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숲과 계곡과 암봉이 아름다운 가리산에 오르다.
여행기간
2009년 5월 31일(일) 맑음
나의 평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조금은 선선한 듯 한 오월의 끝머리다. 날씨는 쾌청한데,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가 귀찮다. 모처럼 죽마고우들이 고향인 청주에서 만나고, 2차로 지인을 만나 밤늦도록 술타령을 하고는 새벽에서야 제천으로 돌아온 탓이다. 잠도 부족하고 숙취로 몸이 찌부덩하기는 하나, 이 좋은 날씨에 구들장을 짊어지고 하루를 때우기는 아깝다. 대충 배낭을 꾸리고 가까운 산행지를 찾다가 홍천의 가리산을 찾아 간다.
홍천군과 춘천시를 경계로 하고 솟아 오른 가리산은 해발 1,051m로 강원도 제1의 전망대로 손꼽히는 산이다. 전형적인 육산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부드러운 육산의 능선상에 아름다운 암봉이 오똑하게 올라서 있어 좌대에 올려 놓은 수석을 연상케 하는 산이다. 들머리인 자연휴양림 아래로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고 주차장 아래로 용수건폭포가 있다. 인적없는 폭포에는 젊은 두남녀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제법이나 선선한 날씨에 불구하고 춥다는 여친을(부부라면 그럴리가???) 강제로 끌어다 물속에 넣고는 못 나오게 하는 모습이 장난이 심한 듯하나, 여자도 그리 싫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청춘남녀의 사랑놀음이 좋기는 좋아 보인다.
폭포를 떠나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건강지압원이 나온다. 매끌매끌한 몽돌을 박아 놓은 길을 맨발로 거닐며 발에 지압효과를 주는 건강테마길이다. 주변으로 산막들이 몇개 보인다. 자연휴양림에 조성한 방갈로로 울창한 숲과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이면 많은 여행객들이 찾을 것 같다. 조금 오르면 삼림전시관이 나오고 빼곡한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면 취사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수통을 채우면 될 것 같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곧바로 오르면 가삽고개로 오르게 되고 왼쪽으로 계곡을 건너 오르면 무쇠말재로 오르게 된다. 어느 곳으로 오르던 간에 정상을 돌아 원점회귀를 하는 코스이나, 무쇠말재로 가는 길이 약간 가파르다.
계곡에는 한팀의 산객들이 산행을 마치고 땀을 앃어 내고 있다. 계곡을 건너 가파르게 오르는 길은 수목이 울창하고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가파라서 밧줄이 길게 매달려 있는 길을 오르면 무쇠말재에 오르게 된다. 능선은 부드러워서 걷기가 좋고 등산로 옆으로는 진달래가 많고 싸리나무 군락도 보인다.
무쇠말재는 옛날 큰 홍수때 무쇠로 말뚝을 박아 놓고 배를 붙들어 놓아 송씨 오누이만 살아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노아의 방주?) 연록이 점점 푸르름을 더하는 등산로 주위로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정겨움을 더한다.
능선의 끝으로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 막는다. 이것이 가리산 제1봉인데 수목이 우거져 그 모습은 촬영할 수가 없다. 1봉을 돌아 샘터로 향한다. 제1봉 하단에 여성의 성기를 닮은 구멍이 있고 석간수가 오줌 줄기처럼 졸졸 흘러 내린다. 이물이 400리길 홍천강의 발원수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시원한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1봉으로 오른다. 갑자기 앞서가던 울마눌 소리를 지른다. 커다란 흑염소가 한마리 나타난 것이다. 커다란 흑염소는 임신을 했는지 배가 불러 보인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상에 흑염소가 올라 온 것이 요상하다. 아마도 산 아래 농가에서 도망을 친 것 같은데, 이놈이 가리산 정상인 암봉을 오르 내리며 환약같은 냄새가 지독한 까만 변을 이곳 저곳 깔려 놓았다.
1봉을 오른는 길은 암벽구간이다. 그러나 철 손잡이와 발판을 만들어 놓아 그리 어렵거나 힘든 구간은 아니고, 부드러운 육산만을 걷다가 암봉을 오르는 색다름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암봉을 오르면 제1봉에 오르게 된다. 정상에는 차도블럭이 깔려 있고 작은 돌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서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침없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가리산이 강원도에서 제일의 조망산이라는 소문을 실감할 수가 있다. 북동으로 제2봉과 3봉이 수석처럼 서있고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좋은 풍경을 만들어 놓고 있다. 3봉의 뒤쪽으로 수위가 많이 낮아진 소양호가 내려다 보인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탓으로 파도처럼 굽이치며 아스라이 이어져 나가는 산맥들을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밀려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일망무제의 조망이라는 표현이 과장됨이 없다.
가파른 1봉을 쇠파이프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 섰다가 다시 2봉과 3봉을 나란히 오른다. 정상 암봉사이에도 척박한 환경속에서 야생화가 피어 끈질긴 생명력과 함께 정겨움을 더 한다.
가리산에는 천자묘의 전설이 있다. 지금은 몇몇가구가 옹기종기 살고 있는 내평리 산골마을은 소양호가 생기기 전에는 400가구가 넘는 큰마을 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한씨 성을 가진 머슴이 있었다. 하루는 스님 두분이 찾아와 묵어 가기를 원했다. 주인은 "방이 없으니, 머슴방을 같이 써도 좋으면 묵고 가라"고 하였다. 스님은 머슴에게 계란을 구해 달라고 하였다. 머슴은 스님들이 고기를 못 먹으니 삶은 계란이라도 드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계란을 삶아다 주었다. 머슴은 그날밤 잠결에서 스님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스님들은 가리산의 명당터가 있는데 이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 가리산 명당터에 계란을 묻고 계란이 부화하여 축시(丑時)에 닭이 울면 천자가 태어 날 것이고 인시(寅時)에 울면 역적이 태어 날 것이라고 하였다.
머슴은 몰래 엿듣는 바람에 삶은 계란이라는 말을 못하고, 이튿날 스님들의 뒤를 미행하였다. 스님들은 가리산 중턱에 올라 명당터에 계란을 묻고 기다렸으나 계란은 축시, 인시를 지나도 부화조차 하지 않았다. 삶은 계란이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명당터가 아닌 것으로 보았고, 설사 명당터라도 금관(金棺)을 써야 하고 황소 100마리를 잡아서 제를 올려야 하니, 우연만한 사람들은 묘자리를 쓰지 못할 것으로 보아 산을 내려 갔다. 머슴은 천자이든 역적이든 머슴살이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이곳에 아버님 시신을 묻기로 하였다. 그러나 머슴이 금으로 된 관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곰곰히 궁리를 하던 머슴은 금관 대신 노란 귀리짚에 시신을 싸서 묻었다. 그러나 황소 100마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때 등이 가려워 옷을 벗어 이를 잡았는데, 얼마나 많은지 토실토실한 이를 100마리도 넘게 잡았다. 머슴은 황소 대신에 이를 100마리 놓고 제사를 지냈으며, 그 후 한씨 머슴은 한나라로 건너가 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명당터에 묘를 쓰면 자손이 성공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암장을 하는 바람에 많은 유골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 들은 요즘도 가리산에 오르면 이곳 천자묘에 제를 올리고 벌초를 하여서 묘가 묵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산은 북동릉을 타고 내려온다. 부드러운 능선은 걷기가 아주 편하다. 능선을 걷다가 가섶고개에서 휴양림쪽으로 내려온다. 산비알이 계단식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자연현상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이 고산에 계단식 밭을 일구어 경작하였다고 보기도 힘들다. 하산길은 비알이 급해지다 낙엽송이 울창한 군락지로 내려선다. 낙엽송군락지를 지나면 계곡이 나오고 물소리 새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가리산을 한바퀴 돌아 오는데는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리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한다. 걷기가 그리 힘들지 않아 가족산행으로도 좋고, 울창한 숲과 계곡을 끼고 걷는 여름산행으로도 제격인 것 같다. 돌아 오는 길에 홍천의 명물이 되어버린 화로구이 맛을 보러 간다. 맛도 좋지만 여전히 손님들로 만원인 주차장과 꾸역꾸역 피어 오르는 화로구이 연기가 인상적이다. 출출하니 또 생각이 나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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