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정치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 첫째는 정치에는 인간의 3대욕망인 권력과 명예와 돈이 따르기 때문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말은 정치인이 지켜야할 최고의 덕목이나 기본적 욕망과 관리능력의 부족으로 이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나라에도 정치에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선진국의 정치를 보더라도 얼마나 형편이 없는지 알 수가 있다. 자유와 평등이 대립하는 현실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조화롭게 공유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가진자의 자유는 평등을 저해하고, 평등은 노력한 자의 자유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대중의 바램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 밖에 없으며, 정치가 이를 실현해 줄 방법도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란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다"라거나, "정치란 더 좋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우리에게 숙제로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어느 국가의 정치형태에서도 성장과 공익을 부르짖는 보수세력과 분배와 개개인의 인권을 부르짖는 진보세력이 정권을 주고 받기를 되풀이 하나 백성을 모두 만족시킬만한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해결할 방법도 요원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정치형태는 새로운 정치형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인류사에서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인은 그 시대의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그 해결책에 몰두하여야 하지만, 공공(국가)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항상 염두를 두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도 어려운 현실을 명쾌하게 타파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것은 대중의 소망이 빈곤탈출, 민주쟁취 등 과거와 같이 국민 대다수의 공통된 소망이 아니고, 노사갈등, 노노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지역갈등, 환경과 개발갈등 등 곳곳에 갈등이 산재하고 있는 민민 갈등이며, 갈등 주체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가 갈등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쪽 소망의 해결은 다른 한쪽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민주정치는 획일적으로 발전을 하지 못하고 링둔반둥(산행 중 길을 잃어 같은 코스를 뱅뱅돌며 전진하지 못하는 것)처럼 국가(공공)의 발전과 대중의 욕구(포퓰리즘)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그것은 대중의 의사로 정치권력이 형성되나, 정치권력이 이기나 허상에 빠진 대중의 뜻을 모두 충족시킬수 없으며, 그것은 자칫 국가(공공)를 공멸케 하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중은 무지하지 않을지는 모르나 이기를 멀리할만큼 모두가 정의롭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며 구테타로 정권을 잡고 권력남용을 일삼던 정권, 노동자의 지휘를 끌어 올리겠다고 불법 노동운동을 눈감아 주다가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양산하게 한 정권, 분권화로 부동산을 안정시켜 서민을 돕겠다고 하다가 부동산 폭등으로 몰고가 가진 자의 배를 불리고 가난한 자를 더욱 곤경에 빠뜨린 정권, 이렇듯 어느 정권이 어느 계층에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고 하면 할수록 결국 그 계층이 더 어려움에 처하는 것, 그 것이 조화롭지 못한 편향적 정치의 한계이고 아이러니다.
세계는 글로벌화 되어 있고 국가 경쟁력은 곧 그 나라에 소속된 기업경쟁력에 좌우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지나치게 정치에 커다란 희망을 걸고 있다. 지금의 암울함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은 정치뿐이라고 믿고 있으며, 기존 정치세력의 무기력함에 반발하여 변화를 갈망하고 그것을 표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중이 국가의 켕거루족처럼되어 지나치게 국가나 정치에 기대하고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권력창출에 혈안이 된 정치인에 현혹되어 정치인(정치)에 대한 막연한 기대치를 높혀가고 있다. 대선을 앞둔 요즘들어 정치쇄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어떤 후보든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그러나 정치쇄신의 구호보다는 그 가능성과 그것이 얼마나 국가와 국민의 앞날을 조화롭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국가의 앞날은 그 나라 국민이 스스로 책임져야한다. 지금 어렵다하여도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특히 극단적이고 획기적인 구호를 부르짖는 정치(정치인)에 대한 막연한 희망은 로또 한장의 희망보다 못할 수가 있다. 조화롭지 못한 극단적 정치가 자칫 우리 모두를 어렵게 할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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