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항재 야생화를 구경하고 조금 내려오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가 나온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5대적멸보궁으로 인하여 이름이 알려진 사찰이다. 쭉쭉 곧게 자란 전나무군락지 옆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나면 일주문을 지나 요사체를 지나 적멸보궁이 나오고 적멸보궁 위의 산으로 눈길을 주면 수마노탑이 올려다 보인다.
일주문에 달린 현판에는 '태백산정암사' 라고 적혀있다. 분명 이곳은 함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태백산정암사라는 현판이 괜스레 눈에 거슬린다. 삼국유사에 보면 함백산을 묘고산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수미산과 같은 뜻으로 대산이며 신산으로 여겨 본적암·심적암·묘적암·은적암 등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1,300여년전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갈반지를 찾아 큰 구렁이를 쫓은후 그 자리에 적멸보궁과 수마노탑을 짓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셨다고 하며, 적멸보궁옆 주목나무는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난 것이라하여 선장단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극락교와 정암사 계곡은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정암사>
정암사에는 봉우리가 셋 있다. 동쪽 천의봉, 남쪽 은대봉, 북쪽 금대봉이다. 이 가운데 보탑이 셋 있다. 금탑, 은탑, 수마노탑이다. 금탑과 은탑은 감춰져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후세 중생들 탐심을 우려해 불심 없는 중생들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했다. 불심 가득 일으켜 지혜의 눈으로 금탑과 은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될런지~
생각보다 작은 절의 규묘에 실망한다(불심이 문제지 사찰의 규모가 대수련만, 관광모드기 때문에....*^ ^*) 주목나무 아래로 불자들이 불상과 동전을 얹어 놓고 기도를 하고 있다. 저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기도하는 것일까? 부처님은 거꾸로 된 중생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금탑과 은탑은 그래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극락교를 건너면 주목나무 옆으로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는 건물을 가리킨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영조 47년(1771)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정암사에 수마노탑을 세워 안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안쪽에는 불상이 없고 신중탱화 2점과 동종 1점을 보관하고 있다.처음에는 불상이 없는 것에 의아해 하였지만 안내판을 보니 적멸보궁 뒷편 산중턱에 자리한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극락교>
<범종각>
적멸보궁안에는 스님 한분이 선체로 염불을 하고 있다. 피곤하신지, 졸리우신지, 염불하는 스님의 목소리는 힘이 없고 지친듯 들린다.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마노교를 지나면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다리 아래로 깨끗하 계곡물이 흐르고 이곳에 1급수에만 산다는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산다고 한다.
수마노탑은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수마노탑 오름길>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수마노탑>
이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때문에 적멸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보물 제410호로 1972년 전면 해체, 복원될 당시 기단부 최하단석 및 적심부에서 부처님 진신사리와 청동합, 은제외합, 금제외합 등 사리장엄구, 염주 및 금구슬 등이 발견됐다.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도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적멸보궁>
정암사를 둘러보고 배고파 죽겠다는 자식들 비위 마추느라 고한에서 쇠고기샤브샤브로 늦은 끼니를 때우고 고한을 떠나온다. 어려웠던 시절에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하고 대신 석탄을 캐어 연료로 사용하도록 강력한 광산개발을 추진한 박정희 대통령의 석탄산업 육성에 힘입어 전국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막장에서 일을 하며 살았던 고한, 사북은 시를 만들겠다고 할만큼 성황을 이루던 곳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광산이 문을 닫은 고한은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있고, 뜨거운 햇살에 선명하게 올려다 보이는 앞산의 검은 흙빛만이 예전에 이곳이 탄광촌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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