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 숲길 - 도종환 -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일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러 뻗어 있는 숲길 같은....
사려니 숲길은 비자림로를 시작으로 물찻오름과 사려니오름을 거쳐가는 숲길로 한라산 등산코스인 성판악 휴게소 아래쪽에 위치한 숲길이다. 비자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평균 고도는 550m이다. '제주 숨은 비경 31곳' 중 하나로 훼손되지 않은 청정 숲길로 한라산을 오르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가족단위 트래킹코스로 좋은 곳이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사려니 숲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존 지역이기도 하다. 사려니 숲길은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차량통행이 이루어 지던 곳이었지만, 2009년부터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본격적인 탐방로를 조성해 국제 트레킹대회를 치르면서 현재 제주를 대표하는 숲길로 사랑받고 있다.
완만한 경사로 15km정도 이어지는 사려니 숲길은 어린이나 노인들도 쉽게 완주할 수 있는 곳으로 5.16도로를 지나 제주시와 서귀포를 오가는 성판악 주차장에서 들어서는 코스는 평상시 통제되고 있어 비자림로에서 붉은 오름까지 10km구간만 개방되어 있으며, 나머지 구간은 난대산림연구서에 탐방 2일전까지 예약을 해야하고, 한남 출입구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성판악 들머리의 한라산 산행팀 >
<씩씩하게 출발하는 한라산 산행팀을 뒤로하고~>
모처럼 병원직원 20명이 찾아 간 제주여행은 한라산 등반이 주 목적인 사람들과 여행이 주 목적인 사람들이 믹서되어 있다. 그래서 산행팀은 한라산으로 오르고, 나머지는 샤려니숲 트레킹에 나섰다. 골수 산쟁이가 샤려니숲을 택한것은 운무에 휘감긴 한라산의 경치를 볼 수 없이 걸어야 한다는 것과, 망가진 허리통증에도 있으며, 비산행인들의 귀중한 하루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샤려니숲길 트레킹팀>
시인 도종환은 <사려니 숲길>이란 시에서 '신역으로 뻗어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이라는 표현을 썼다. 샤려니 숲길을 신역(神域)으로 표현한 도종환 시인의 시구와 멋지게 어울리는 숲은 자연이 저절로 키워놓은 원시난대림과 인공조림지인 삼나무숲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거기에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숲을 돌아 보는데 입장료 한푼 받지 않으니, 사려니 숲이야 말로 사려깊은 숲이 아닐까?
<왕고비 군락지>
<샤려니숲길 탐방지도>
<천미천 아치교>
길은 매우 부드럽고도 넉넉하다. 차량이 드나들던 임도를 주탐방로로하여 울창한 숲사이로 나있는 사잇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아쉬움이라면 많은 사잇길이 생태보전차원에서 출입금지구역 표지판으로 막아 놓았다. 트레킹구간의 중간을 지나서 나타나는 물찻오름을 올라볼까 하였지만 이곳도 7월이나 되어야 개방한다는 안내판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조릿대 군락>
기다란 잎끝에 하얀 테두리로 치장을 한 조릿대와 고비나 왕고비 등 양치식물들이 울창한 수목아래 군락을 이루어 한살림 차리고 있다. 비자림로 들머리에서 물찻오름과 붉은오름을 지나 남조로까지 이어지는 10km를 걷는데는 3시간 안팍이면 충분하다. 거기에다 탐방이 허용된 사잇길 두어군데 돌아본다해도 30분쯤 더하면 모두 돌아 볼 수 있는 곳이 사려니 숲길이다.
<大物이 조아......^^*>
<송이길>
<물찻오름 들머리~7월중 개방>
<산림세라픽 구간>
천미천과 물찻오름을 지나면 산림욕 세라픽구간 사잇길로 접어든다. 울창한 원시림사이, 탐방로에 깔아 놓은 테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삼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수령 60~8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삼나무 군락은 환상의 숲이다. 젊어서 부터 흔해터진 황폐한 산에 울창한 경제수림을 조성해보고 싶던 꿈을 버려본 적이 없으나, 먹고 사는데 급급하다 육갑(六甲) 세월을 팍팍한 삶으로 채워버리고 말았다.
<삼나무 탐방로 구간>
우리와 같이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일본이 70%의 산지를 삼나무로 수종을 갱신하었다는 보도에 부러움이 가시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한부분이지만 이곳에 내꿈을 심어 놓았다. 그래서인지 삼나무 숲이 더욱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나무를 베어 아궁이를 데워 추위를 덜던 시절, 그나마 황폐한 산지에 연료림 명목으로 산을 나무로 가득 채워 놓은 박정희 대통령의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늘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우리의 숲, 경제수림 조성은 아직도 늦지 않은 우리의 과제인 듯하다.
사려니숲길을 걷다보니, 오늘따라 시심이 커지는 것은 내가 그리던 울창한 산림을 만난 원인도 있겠지만 '사려니숲길'이란 싯귀를 들머리에 써놓은 도종환 시인에게도 있는 것 같다. 그가 내고향 오동에서 작은 저수지 하나를 마주하고 같은해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지금은 같이 살던 그의 사촌들 밖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같은 동향인이기 때문인것 같다.
한라산 산행팀들은 먹거리 마실거리 든든하게 챙겼는데 사려니숲길 트레킹팀들은 별로 준비한게 없다. 때가 되었지만 챙긴 것이 없으니 뱃속이 아우성이다. 숙소 냉장고에 쌓아 놓은 왕족발에 쐬주 한 잔 생각도 간절하고, 제주흑돼지 회식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오메기떡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겨우 누군가가 꺼내놓은 알사탕 하나씩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침을 만들어 삼키며 길을 걷는다.
삼나무 숲길을 한바퀴 돌아나와 붉음오름을 옆으로 숲을 빠져 나오면 남조로 날머리에 도착하며 3시간 20분의 트레킹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급히 배를 채워야 하는 다급함에 찬밥 한덩이로 허기를 채우고 궂은 날씨와 싸우며 산행하는 등반팀에 대한 미안함을 애써 외면하고, 토종닭에 전복을 넣어 푹 삶아낸 용봉탕을 안주로 쐬주잔을 거나하게 들어 부으며 되풀이를 한다. 사려니 숲을 걸었음에도 등반팀에 대한 사려라고는....ㅠㅠ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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