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에 병원에 들러 약속한 의사면접 후 집에오니 오후 시간이 비어있다.
울마늘 산에도 안가고 답답할 듯도 하여 그동안 마음만 먹고 찾아 보지 못한 영월에 있는 장릉을 찾았다.
아래가 장릉을 오르는 길이다.
길옆에는 오래된 송림이 빼곡하다.
장릉주변에는 노송들이 우거져 운치를 더해준다.
아래 전시관에는 한맺힌 단종의 역사와 유물등이 전시 되어 있어 단종의 한을 느낀다.
아래가 박충원 정여각이다.
중종 26년 문과에 급제하여 문경공이란 시호를 받고 영월군수로 부임하였다.
꿈에 단종이 현몽하여 묘를 찾아 달라고 하여 충신 엄흥도의 후손과 함께 암장되었던 단종의 묘를 찾아 수축하고 제를 올렸다 한다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2년 이곳에 정현각을 세웠다.
배식단이다.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한식때 제를 올리는 제단이다.
영천이다.
장릉에 제사를 올릴때 사용한 우물로 보통때는 조금씩 샘이 솟아나다 매년 제향을 지낼때면 용출하였다 한다.사방이 돌로 축조되어 있으며 깊이는 1.5m정도로 나즈막하다.
우물안에는 누군가 기도를 하며 던졌는지 다양한 동전들이 물속에 잠겨져 있다.
이곳 길에는 신만이 다녔다던 신로가 있고(좌측길) 제관이나 일반인들이 다녔다는 왕로(우측길)가 있다.
단종대왕의 제를 올리는 곳으로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와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단종비각이다.
노산군의 묘를 장릉으로 추봉하면서 비각을 세웠다.
비각에는 단종의 생애가 기록 보존되어 있다.
배식단사이다.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264인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아래가 청렴포다.
장릉에서 조금 떨어져 영월 서남쪽 3km쯤에 위치하며 남쪽은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삼면이 강으로 막혀 있어 배를 통하지 않고는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유배를 살던 곳으로 단종이 한양을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이 있으며 단종유지비각 남아 잇다.
망향탑 아래는 관음송이라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단종이 이 소나무에 걸터 앉아 오열하는 애처러운 모습을 보았다 하여 관음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영월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선돌이 있다.
높이 70m의 장엄한 바위가 우뚝 솓아 있어 선돌이라고 부른다.
서강의 푸른물과 층암이 어우러져 한폭의 한국화를 연상케 한다하여 신선암이라고도 부른다.
이곳 아래에는 자라바위가 있고 자라바위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오는길에 요즘 TV에 잘나오는 한반도 지형에 들렀다.
강줄기 휘돌아 감고가는 반도 부분이 한반도를 닮았다 하여 요즘에는 사진작가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접근도로가 비포장이라 먼지를 풀풀 날리며 찾아 가야 한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니 내년쯤에는 도로 사정이 좋아지리라.
단종의 역사를 둘러보고 단종의 애처로운 한을 느낀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으며 등극한 세조도 후일 대왕의 칭호를 얻으니 부당하게 정권을 잡았으나 후일 정치에서는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발전시킨 왕이 아닌가 싶다.
조선조를 통털어 군강약신(君强弱臣)으로 통치권을 확보하고 나라를 발전시킨 왕은 태조, 태종, 세종, 세조 뿐이 었다는 생각이니 그외에는 군약강신(君弱强臣)으로 붕당정치 세력에 임금이 휘말려 제대로 된 통치권을 발휘하지 못한것 같다.
후일 정조가 君權을 도모하기 위하여 친위구테타를 도모하나 원인모를 죽음에 처하고 조선조는 힘없는 왕권을 둘러 싸고 붕당세력이 창궐하며 쇠약의 길을 걸은 것 같다.
어느 때던 훌륭한 통치력을 갖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진정으로 노력하는 지도자가 있어야만 나라가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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