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끄적휘적

죄수(수인)의 딜레마

바위산(遊山) 2008. 8. 29. 23:29

"죄수의 딜레마" 또는 "수인의 딜레마"라 하는 것은 일종의 게임의 이론의 하나다. 사례로 두명이 참가하는 비제로섬 게임의 하나로 협력을 통하여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이 배제되고 더욱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론의 하나다. 두명의 사건 용의자가 체포되어 서로 다른 취조실에서 격리되어 심문을 받으며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 증거는 없고 이들의 자백여부에 따라 다음의 결과가 온다고 하자.

 

둘 중 하나가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즉시 풀어주고 나머지 한 명이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둘 모두 서로를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둘 모두 3년을 복역하도록 하고 둘 모두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둘 모두 무죄가 된다고 하자.

 

이럴 경우 죄수 A의 경우 죄수B가 침묵 할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죄수B가 자백 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자백이 유리하다. 따라서 죄수A는 죄수B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백을 선택한다. 죄수 B의 경우는 죄수 A와 동일한 상황이므로, 마찬가지로 죄수 A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백이 유리하다. 이럴 경우 죄수 A, B 는 모두 자백을 선택하고 각각 3년씩 복역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게임의 죄수는 상대방의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최대화한다는 가정 하에 움직이게 된다. 이때 언제나 협동보다는 배신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므로 모든 참가자가 배신을 택하는 상태가 내쉬균형(각자가 최적의 결과를 예상하고 행한 행동의 종합이지만, 이로부터 반드시 최적의 결과가 나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쁜 결과를 포함하는 것이야말로 내쉬균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상대방의 최적전략을 예상하고 수립한 최적전략이지만 상대방이 그 최적전략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의 전략도 최적이 아니게 된다는 뜻)된다.

 

참가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선택에 상관없이 배신을 하는 쪽이 언제나 이익이므로 합리적인 참가자라면 배신을 택한다. 결국 결과는 둘 모두 3년을 복역하는 것이고, 이는 둘 모두가 배신하지 않고 무죄가 되는 것보다 나쁜 결과가 된다.

 

신자유제도주의론자들은 이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하여 여러가지 국제관계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냐에 초점을 맞춰왔다. 예를들어, 왜 개별 국가들이 세계적인 환경을 해치고, 자원을 남획하며, 분쟁지역에 무기를 판매하는가에 대한 설명의 준거로 활용되어 왔다. 상위정부가 없는 개별국가 간의 국제체제에서 상대국가의 전략이 항상 협동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개별국가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신자유제도주의자들은 이 결과 국가들은 협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협동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개별국가에 우선하는 국제레짐(국제관계의 특정영역에서 국가들이 합의한 명시적인 규칙을 지닌 제도)의  등장을 말하고 있다.

 

각설하고,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죄수의 딜레마"가 생각난다.

진보와 보수, 반지지론자와 지지론자들이 자신을 정당화 하고 상대를 물어 뜯으려 악을 쓰고 있다. 정보의 홍수라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누구나 쉽게 자기의 의견을 표출하고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장이 형성되어 있으나 익명의 탈을 쓰고 논리도 합리도 내용도 없는 의견이나 댓글로 홍수를 이루고 심지어는 과장과 선동, 비방과 욕설로 도배를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죄수의 딜레마"의 두 죄수의 환경과 다른 것은 쌍방이 따로 격리되어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신뢰만 있다면 충분히 소통하고 절충하여 윈윈할 수 있는 환경속에 있으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혹시나 상대가 침묵하여 자신은 무사하기 바라는 요행이나,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나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않는 소통의 단절속에서 택하는 "죄수의 딜레마"의 이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모두 벌을 받아야 하는 불리한 게임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세상만사에 원칙은 없다. 설사 있다면 그것은 그 집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여 놓고 지키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법도 관습도 도덕적 가치도 나라나 민족이나 집단마다 각기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었인가?

많은 것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사상이나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에 나타나는 괴리와 분열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의견에 대하여 충분히 소통하고 조율하여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것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윈윈전략임을 알면서도 쉽게 조성되지 않는 것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믿음을 만들기 위하여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상대가 나를 신뢰하고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주장을 세움에도 솔직함과 함께 합리적인 논리가 따라야 하고 특히 상대에 대한 충분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예의를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토론장은 항상 난장판으로 변질되고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게 된다. 

 

합리적인 타협의 장을 만들고 서로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신뢰확보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나라안에서 "국제레짐"의 역할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공평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거나 불합리한 법과 제도가 있다면 과감히 정비하여 누구나 법을 신뢰하고 지키도록 하여 법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불신의 폭을 줄이고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모두가 공멸하지 않고, 공정한 제로섬게임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며, 더 나아가서는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게임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복잡다양한 이 사회를 살면서 누구도 죄수의 굴레에서 벋어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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