려함을 볼 수가 있다. 아우라지 윗쪽의 지게골을 비롯하여 항골, 덕산기, 광대곡, 도시곡, 숙암, 백석폭포, 골지천 등의 계곡이 수려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하루에 둘러 볼 수는 없고 이쯤에서 다음을 기약해 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동강을 둘러보다 보니 점심때를 훌쩍 넘겨 버렸다. 토종닭에 삼겹살과 과일까지 푸짐하게 먹거리도 준비 되었고, 더 이상 허기를 외면하는 것은 옥체(?)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동강의 한적한 계류로 들어가 다리 밑에 자리를 잡는다. 이곳은 계곡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다리 밑을 지나며 세력을 더하여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서늘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준비한 먹거리로 배를 채우고 반주로 소주 몇 잔을 곁들이니, 세상살이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진다. 식후에 몰려 오는 졸음을 궂이 참을 필요가 없으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잡고 배낭을 베고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계곡을 채워오는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잠을 깨운다. 밤이 와도, 아니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동강의 물줄기는 흐르는 세월을 감싸 안고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며 ,오늘도 쉼도 말도 없이 묵묵히 흘러만 가고 있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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