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하면서 둘러보는 주변의 풍광은 아주 좋다. 암봉이 연봉을 이루고 구불구불 멋지게 자란 노송들과 어울려 좋은 경치를 만들어 놓아 "해동 제일의 명산"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가야산은 가야건국설화를 간직한 영산으로 옛부터 "정견모주" 라는 산신이 머무는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는 천신인 "이비하"에 감응되어 두아들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가 되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칠불봉은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와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왕위를 계승하고 김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나머지 7명의 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도를 깨달아 생불이 되었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가야산은 산신이 머물고 있어 삼재(수재, 화재, 병화)가 들지 않는 해동영지로 알려진 영산이라고 한다.
상왕봉을 왼쪽으로 돌아서 다시금 철계단을 타고 올라 상왕봉에 오르게 된다.
상왕봉은 1430m로 칠불봉 보다는 3m가 낮으나 그 웅장함은 칠불봉에 뒤지지 않는다. 몇몇의 산객들이 정상표지석 아래서 작은 돌을 주어 비닐봉지에 담고 있다. 무엇에 쓰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궂이 물어 보지는 않았다. 웅장한 암봉들과 시원한 조망을 즐기며 땀을 식히고는 하산을 서두른다. 주차를 해놓은 백운동으로 향할까, 해인사로 돌아 내려갈까 잠시 망서리다가 해인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해인사로 하산하는 길은 유독 산죽(조릿대)이 많이 자라고 있는 부드러운 등산로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자칫 변화없는 하산길이 멀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르 내린 것이 다리에 무리를 주었는지 무릅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진다.
백운동을 출발하여 해인사에 도착하니 5시간을 소요하고 산행을 마친다.
해인사 뜰에는 태어나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와 사망을 맞이하는 어느 순간도 빼어 놓고 지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인생역정을 깨닳으며 거니는 "베론성지"의 "야외제대"처럼 인생을 되돌아 보며 거닐도록 제대를 만들어 놓아 많은 이들이 거닐고 있고 어떤 참배객은 탑을 돌며 기도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종교는 달라도 그 의식은 비슷하고 목적은 더욱 같으니 "종교의 끝은 하나"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많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 대찰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하다. 사찰의 규모가 대단한데도 보수와 중창을 거듭하고 있다. 가야산의 한적함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해인사를 찾아와 꽤나 북적인다. 해인사 뜰에는 백목련이 꽃망울 터트리고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부지런한 불자들이 연등을 달아 놓았다.
우리도 가족의 건강과 성실한 삶을 기원하며 등을 하나 달고 해인사를 떠나온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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