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운무가 넘실대는 소백산 산상의 화원으로~
여행기간
2008년 7월 27일(일) 흐림
나의 평가
계속되는 장마비로 산행을 하기가 만만치 않고 고물차마져 속을썩여 공장신세를 지니 답답증으로 몸살이 날 정도다. 어제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집안에 틀어박혀 컴과 붙었다 TV와 붙었다 시간을 때워보나 하루를 버티기가 힘들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비는 멈추고 구름만 잔뜩 내려 앉아 있다. 이런날 소백산에 오른다면 멋진 운무를 구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위와 비때문에 망서리는 마눌을 꼬시고, 지인에게 차를 빌려 소백으로 향한다.
소백산이야 여러코스로 자주 오른 산이니, 오늘은 콘크리트포도를 걷는 것이 식상하여 그동안 외면하던 죽령코스를 택하여 본다. 단양을 지나 구불구불 죽령길을 타고 오르면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는 죽령마루에 오르게 된다. 죽령이 이미 해발 600m가 넘으니 소백의 1/3은 오른셈이 된다. 고개마루에는 넓은 주차장과 함께 특산품과 관광상품을 파는 시설지구가 있다. 이곳에서 국립공원관리사무소를 지나 콘크리트포도를 따라 오른다.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아 있고 비는 내릴듯 내리지 않는다. 바람한 점 없는 고온다습한 후덕지근한 날씨는 여름산행의 최대의 적이다. 그리 비알이 심하지 않지만 땀은 줄줄 흘러내려 감당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천동이나 어의곡에서 숲길로 오르는 것이 낳을 것 같다. 침통같은 더위에다 변화없는 포도는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구들장 짊어지고 있는 것 보다는 훨 낳은 것 같다. 오르다 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서면 풍기읍이 운무에 가렸다 보이기를 거듭한다.
등산로 옆으로는 유난히도 질경이가 빼곡하게 자라고 들꽃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겨울의 바람과 설화와 봄의 들꽃과 가을 단풍과 여름의 초원과 부드럽고 장쾌한 능선으로 언제 올라도 좋은 산이 소백산인데, 여름 소백에 들꽃이 흐드러지니 산행의 재미를 더 한다. 산상으로 오를수록 빨간 고추잠자리가 유난히 많아 무리지어 날아 다닌다.
그러나 쉼없이 완경사를 올라야 하는 포도는 후덕지근한 날씨와 함께 지루함과 피로를 만들어 놓는다. 연신 땀과의 전쟁을 치루며 오르다 보니 제1연화봉이 올려다 보인다. 제1연화봉의 정상은 중계탑이 자리를 차지하여 오를수가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회도로를 타고 천문대로 내려선다. 이곳부터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라 걷기가 훨씬 편하고 고도와 약간의 바람도 있어서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다.
제1연화봉을 내려서서 천문대로 향한다. 산상에 오를수록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산상의 회원을 만들어 놓았다. 운무가 밀려와 산상을 가득채웠다가는 언제 그랬나 싶을만큼 밀려가며 조망을 틔우고를 거듭한다. 천문대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에도 야생화가 지천이다. 특히 원추리꽃이 많고 처음보는 꽃들도 자주 보인다.
산상을 가득 채웠던 운무가 밀려가며 운무사이로 드러나는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 것은 아주 좋다. 구름도 장쾌한 소백의 능선을 넘는 것이 힘이 드는지. 산맥을 타고 밀려 올라가는 모습이 힘들어 보인다. 소백은 녹색의 초원에 불이 붙은 듯 운무가 피어나고 바람에 밀려가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다.
겨울이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소백이라 불리우며, 제1연화봉, 연화봉, 제2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은 독립된 봉우리인 도솔봉과 형제봉까지 장쾌한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천년고찰인 국망봉 아래에 초암사, 비로봉 아래에 비로사, 연화봉 아래에 희방사와 동쪽의 부석사와 함께 천태종의 본산으로 대찰인 구인사를 품에 안고 있다.
가장 높은 비로봉 기슭과 국망봉 자락의 주목군락지와 한국의 에델바이스라는 솜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봄철의 철쭉부터 시작하여 원추리와 에델바이스를 비롯하여 각종 산야초가 가을까지 연달아 꽃을 피워 천상의 화원을 만들어 놓는다. 천문대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에도 원추리가 꽃을 피워 물씬 정감을 느끼게 한다. 연화봉은 운무에 쌓여 보이다 말다를 거듭한다.
숲이 울창한 자연학습탐방로로 들어서면 초원사이로 원추리가 무리지어 꽃을 피워 놓았다. 꽃길을 걷는 것은 너무도 기분이 좋다. 그러나 산객들이 음식을 먹고 잔밥을 버렸는지 일부 쉼터 구간에는 똥파리가 잔치를 벌이고 있다. 산행을 할 때 가져온 것들은 가능한 모두 회수해 가야 할 것 같다.
원추리가 만발한 탐방로를 따라 연화봉에 오른다. 정상에는 몇명의 산객들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시원한 운해를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와는 달리 소백은 온통 운무에 갇혀 있어 조망을 할 수가 없다. 이곳에서 간단히 간식으로 점심을 때운다. 그러나 잠시 쉬고 있노라니 가득한 운무는 바람을 타고 산맥을 휘돌아 넘으며 소백의 시원한 능선을 보여준다. 정상에도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아 다닌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온통 고추잠자리가 잔치판을 벌이는 듯하다.
바람에 밀려가는 운무의 향연은 가히 장관이다. 제1, 2연화봉쪽으로도 운무가 넘실대며 산맥을 휘감아 오르지만 풍기쪽의 운무는 산에 불을 붙혀 놓은 듯 운무의 향연이 절정을 이룬다. 참으로 좋은 풍경이다. 겨울이던 여름이던 태산에서 만나는 기이한 풍경은 힘들지만 악천후를 뚫고 올랐을때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특히 겨울의 소백을 좋아한다. 눈이 내리면 미끄러운 길을 달려와 비로봉에 오르곤 하였다. 능선으로 몰아치는 살을 에이는 듯 한 칼바람과 운무속에 피어나는 상고대와 설화가 너무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소백을 찾아 왔고 봄에 철쭉을 보러 두어번 오른 기억이 있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여름철에 찾아 온 소백은 한 됫박이나 쏟아 냈을 듯 한 땀의 노고가 헛디지 않을만큼 좋은 풍경을 보게 된 것 같다.
햇살이 내려쬐는 화사한 날씨였다면 그늘도 없는 소백의 화원은 그리 정감 어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운무와 바람과 함께 만난 산상의 화원은 악조건을 이기고 피어난 야생화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오후의 소백산은 바람과 운무와 고도가 가져다 주는 시원함을 만들어 놓아 가만히 있으면 서늘함을 느낄정도가 되었다. 이리저리 휘도는 운무와 들꽃이 좋아 한동안 정상에 머무르다, 주변의 풍광을 사진에 담으며 여유롭게 하산을 한다.
콘크리트 포도는 하산길에도 여전히 지루함을 만들어 놓는다. 죽령길이 이번에 처음이니 애교로 봐주고, 다음부터는 이길을 찾는 일은 여간해선 없을 것 같다. 소백에는 산토끼가 유독 많은 것 같다. 올라 올때도 두마리를 만났는데 하산길에도 두마리를 만났다. 수입개량종인 "쟈이언트"만큼이나 커다란 산토끼는 여유로운듯 느긋하게 길을 터준다.
하산길에도 앞으로 보이는 도솔봉이 운무에 묻히다 보이다를 거듭하고 등산로에도 운무가 밀려왔다 밀려가곤 한다. 가끔은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진다. 노루 한마리가 등산로 가운데다 따끈한 변을 무더기로 싸놓고는 숲으로 들어가 괴성을 지른다. 이녀석이 모처럼 행차한 소백산행에 시위를 하는 것 같다.
날머리인 죽령에 도착하니 쉬고 먹고 느긋한 산행은 5시간을 소요하고 마무리 한다. 여름이면 계곡산행을 즐기곤 하였는데 악천후를 따라 오른 소백은 산상의 화원을 만들어 놓은 들꽃과, 용틀음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운무의 향연과 함께 좋은 산행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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