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강 원 권

봉평'메밀꽃 축제'와 평창'효석문화제'

바위산(遊山) 2012. 9. 9. 12:48

떠돌이 장돌뱅이 허생원의 일상에서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이 피어나는 "메밀꼴 필무렵"은 '이효석'의 대표작이다. 효석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이었던 산골 오지의 소박한 정감이 묻어나는 평창의 봉평을 찾아간다. "산 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이라는 소설속 대목처럼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봉평에서는 지금 메밀꽃축제와 더불어 '효석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행사명: 제14회 평창효석문화제 / 주 제: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 밭 / 일 정: 2012년 9월 7일(금)~16일(일) / 장 소: 봉평면일원(문화마을일대)

<"메밀꽃 필무렵"의 줄거리>

떠돌이 장돌뱅이 허생원은, 목욕을 하러 갔다가 물방아간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의 정을 나누고 헤어진 처녀를 잊지 못하여 봉평장을 거르지 않고 찾는다. 장판이 끝나고 술집에 들렀던 허생원은,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장터 술집의 충주댁과 어울려 농지거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심하게 나무라고 따귀까지 때려 내쫓아 버린다. 동이는 화를 내며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의 꾸지람에 한 마디의 대거리도 하지 않고 나가 버린다. 허생원은 동이의 뒷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과 걱정이 앞서지만,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에 동료 장돌뱅이 조선달이 주는 술을 모두 받아 마신다.

<물래방아간>

이때, 동이가 달려와서 허생원의 나귀가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려 준다. 허생원은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자기를 외면할 줄로만 알았던 동이의 마음씀에 고마워한다. 허생원은 나귀에게 장난질을 한 아이들을 잡으려고 채찍을 들고 달리다가 술기가 돌아 몸이 화끈거림을 느낀다. 장똘뱅이 동료인 조선달과 동이는 자신들의 나귀에 안장을 올리고 짐을 싣기 시작한다. 그날밤, 허생원은 다음장이 서는 대화까지 동이와 조선달과 밤길을 걸으며 물래방아간에서 우연히 만나 정을 나눈 처녀와의 기막힌 하룻밤의 인연을 들려 준다.

봉평장이 선 날 밤 허생원은 개울가에 목욕하러 갔다가 물래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친다. 성서방네는 파산을 한 터여서 처녀는 부자집에 팔려갈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허생원은 성서방네 처녀와 관계를 맺었고, 성서방네는 몰래 봉평을 떠나고 만다. 허생원은 성서방네 처녀가 술집에 팔려 갔을 것이라는 장판의 소문을 듣고 제천장을 몇 번이나 뒤졌으나 허탕을 치고만다. 조선달이 장돌뱅이 생활을 그만 두고 정착할 계획을 밝히나, 허생원은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기 전에는 죽을 때까지 장터에 남아 있겠노라고 말한다. 허생원은 낮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게 되고, 동이의 집안 사정을 듣게 된다. 동이의 어머니는 시집을 가자마자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쫓겨나서 홀로 제천에서 주막을 하며, 지금껏 고생만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동이는 친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고 한다. 허생원은 동이의 어머니가 바로 자신이 찾는 성서방네 처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동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울을 건너던 허생원은 눈빛이 흐려지더니 경망하게도 발을 헛디뎌 냇가에 빠지고 말았다. 물속에서 건진 허생원을 업고 나와 부축해주는 동이에게 허생원은 마음에 짐작되는 데가 있어 동이에게 꼬치꼬치 물어보고, 동이의 어머니 고향이 봉평임을 확인한다. 그 때 허생원은 동이가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허생원은 예정을 바꾸어 대화장을 보고 나면 곧바로 동이의 어머니가 산다는 제천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동이에게 동행할 것을 권유한다. 나귀를 앞세우고 동이 어머니가 있는 제천으로 향하는 달밤은 메밀꽃 향내와 어우러져 허생원의 발걸음을 들뜨게 만든다. 자신과 똑같은 왼손잡이 동이와 함께 하는 달밤은 꿈에도 그리던 사람과의 재회로 아들과 함께 살아갈 것 같은 희망을 암시하고, 메밀꽃이 달빛아래 흐드러지게 피어 눈꽃처럼 하얗게 눈부신 풍경이 그의 기대와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 주고 있다.

<봉평의 산>

주말의 궂은 날씨로 산행을 포기하고 찾아간 조용한 산골마을 봉평은 구름이 잔뜩 산마루에 걸려 있고, 축제로 인하여 이 곳을 찾아 온 차량과 사람들로 시끌시끌하다. 주차할 곳도 모자라고 메밀꽃보다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봉평은 오전내 잔뜩 가라앉았던 하늘이 오후에는 참지 못하고 추적추적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섭다리>

 

궂이 메밀꽃이 아니더라도 길옆으로 청초하게 피어 있는 꽃들이 가을을 말하고 있다. 몇 년전 찾아 왔을때와 크게 변한것은 없지만 그때는 끝물이던 초라했던 메밀꽃이 지금 막 절정으로 치달아 장관을 이루고 있고, 물래방아간 옆의 매어 놓은 당나귀는 늙어 죽었는지 간 곳이 없고, 대신 사람 구경을 하러 나왔는지, 메밀꽃 구경을 나왔는지, 어미닭 한마리가 병아리를 이끌고 메밀밭을 찾아왔다. 

 

메밀꽃밭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자 점심때를 맞아 갑자기 굻어진 빗줄기 때문에 모두들 식당으로 몰려들어 식당은 초만원이 되었다. 부랴부랴 찾아 든 '동이네집'에서 21번이라는 대기표를 받아들고  겨우 자리를 잡고 먹은 메밀음식과 메밀 막걸리를 한잔하고 문학관으로 오른다.

<동이네집>

 

 

<금일 점심메뉴▼>

 

                         <메밀부침>                                                   <메밀막걸리>

 

                          <메밀전병>                                                <메밀막국수>

 

 <특산물 장터>

 

<문학관 오름길>

 

 <봉평마을 전경>

 

 <이효석 문학관>

문학관을 둘러보고 내려와 가산공원으로 향한다. 이효석의 흉상이 서 있는 가산공원 옆, 공연장 한 옆에서 떡메치기 등의 행사와 함께 마당놀이 "메밀곷 필무렵"을 공연하고 있다. 관객과 함께하는 마당놀이는 풍물패가 함께 출연하여 관람객들의 흥을 돋구어 주고 있다.

 <문학관 내림길>

 

<소원 당나귀 - 소원을 적어 당나귀에 달면 이루어진다>

 

<떡메치기>

 

<가산공원>

 

'이효석'은 단편소설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에 대한 동경을 소설화했다. 호는 가산(可山)으로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보름 정도 근무하다 경성으로 내려가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이때부터 작품활동에 전념하여 1940년까지 해마다 10여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1933년 구인회에 가입했고, 1934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1940년 아내를 잃은 시름을 잊고자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이듬해 귀국했으나, 1942년 뇌막염으로 언어와 의식불명 상태에서 요절하였다.

<충주집>

장꾼들로 왁자지껄하던 충주집엔 관광객들만이 ~

 <마당놀이와 풍물패 놀이판>

 

 

 

마당놀이를 관람하고 나니 봉평은 땅거미가 내려 앉는다. 축제를 맞이하여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풍물시장에 들러 한바퀴 둘러보고 봉평을 떠나온다. 축제가 한창인 봉평은 다음주까지는 메밀꽃이 화사할 것으로 보아 주변관광지와 함께 한 번 들러보고, 이 곳의 별미인 메밀음식과 함께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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