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영 남 권

안동의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바위산(遊山) 2009. 10. 11. 11:31

 

여행일 : 2009년 10월 4일(일)

날   씨 : 맑음

장   소 : 안동의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누구와 : 마누라와 딸

 

 

 한가위 명절 연휴의 마지막날이다. 명절로 내려온 잠뽀 딸내미를 닥달하여 안동으로 떠난다. 안동의 작은 산을 올라 볼까 하다, 미답지인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둘러 보기로 한다. 전형적인 가을날은 청명하여 여행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갈수기라 그런지 수위가 잔뜩 낮아진 안동댐을 한바퀴 돌아 음식점에 자리한다. 주인장의 자화자찬에 홀깃하여 간고등어정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도산서원으로 들어 선다. 안동의 음식으로는 간고등어와 찜닭이 유명하지만 경상도의 음식은 그리 훌륭한 편은 아닌 것 같다. 

 

<시사단>

 

 

 

 

도산서원으로 들어서는 길옆으로 성급한 단풍나무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서원의 운동장 격인 입구에는 오랜된 거목이 운치를 더한다. 지금은 수위가 낮아져 들판으로 변한 수몰지구에 시사단(試士壇)이 보인다. 조선정조때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혀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 장소로 시사단의 주위로 노송들이 울창하였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수몰이 되자 그 자리에 흙으로 높이 성토를 하고 시사단을 올려 놓았다고 한다.

 

 

 

강변을 끼고 아늑하게 자리잡은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연산군 7년에 안동에서 태어난 퇴계선생은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와 풍기군수,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후에 영의정으로 추종되었다. 70여회에 걸쳐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가 되었다. 명종 16년 "도산서당"을 세웠으며, 선조7년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1970년 정부에서 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 하였다. 선조임금이 "한석봉"의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하셨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사상은 이기이원론적 주리론(理氣二元論的 主理論)으로 理(四端)로서 氣(七情)를 다스려 인간이 선(善)한 마음을 간직하여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물을 순리대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측은지심(불쌍히 여김), 사양지심(양보하는 마음), 수오지심(부끄러 하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의 사단(四端)으로 으로 인간의 기질적인 성품인 칠정(七情)인 희(기쁠 喜), 노(노여워 할 怒), 애(슬퍼 할 哀), 구(두려뤈할 懼), 애(사랑 愛), 오(미워 할 惡), 욕(욕심 慾)을 다스려사회를 정화하여 순리대로 살도록 하여야 한다는 사상으로 오늘 날에도 이를 지침으로 삼을만한 훌륭한 사상이 아닌가 싶다. 

  

 

  

"도산서원은 모두 11개의 건물로 퇴계선생이 몸소 4년에 걸쳐 손수 지어서 거처를 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도산서당"과 제자들이 기숙을 하던 "농운정사"와 책을 보관하던 서고로 두개의 건물로 된 "광명실"이 있다.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를 하던 "박약재"와 "홍의재" 등의 "동서재"와 지금의 강당 역할을 하던 "전교당"이 있다.

 

     

 

책을 찍어 내던 목판이 보관되었던 "장판각"이 있으나, 이곳에 보관되어 오던 2,790장의 목판본은 2003년 5원에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전 되었다고 한다. 또한 퇴계선생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가 있어 매년 향사를 지낸다고 하며 비공개로 행하던 향사는 근래에 일반에 공개되어 화재가 되기도 한 행사다.

 

      

 

정원에는 우물터가 있으며, 70년대 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할 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적 식재한 희귀송인 금송이 실하게 자라고 있다. 

 

 

좀 더 들어가면 성덕사에서 향사를 행할때 사용하던 제수를 마련해 두던 "전사청"이 있으며, 서원을 관리하던수호인들이 살림을 하던"고직사"가 있으며, 퇴계선생이 강론을 하던 "열락서재"가 있으며, 강안에 있는 "시사단"을 더하여 모두 11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천연대>

 

또한 사원에서 조금 떨어져 선생이 산책을 하며, 심신을 다스리던 운영대와 천연대가 있으며, 이곳에 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강변과 들판을 바라 볼 수가 있다.

 

<도산서원 전경>

 

 

 

이렇게 도산서원을 한 번 둘러보며, 퇴계선생의 높은 학문과 사상, 그리고 후학양성에 힘쓰시던 선생의 깊은 뜻을 세기며, 하회마을로 향한다. 하회마을은 안동시가지를 사이로 반대쪽에 위치하여 찾아 가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여야 한다.

 

      

 

정자와 물래방아가 있고, 먹거리 집단시설지구로 들어서니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먹거리 장터 옆으로 하회탈박물관이 있으나, 지금은 보수가 한창이다. 먹거리 장터의 기념품 가게를 빠져 나가 강변산책로를 타고 하회마을로 향한다. 마을까지 500원 내고 셔틀버스를 탈 수 있으나, 수려한 강변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치형 철다리인 "물돌이교"를 지나면 아름들이 노송들이 늘어서 있는 강변길을 걷게 된다. 군데군데 전망좋은 곳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강변을 조망할 수가 있다. 노송들 중에서도 거목인 노송의 허리에는 아버지 신선이 잠시 쉬어 갈 때 옷을 걸어 두었던 수령 699년짜리 노송이 있고, 이 노송을 지나면 아들 신선이 쉬어 갈 때 옷을 걸어 두었던 599년 묵은 노송이 있다. 테마 관광지의 성격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수령도 그리 되지 않은 듯하고, 쬠 허풍이 심한 것 같으나, 애교로 보아주고....^^*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하회마을 안내판이 나오고 길 양옆으로 벗나무가 늘어서 있는 뚝방길로 접어 든다. 뚝방길 끝으로 만송정이라는 안내석이 서 있는 송림사이로 들어선다. 구불구불 멋지게 자란 노송들이 끝없이 들어서 있는 만송정은 이름처럼 만개의 소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뜻인 듯한데, 만그루는 되지 않아도 수천그루는 족히 될 것 같다. 

 

       

 

뚝방길 옆으로 작은 놀이터가 있고 그네가 있어 어린이들이 그네를 타고 있다. 강 건너편으로 부용대라는 절벽 밑으로 유유히 강물이 흐르고, 나룻배가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서애 유성룡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려 건물을 세우려 하였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탄흥스님이 10년을 시주하여 지었다는 "옥연정사"와 "화천서원"으로 갈 수가 있다.

 

 <부용대>

 

 

 <만송정>

 

 

 

 

"작전고택"이 있는 제방길 끝으로 살아 있는 몇 아름은 될 듯한 느티나무가 서 있고 이미 죽은지 오래되어 썩은 고목이 한그루 서 있다. 이곳에서 마을로 들어선다. 오래된 고택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탤런트 "류시현"의 집도 나온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들의 집성촌이다. 유일하게 풍산류씨들만이 600년을 살아 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오랜 역사 속에서도 기화와 초가로 지어진 고택들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용의 출생지로 하회마을이라 이름 진 것은 낙동강이 S자형으로 마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쪽으로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해발 271m의 화산이 있고, 화산줄기가 낮은 구릉을 만들어 놓은 중심부에 있어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은 서민들의 놀이였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잘 보존된 곳으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 고 건축물의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울 딸뇬, 객지에 나와  왠, 개와 갑자기 친해졌나? 강아지 사달라고 하 졸라싸서 사 주었드니, 객지에 나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바람에 졸지에 부모를 개애비, 개에미 만들어 놓고서는........ㅠㅠ  

 

 

고택들을 지나 마을안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수령이 600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삼신당 신목으로 알려진 이 거목은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으로 소원을 적어 줄에 매달면 소원이 성취된 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옆에 준비되어 있는 종이에 소원을 적어 매달고 간다. 나도 가족의 건강과 화목과 풍요를 적어 달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로또가 당첨 되었다. (5천냥짜리..ㅎ) 

 

 

 

 

 

고택을 둘러보고 마을 밖으로 나오면 누렇게 익은 들판이 화산 밑으로 이어지고 몇개의 허수아비가 가을의 정취를 더 한다. 마을밖 주차장 옆으로 안내소와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이 있다. 이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하면 되는데, 운동삼아 걸어서 가기로 한다. 

 

 

 

 

 

 

 

 

위 목각인형 및 장승 전시장에는 "사진 찍는데" 500원"이라 써 놓았는데, 넣는 사람도 안 넣었다고 뭐라는 사람도 없다. 화산 넘어 "병산서원"이 있지만 한꺼번에 둘러 보기는 시간이 촉박하다. 도보로 하회마을 한바퀴 둘러보는데도, 2~3시간은 족히 걸린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서산에 해는 기울고 땅거미가 몰려와 저녁 노을을 붉게 물들인다.

 

 <안내소>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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