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론적 오류(genetic fallacy)
'발생론적 오류'란, 명제의 타당성을 그 원인이나 기원과 혼동하는 오류로 어떤 논증이 보잘것 없는 출처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거짓이라고 상정한다면, 그것이 바로 발생론적 오류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에 묻은 때에 시비를 건다면 이 또한 발생론적 오류로 볼 수 있다. 어떤 텍스트(말과 글) 자체를 평가하지 않고 텍스트를 발생시킨(생산한)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뜻이다.
프로이드와 러셀 등은 인간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흔히 발생론적 오류로 지적되곤 한다. 사하키안은 우리의 종교적 신앙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와 그 최초의 계기를 무엇이 마련하였는가를 확증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무신론의 논증으로서 사용된다는 것은 적절한 일이 못된다고 주장했다. 그건 과학이 주술이나 연금술로부터 발생했다고 해서 현대과학이 무의미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생론적 오류는 논리학에서만 오류일뿐 현실세계에선 상식으로 자리잡는 느낌이 든다. 특히 당파적 대결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선 ‘오류’가 아니라 ‘진리’처럼 여겨진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아무리 옳은 이라도 그것이 반대편에서 나온 말이라면 틀린 말이 된다. 말이 안 되는 말이라도 우리편에서 한 말이라면 그건 진리로 추앙되어야 한다. 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편 가르기’ 문화가 요구하는 기본 문법이다. ‘편 가르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편 가르기’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문제는 무엇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느냐는 기준이다.
한국의 ‘편 가르기’ 문화의 특성은 그것이 사람 중심이라는 데에 있다. 한국인들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정(情)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갖게 된 문화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공공적 차원에선 거의 재앙의 수준이다. 자기 성찰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정치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좀먹게 하는 주요 5대 갈등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간의 갈등, 계층간의 갈등, 노사갈등, 이념갈등 등을 만들어 가고 스스로 분열하여 화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발생론적 오류'로 나타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내편이나,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의 의사는 무조건 나쁘다고 악을 쓴다. 여기에는 진리도 합리도 발전적 논리도 없다. 그리 커다란 문제는 아니다 하더리도 종교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주 일어난다. 요즘 들어 종교 간의 지도층에서는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반면, 평신도로 갈수록 타종교를 비방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뚜렸하다. 그러한 현상은 무지에서 나온다. 평신도들이 그만큼 구복신앙에 매달려 있으며, 종교의 참뜻을 해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대학진학률이 세계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식한 백성들이 모여 사는 이땅에서 유독 이러한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무엇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하는가에 따라 오류의 증감이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성의 향상이나"진리탐구"를 교육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학력과 자격에 연연하는 이상 이러한 오류는 쉬 줄어 들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백성들이 모두 유식하여 진실을 구분함에 부족함이 없다 하여도 '발생론적 오류'로 갈등을 줄여 나가지 못하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이기나 집단이기 또는 힘의 논리에 편승하여 옳음을 옳다고 하지 못하고, 옳지 않음을 옳지 않다고 하지 못하는 비양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는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하고, 스스로 '발생론적 오류,를 줄여 나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양심을 저버리는 일은 "나는 나쁜놈이거나 사기꾼으로 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옛부터 "공(共)이 멸하고 사(私)가 흥하면 모두 멸(滅)한다"고 하였다. 지금 나는 '발생론적 오류'에 빠져 우리 모두를 망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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