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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바위산(遊山) 2017. 2. 4. 20:12

 

1860년 초 프랑스 박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는 진기한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현지 안내인 네 명과 함께 캄보디아의 밀림 속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안내인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더 들어가면 몇 백 년 동안 텅 빈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에는 주술에 걸린 수많은 유령들이 들끓고 있다고 했다.


<7사상:일곱마리의 코부라상으로 몸통으로 교각을 장식해 놓았다>

무오는 텅 빈 도시가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곤 직접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안내인들을 설득해 밀림 속으로 계속 들어가던 무오는 갑자기 펼쳐진 장관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일기에서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함과 우아한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그 어떤 유적보다도 위대하다.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무오가 발견한 곳은 400년 전에 멸망한 옛 도시 앙코르의 폐허로 현재 캄보디아의 북서부 시엠립의 톤레사프호수 북쪽 일대(일명 앙코르 지방)에 있는 돌과 벽돌로 지어진 앙코르와트 유적군이다. 앙코르와트는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으로, 그 일대 수많은 앙코르 건축물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유적지인데 때로는 일대 유적군 전체를 ‘앙코르와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오가 앙코르와트를 발견할 당시 그곳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기거하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들머리: 사자상과 7사상으로 장식해 놓음>

앙코르와트가 위치한 시엠립은 캄보디아 3대 도시 중 하나로 한국의 경주 같은 고대 도읍지이다. 앙코르와트에는 폭이 넓은 도로가 동서로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정교하게 건축한 사원 600여 개가 세워져 있다. 그중 10여 개는 크기가 이집트의 룩소르대신전이나 중세 유럽의 대성당과 비교할 만하다. 12~13세기에 앙코르왕국은 두 왕의 강력한 통치로 번성했다. 태양의 수호자로 일컬어진 수리아바르만 2세는 지금의 타이 영토까지 세력을 떨쳤고 ‘도시의 사원’ 앙코르와트를 건설했다.

<해자: 앙코르와트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물의 압력에 의하여 건물의 붕괴를 막았다고 함>

앙코르와트는 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의 웅장한 사원으로, 약 2만 5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37년 동안 건설하였다고 한다. 몇 겹의 성곽이 앙코르와트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마지막 성곽 바깥은 다시 폭 190미터의 거대한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는 드물게 서쪽에 정문 입구를 두었으며 큰 탑문이 있다. 탑문에서부터 사당까지는 너비 9.5미터, 길이 475미터인, 돌이 깔린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이 유적은 수리아바르만 2세가 힌두교 비슈누에게 바친 것으로, 그가 죽은 다음에는 묘로 쓰인 것 같다고 한다.

<진입로: 동서에 하나씩 있으며, 현재 보수중이며, 옆으로 새로운 다리를 만들고 있다>

사원을 제대로 보려면 3생(전생 · 현생 · 내생)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건물은 세 겹으로 된 회랑과, 이 세 겹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앙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겹의 회랑은 중앙 사당 쪽으로 들어갈수록 한 단씩 높아져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울딸~ 여행 고마워!!!>

제1회랑은 동서 215미터, 남북 187미터이고 총 800여 미터인데 회랑벽면에는 크메르제국의 신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역사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캄보디아에서는 역사교과서와 같다. 박물관 유물을 훑어보듯 돌아보아도 족히 1시간은 걸리는 이 엄청난 ‘4단 병풍식’ 부조에는 힌두교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 나오는 카우라바족과 판다바족 간에 벌어진 쿠루크세트라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수리아바르만 2세가 코끼리를 타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도 있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을 표현한 장면도 있다. 88명의 아수라와 92명의 신이 장생불로약을 추출하려고 ‘넓은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버터를 만드는 신화 속의 한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800여 미터에 이르는 부조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신의 영역인 높이 65미터의 중앙탑은 70도가 넘는 가파른 성벽 그 자체로 담력이 없는 사람은 오르기를 포기할 정도다. 능숙한 등산가라 할지라도 두 손 두 발을 써서 기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를 신에 다다르기 위한 예의라고 한다. 모서리에 네 개의 탑이 서 있는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탑은 앙코르와트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궁궐처럼 화려한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앙코르와트는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한 사당인데 중앙탑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받드는 수미산(須彌山)을 나타내고 참배 길은 세계의 기축(基軸) 도로를 모방하며 둘레를 에워싼 벽은 히말라야산맥을, 해자는 세계의 끝인 깊은 바다를 상징한다. 사원 안의 곳곳에는 비슈누에 관한 신화가 조각되어 있고 국왕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코브라 · 압사라무희의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후계자인 자야바르만 7세는 30년을 통치하면서 세력을 최대로 확장시켜 현재의 캄보디아 · 라오스 · 타이 · 베트남 남부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고 도읍인 앙코르톰을 재건하고 병원 · 숙박시설 · 도로를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건물에 이런 글귀가 남아 있다. “임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이다.” 지금 게이트에 휘말려 나라안을 시끌하게 만든 우리의 지도자는 자신의 고통보다 백성의 고통을 우선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앙코르와트는 인파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30% 이상을 차지하여 단연 1위이고 다음이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들이란다. 그 때문에 이 곳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음식점들이 많아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숙식 편의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앙코르와트 주변으로 간이 매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장사를 할 수 없음에도 고위층에 빽이 있는 사람들이 불법으로 장사를 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 점검을 나올때는 모두 철수를 한다고 한다. 법이나 정의가 세워져 있지 않은 빈국의 부조리는 공항에서도 볼 수가 있다. 비자 수속을 밟는데도 공항의 담당 경찰관들은 노골적으로 1달러의 팁을 원한다. 이때 NO라고 하면 트집을 잡아 길게 늘어선 줄의 끝으로 돌려 보낸다. 이를 탓하는 관광객들의 불만도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불평하기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에서 교육율 1위, 군사력 7위, 경제력 10위권의 우리나라 국가청렴도는 57위다. 지금도 나라안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게이트로 시끌하다. 이러한 현상은 열악한 국가청렴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부끄러운 수치다. 이제는 나라안 곳곳을 대대적으로 정화하여 국가청렴도를 상위권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층르로 오르는 계단: 원계단이 너무 가파라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임시로 만든 계단임>



 <2층에서 바라본 사원의 1층>

 

 

 <수조: 탑 중앙의 양옆으로 3층까지 수조가 있음>

 

 

 <3층(천상계:신의영역)에서 내려다 본 1층> 

앙코르와트 벽면에 새겨진 무늬와 압사라 동상과 불상:  크메르에 문자가 없었던 탓인지 벽면을 가득채운 문양은 매우 정교하고 다양하다. 크메르 문명의 커다란 흠은 문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에는 역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문자를 대신하여 조각과 동상 등으로 역사와 종교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앙코르아트를 한바퀴 둘러 보는데는 4시간 가량 소요된다. 정교하고 웅장한 유적이므로 세세히 살펴 본다면 하루 일정은 족히 소요하여야 할 것 같다.

               

사원 주위로 캄보디아의 국목(國木) ‘팜나무’가 늘어서 있고 원숭이 들이 관광객들이 건네준 야자나 사탕을 까먹고 있다. 팜나무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이 나무는 ‘좋은 나무’라고도 하고 ‘나쁜 나무’라고도 한다. 팜나무가 좋은 나무로 의미를 지닐 때는 이 나무를 통해 설탕과 팜유, 음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나무로 의미를 가질 때는 지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 동안 킬링필드가 일어났는데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이던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가 캄보디아 사람을 무차별 학살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를 던져 총을 쏘아 학살했는데 이후 총알이 아까워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팜나무에 아이를 쳐서 죽였기 때문에 팜나무는 나쁜 나무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의 팜나무가 캄보디아의 국목이라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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