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時)에 말하길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 애닯다. 부모님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고 수고하시니, 그 은혜를 갚자면 넓은 하늘도 끝이 없네"라고 하였다. 아버님을 여의고 두달만에 어머님을 잃었다. 아버님은 향년 86세, 어머님은 8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님 가시고는 위중한 어머님 걱정에 슬플 겨를도 없었는데, 어머님을 보내고 나니, 가슴 한 귀퉁이가 휭 하니 뚫린 듯 허전함을 이기기 힘들다.
배움도 가짐도 없이 맨몸으로 분가하여 참으로 열심히 살며, 부모님께만은 무던히도 잘해드리려고 한 것 같다. 동생이 기반을 잡기 전에는 수입이 괜찮은 형님이 있어도, 아버님은 늘 둘째인 나에게 어려움을 말씀하셨다. 담장과 헛간채를 만드시겠다고, 지붕이 새고 물받이가 낡았다 하시면 나는 주저함 없이 도와드렸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가게에 딸린 두평자리 방에서 비키니옷장 하나와 냄비 두어개를 놓고 갓난 아들놈과 세식구가 비좁게 살던 그 시절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사업을 포기하고 일이 잘못되자 나는 다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처자식을 오백만원짜리 전셋방에 남겨놓고 객지생활을 하게 되었다. 박봉에 부채는 줄지 않아도 부모님께는 무던히도 잘해드리려 하였다. 중도에 어려워진 형님을 대신하여 효심 지극한 동생과 함께 14대 종가집의 그 많은 일과 비용을 둘이서 부담하며, 어머니가 가지고 싶어하는 가전이나 주방용품, 심지어는 그릇까지도 한번도 주저함 없이 사드렸다. 가끔은 쪼들림에 지친 아내를 달래며, 동생과 번갈아가며, 시간만 나면 부모님께 달려가 바람도 쐬어 드리고 드시고 싶은 것, 이제껏 못드셔 보신것을 사드리고는 하였다. 그럴때마다 아버님은 나에게 늘상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즐거워 하셨고, 나는 그 즐거워 하시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이내 자리를 보존하셨다. 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도 안타까운데, 어머님 말씀 한마디에 나는 아내가 볼까 방문을 닫고는, 어른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흐느껴 울었다. "너희들이 아버지 입에만 맛있는 것을 넣어 드렸지 언제 에미입에 넣어 준 적이 있냐?" 그렇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만 챙기고 건강하시여 홀로 잘 드시는 어머님께는 신경을 덜 쓴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마음 몰라드려 죄송합니다"를 되뇌이며 나는 밤이 으슥하도록 눈물지었다.
"경행록(景行錄)에 "보화는 쓰면 다함이 있고, 충성과 효성은 누려도 다함이 없느니라." 하였으나, 자식이 아무리 효도한다 하나 부모님이 부족해 하시면 불효가 아니던가? 나는 내가 효자인줄 알았는데, 남들도 나를 효자라 하였는데, 어머님 속마음 하나 알아차리지 못한 형편없는 불효자식이었던 것이다.
식자(識者)로, 세상을 안아보려는 욕심때문에, 일을 멀리하고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님을 대신하여 늘 밭에서 일과 싸워야했던 나의 어머니는 외로운 분이셨다. 일제때 중국으로 이민 간 외가와 홀로 떨어져 45년동안 친정 소식도 모른체, 층층시하의 가난한 종가집 맏며느리로, 줄줄이 말썽꾸러기 육남매의 어머니로 고달프고 한이 맺힌 삶을 살으셨다. 아버님 가신 후 몇년만이라도 더 사셨다면 아버님께 드린 정성 어머니께 더 할 수 있었을텐데, 자식이 제 아무리 잘하려 하여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고, 자식이 아무리 잘한다 하여도 부부만 못하다 하더니만, 그리도 아버님 그리우신지, 아버님산소에 잔디뿌리도 내리지 않았는데 아버님을 따라 가셨다.
"명심보감"에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거니와 의롭지 않다면 부자인들 무엇하랴, 의가 끊어지고 친함이 갈라지는 것은 오직 돈 때문이니라." 하였으며, 유교에서 논하기도 제물을 차려 제를 지냄은 돌아가신 영혼이 드심이 아니고, 자손에게 효를 배우도록 함이며, 자손과 일가가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우애를 돈독히 함에 그 뜻이 있다 하였으니, 이제 어머니 아버지 모두 보내고, 남은 자식들이 하여야 할 일은 부모님 영정앞에 푸짐한 제물을 쌓음이 아니고 모두 화목하여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즐거운 자리에 앉아도 늘 허전하고 쓸쓸함이 가시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이 허전하고 쓸쓸함을 다 지울 수 있을까? "자식이 제 아무리 어버이께 잘한다 하여도, 어버이 마음 다 채우기 힘들다"고 하였지만, 더해드리지 못하고. 다해드리지 못한, 이 못난 자식을 용서 하시고 이승에서 못다함, 저승에서라도 다 누리시길 바라옵니다.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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