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끄적휘적

"조은마난색기" 들이다.

바위산(遊山) 2009. 5. 2. 12:33

 중국의 춘주전국시대에 조(趙)씨 성을 가진 부인이 있었다. 혼인을 한지가 오래 되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여 노심초사하던 중, 어느날 온천에서 말이 목욕을 하는 태몽을 꾸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하고는 태몽을 따라서 "조온마(趙溫馬)"라고 이름을 지었다. 부모는 귀하게 얻은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애지중지 키웠다.

 

조온마는 성장하며 덩치도 작았으며,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마을의 처녀란 처녀는 모두 욕보이는 난봉꾼이 되었다. 결국 보다 못한 마을사람들은 "조온마"를 관아에 고발하게 되었고 재판에 처하게 되었다. 관아에서는 "조온마"가 색기로 마을을 어지럽혔다(趙溫馬亂色期) 하여, 거세를 하도록 판결하고 거세를 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경거망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온마난색기"라 부르게 되었으며, "조온마"가 덩치가 작았으므로 덩치가 작은 사람을 빗대서 말하기도 하였다. "조온마난색기" 는 발음이 변형되어 요즘도 비속어로 많이 쓰이고 있으니, 우리는 경거망동하는 사람에게 "존만한새끼" 라고 말하곤 한다.

 

역사를 통틀어 남녀의 성문제는 오욕(五慾)의 하나로 말썽이 그치지 않는다. 과거 우리의 성생활은 대체적으로  개방적이었던 것이 조선조에 들어서며, 유교의 영양으로 급격히 보수적으로 바뀌게 된다. 더구나 여성의 성은 철저히 통제 되어 왔으니,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하여 불이익(?)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게 수절을 강요 당했던 과부들의 불륜에 관련된 사건은 그치지 않았다. 그만큼 종족번식의 본능을 기초로 하여, 남여 모두에게 성욕은 생리적인 욕구로 절제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고려말을 거쳐 조선조 세종때까지 최고의 재상이며,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는 어느날 임금으로부터 곤란한 부탁을 받는다. "과수들의 성과 관련된 문제가 그치질 않으니, 도무지 여자의 성욕은 몇살때까지 지속되는지 알 수가 없구료" 성을 금기시 하던 시절에 누구를 붙들고 물어 볼 수도 없는 처지라 몇날을 고민하던 중, 하루는 퇴청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팔순의 노모가 대청에서 화롯불을 쪼이고 계셨다. "황희"는 용기를 내어 "어머님! 죄송하지만 밍구스러운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도대체 여자의 성욕은 몇세까지 지속됩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노모는 말씀없이 꺼져가는 화롯불을 뒤적뒤적 하고 계셨다. 명석한 "황희"는 아하! 불씨가 다 꺼질때까지로구나, 라고 깨닫고 임금에게 고하였다고 한다.

 

요즘들어 성범죄가 많이 늘어나고 성폭행을 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무도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상습적인 성범죄자들에게 전자장치를 부착하도록 하는 법안이 마련되었다. 인권단체에서는 인권침해라고 반대를 하는가 본데, 당한자의 인권은 모른척하고 잘못된자의 인권만을 옹호하자는 것인지? 작금의 인권위원위나 인권단체의 노고와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협한 인권논리에 빠져서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잃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인권이 중요하나 법은 지켜야 할 권리만 보장하여야 한다. 되나가나 반대하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편협되고 경거망동한 행위로, 상습적인 성범죄자들과 함께 조은마난색기들이 아니던가?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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