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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애환이 스며있는 간도의 용정.

바위산(遊山) 2010. 7. 18. 15:38

 

 

 

중국여행-민족의 혼이 깃든 간도의 용정

  

<용정시>

연길에서 용정으로 향하는 길은 15km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드넓게 펼쳐지는 평야지역과 작은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이곳에는 옥수수와 콩, 벼농사지대가 끝없이 이어진다.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는 앞으로 80억을 웃돌게 될 것이라고 하며, 물부족으로 식량생산은 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세계의 식량창고라 하는 미국이 물부족으로 식량생산에 차질을 빗고 있으며, 이곳 연변에도 물부족으로 인하여 식량생산에 차질을 빗고 있단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식량 자급율이 30%밖에 되지 않는 우리로서는 언젠가 다가올 식량전쟁을 걱정하여야 하며,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농토가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한없이 크기만 하다. 

 

<해란강과 연변평야>

간도는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길림성 동남부지역이다. 간도·간토·북간도라고도 한다. 남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며, 동쪽은 연해주와 맞닿아 있다. 동간도와 서간도로 나뉘는데, 보통 간도라고 하면 동간도를 가리킨다. 옛 고구려와 발해의 땅으로 청나라가 쇠퇴해진 조선후기에 회복되었으나,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어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이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주민은 대부분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며, 한국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옥수수밭과 비암산>

그 북쪽 한계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나, 대체로 두만강과 토문강 사이 지역을 말하는데 1712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조선과 청나라가 국경을 획정하면서 세웠던 백두산정계비의 문구중 "토문"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간도는 백두산을 경계로 서간도, 북간도, 동간도, 지금은 러시아의 땅이 된 연해주와 심요지역 등으로 나뉜다. 용정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연변의 중심도시였으나, 지금은 연길에 넘겨주고 제2의 도시로 머물러 있다. 

 

 <당겨 본 비암산과 일송정>

용정시 비암산 북쪽 산봉우리에는 일송정이라는 한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비암산 절벽 너럭바위에 뿌리를 박고 서있는 이 소나무는 모진 가뭄과 설풍에도 끈질기게 견디어 한일운동을 하던 우리 조상들의 선구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항일투쟁 근원이 일송정에 있다는 풍수쟁이의 말을 듣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고사시키게 된다. 지금은 고사되어 없어진 자리에 정자를 짖고 일송정이라 부르며, 정자 옆으로 한그루의 어린 소나무를 심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용정중학교>

용정은 연길에 비해 발전속도가 더뎌 지금은 연변 제2의 도시로 전락했지만, 그래서 우리 민족의 사는 모습을 더 정겹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희미해진 민족의 애환을 볼 수 있는 곳은 대성중학교와 일송정이다. 보성중학교가 세워지던 해 이곳에서는 이상설이 서전서숙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했다는 이야기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옛날 이곳에는 5개의 조선학교가 있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용정중학교로 교명이 바뀐 대성중학교 자리에 10여 년 전 한국의 독지가들이 성금을 내어 옛 건물 그대로 복원하고, 건물안에는 대성중학교 역사전시실이 꾸며져 있고 해설하는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다. 한국관광객이 주로 찾으며, 29세에 요절한 항일 시인 윤동주의 '서시'가 적힌 시비와 이곳 출신 독립운동가와 정치인들에 대하여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북한을 방문했던 '문익환' 목사도 이 학교 출신으로 자료가 남아 있으며, 그의 자료를 보니 중하정도의 학업성취도는 나와 비슷한 것 같다.....ㅎ

                                                                        <초기 대성학교 사진>

 <윤동주시비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이곳에서 동포들과 민족독립을 위하여 싸우던 선열들을 생각하며 기념품을 사고 약간의 성금도 내본다. 기념품은 대부분 이곳 동포들이 만든 수공예품으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은 있으나, 그저 용정을 방문한 기념으로 우리 동포와 선열들의 애환과 눈물을 산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은 더없이 편하다. 용정중학교를 떠나 곰농장인 '곰락원'으로 향한다.  

곰락원은 곰을 사육하여 쓸개즙을 채취하여 파는 곳이다. 법에 의하여 곰을 도살할 수가 없어, 웅담은 자연사나 사고사에 의한 것을 채취하고 대부분 살아 있는 곰에서 기계를 이용하여 웅담즙을 채취한다고 한다. 곰은 인공수정이 안되므로 많은 곰을 기르면서 자연수정과 분만을 시켜서 약 2년 동안 길러서 백두산에 방목한 후 2-3년 후에 다시 잡아 온단다. 이렇게 한해에 백두산 방목장으로 방출되는 곰은 160마리 정도이며, 현재 곰락원에는 1600마리 정도의 곰이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웅담관련 제품도 판매하고 판촉으로 술에 웅담즙을 타서 한 잔씩 먹어 보라는데, 공짜라고 조금 더 마셨더니, 그 씁쓸함과 독주의 알콜이 무더위와 합하여 더욱 열기를 품어내게 만들어 놓는다.

 

이곳은 곰의 숫자에서 보듯이 곳곳에 곰 사육장이 널려 있다. 넓은 우리에 큰 나뭇가지 기둥을 박아 놓은 곳도 있고, 놀이터의 놀이기구처럼 곰들이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여름이면 높은 곳을 좋아 한다는 곰들이 올망졸망 모여 올라 앉아 있기도 하고 낮잠도 잔다. 이녀석들은 우리 밖에서 구경하는 관광객들은 그리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이곳이 관광코스로 매일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다보니 그것에  익숙해진것 같다. 곰을 집중적으로 사육하고 그 곰에서 웅담즙을 빼내어 상품화 하는 이 농장의 이름이 '곰락원'이라는 것에 대하여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기분은 매우 다르고 조금은 꿀꿀하다. 곰락원을 끝으로 간략한 용정여행을 마치고 연길로 돌아간다. 연길에서 연변뇌병원과 연변사회정신병원을 둘러보고 훌륭한 음식과 술로 뇌병원 원장님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연변의 푸른 들판엔 그 옛날 고구려.발해의 위풍당당하던 말발굽소리와 함성은 사라지고, 이제는 빼앗긴 들판에 먹고 살기 위하여 이곳에 자리 잡은 동포들의 모습과, 일제하에서 빼앗긴 조국을 찾겠노라 애를 태우던 선열들의 자취만이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다. 용정을 떠나오면서도 웬지, 못다한 듯한 미련같은 것이 남는 것은 아픈 역사와 함께 무엇인가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놓은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윤동주의 혼이 깃든 용정을 둘러보고, 소시적에 너무도 좋아하여 자주 암송하던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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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헤는 밤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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