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철도자전거의 명소인 경북제1경의 진남교반
여행기간
2008년 7월 5일(토) 흐림
나의 평가
갑자기 닥쳐온 폭염이 산행을 망서리게 하는 날씨다. 경북 문경에 있는 어룡산(617m)이나 오정산(805m)에 올라 볼 생각으로 진남교반을 찾아간다. 진남교반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다. 영강이 굽이굽이 오정산 자락을 S자로 휘돌아 흐르며, 주변의 수려한 암벽과 울창한 수목과 지금은 폐선이 되어 철도자전거 길로 변해버린 가은선철도와 신구도로가 서로 얽히고 교차하여 입체감을 더해주는 곳으로 1933년 대구일보 주최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경북팔경중에 제1경으로 선택받았다고 한다.
진남교반은 가은선철도의 진남역 부근에 있는 진남교 일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진남역에 도착하니 철도자전거를 타러 온 관광객들이 대기를 하고 있고, 먼저 출발한 팀은 반환점을 돌아서 되돌아 오고 있다. 문경은 우리나라 최고의 석탄산업지로 문경의 번창을 주도하던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자,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쇠락하는 산골읍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석탄운송이 주가 되었던 가은선은 폐광과 함께 1995년 부분적으로 폐선이 되어 방치되자, 한 시민의 제안으로 철로자전거 길을 만들기로 하고 미국에서 철로자전거 두대를 도입하여 운행하다가, 2003년 완전히 폐선이 된 후 지금의 철도자전거를 다량 구입하여 관광상품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진남역 앞으로는 조촐한 집단시설지구가 있고 강변으로는 수상자건거를 타는 곳이 있다. 레프팅을 할 수도 있지만 철도자전거를 빼고는 한산하니 손님이 없다. 정선의 철도자전거시설이 만원으로 예약을 하기도 힘들다고 하니, 철도자전거를 타보고 싶은 분들은 이곳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만,정선이 철로 주변의 풍광이 좀 더 수려하고 오염이 덜 되었으며, 주행거리도 길다는 점은 참고로 하여야 할 것 같다. 예전에는 가은역에서 진남역까지 터널을 빠져다니던 철도자전거 길은 지금은 진남역에서 구랑역쪽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되돌아 오는 짧은 코스를 이용하고 있다.
진남휴게소 앞에 주차를 하고 폐선이 되어 녹슨 철길을 타고 가은쪽으로 향하다 보면 고모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철교위를 걷다보면 진남교반과 영강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고모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험하지 않고 편하기는 하나, 고온다습한 한낮의 폭염으로 땀은 줄줄 흘러 내리고 숨이 턱턱 막힌다.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면 걷기가 훨씬 좋을 듯하다.
구불구불한 송림사이를 오르면 석현성의 문루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간단히 과일과 김밥으로 식사를 한다. 성안에는 두어채의 초가집이 복원되어 있고 나무그늘 아래로 벤취와 정자를 지어 놓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여 놓았다. 성의 뒤쪽으로 차량이 올라 올 수 있는 도로가 있다. 한팀의 가족이 차를 끌고 올라와 정자에 자리를 핀다. 삼겹살이라 구어먹을 요랑으로 폭염을 피하여 올라 온 듯하다.
고모산성에서 이어져 나온 석현성은 남쪽으로부터 적의 침공을 막고자 고모산성에서 새의 날개마냥 뻗어 관갑천(토끼벼루)의 단애에 이르는데 임진왜란중인 선조29년(1596)에 축조하였는 기록이 있으며 길이는 401m이다. 문헌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에 걸쳐 축조를 거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바람한점 없는 폭염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성곽을 따라 오르면 고모산성의 남문에 오르게 된다. 2004년 발굴조사를 한 결과 옹벽시설과 싸움을 할때 던지기 위한 주먹크기의 강돌을 쌓아 놓은 투석용 몽돌무치가 발견되었다고 하며, 대부분 성문위에 축조하는 문루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전장에서 돌맹이를 던지며 싸운 모양이다. 하기는 우리 소시적에도 이웃마을과 패싸움을 하게 되면 돌맹이 던지며 싸웠고, 요즘도 데모를 할 때면 돌맹이를 던지며 싸우니, 돌맹이는 인류최초의 무기이자 가장 오랜역사를 지닌 무기인 듯하다.
고모산성(姑母山城)은 신라 8대 아달라왕(156)때 신라와 고구려를 연결하는 지릅재길이 개통된 후에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삼국시대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성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들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높낮이를 맞추어 쌓은 성으로 그 길이가 1,300m에 이르며 보존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성의 남쪽은 깨끗하게 다시 축조를 하였지만 나머지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유성룡"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왜병이 몇번의 정찰 후 지키는 군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다 지나갔다는 안타까움이 있으며, 1896년 의병전쟁시 이강년의 부대와 일본군이 격전을 벌였으며, 6.25전란때도 중요한 방어거점이었다고 전한다. 산성의 서쪽으로 어룡산(617m)이 우뚝하고 동쪽으로는 운달산에서 맥을 이어온 오정산(805m)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오정산은 육산처럼 보이지만 능선에 오르면 많은 암벽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운달산에서 맥을 이어오니, 운달산을 많이 닮은 것 같다.
성문에 들어서면 몇기의 묘지가 있다. 묘지 옆으로 스티로폴로 만든 비석과 가짜 무덤이 널려 있고 몇명의 인부가 땅을 파고 있다. 호기심에 물어보니 "전설의 고향"을 촬영하기 위하여 공동묘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스티로폴로 만든 반원형 무덤을 엎어 놓고 그 위에 잔디를 덥고 촬영을 한단다. 시청자들의 더위를 식혀주기 위한 납량특집물을 제작하기 위하여 폭염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하신다. 호기심에 들여다 보는 나에게 "우습죠? 이게 다 사기극이래유" 하시니, 산골촌부의 순박함이 엿보인다.
고모산성에 올라서면 진남교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시원한 조망이 일품이다. 열기를 내뿜는 한적한 성에 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한사람이 커다란 카메라를 두개나 짊어지고 올라와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대다가, 나를 보고는 모델이 되어 달란다. 모항공사에서 발행하는 잡지사의 기자라고 하는데 한국의 명승지 및 유적지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 같다. 더워 죽겠는데 산성을 내려 섰다가 다시 올라 모델 노릇을 하고 모델료도 못 받고 하산을 한다.
다시 성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성곽의 아래로 산딸기 아주 많다. 붉게 익은 산딸기가 먹음직 하다만은 내려가서 따기는 어렵다. 울마눌 엎드려서 팔을 뻗어 보나 겨우 몇개 건져 올렸을 뿐이다. 그까짓껏 산짐승한테 양보하고 안먹는 것이 훨 낳을 듯 싶다.
석현성곽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수풀이 울창한 성곽 아래서 고라니 한마리가 후다닥 달아난다. 성곽이 막혀서 산으로 오르지 못하고 성곽밑에서 낮잠을 자다가 불청객의 출연으로 놀랐던 모양이다. 에고! 미안하구먼~ 고란씨....^^*
성곽의 끝으로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하다는 토끼벼루가 나온다. 일명 토천(兎遷), 관갑천(串岬遷)이라 불리우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기를 고려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 나자, 토끼가 달아난 길을 따라 간 곳이라하여 "토천"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급경사인 벼랑길에 오솔길이 나있는 토천은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 였다고 한다.
토천길을 걷다가 암릉구간의 안부를 넘으면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소로가 영남대로로 이어진다. 몇천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짚신을 신고 이길을 걸었으면 바위가 닳아서 홈이 되고 반들반들하게 반짝거린다. 암릉의 안부에는 오정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표가 서있다. <오정산 2시간 30분>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폭염탓으로 진남교반을 둘러 보기에도 땀으로 범벅이니, 오정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하산을 한다.
산길을 내려서면 영강을 가로지로는 대로의 교각 아래에 다다른다. 도로로 올라서면 차량이 씽씽 달리는 석문이 보이고 아래로 승마장의 말들이 내려다 보인다. 다리를 건너 철도자전거길로 이용되고 있는 가은선 철길로 올라선다. 남들은 철도자전거를 타고 철길을 오가는데 우리는 걸어서 철길을 따라간다.
철로 옆으로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수량이 풍부한 영강이 굽이굽이 흘러 내린다. 강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물에 들어가 올갱이를 잡는 모습도 보인다. 다리밑에는 더위를 피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고기를 굽고 소풍을 즐기고 있다.
진남교반과 고모산성에 올랐다가 토천을 돌아 오는데는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찜통더위만 아니라면 가벼운 산책코스로 좋을 듯하다. 진남교반의 근처에 클레이 사격장인 <문경사격장>과 <석탄박물관>이 있고, 칼슘중탄산과 알카리성 온천을 겸할 수 있는 <문경온천>이 있으며, 왕건촬영지인 문경새재(조령)가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에 있어 연결여행이나 산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문경팔경의 하나라는 운달계곡에 들렀다. 운달산의 동남쪽에 뻗어 있는 운달계곡은 충북의 수려한 계곡들에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숲이 울창하여 시원함을 더한다. 이곳에서 운달산 산행을 할 수 있다. 성주봉쪽으로 오른다면 산행시간이 7시간이상 소요되나, 운달계곡 김룡사 앞에서 오른다면 2시간 3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운달계곡의 깊은곳에 자리잡고 있는 김룡사는 제법 그 규모가 큰 대찰이다. 신라 진평왕10년(588)때 운달조사가 창건을 하여 운봉사로 부르다가, 조선조때 문경부사였던 김모라는 사람이 불공을 드리던 중에 절앞에 있는 용소에서 만난 용왕의 딸 사이에서 아들을 얻으니, 이름을 용이라 지은 후 김룡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부적절한 관계인 듯 하기도 하고~) 그 후 소실된 것을 몇차례 중창하였으며 r김룔사가 번창하였을 때는 48동에 달하는 대소전각과 여러개의 암자를 두고 있었으나 지금은 30여채의 전각과 4개의 암자를 두고 있다.
더위 때문인지 절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고 관광버스 한대가 사찰순례단을 태우고 와서 절을 둘러보고 있다. 절을 한바퀴 둘러보고 석간수로 목을 축인 뒤 김룡사를 떠나온다. 수목이 울창한 운달계곡에 들어서면 시원함을 느낄수가 있다. 한쌍의 연인인듯한 남녀가 더위를 피하여 계곡에 자리를 펴고 오수를 즐기고 있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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