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강 원 권

태화산 가을산행

바위산(遊山) 2008. 10. 17. 12:29
여행지
단풍이 아름다운 영월의 태화산에 다녀오다.
여행기간
2008. 10. 12(일) 맑음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설악의 단풍이 보고싶어 이른 새벽에 설악을 향하다. 그러나 몇 년 전 단풍피크철에 설악을 찾아 갔다 밀려드는 차량과 인파로 호되게 고생을 한 기억이 떠올라 급히 방향을 바꿔 영월의 태화산으로 향한다. 고씨동굴이 있는 태화산은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에 속한다. 가까이 있으나 아직 미답인 탓에 설악을 대신한다 하여도 그리 아쉬울 것은 없을 듯하다. 태화산 산행은 고씨동굴쪽에서 오르는 길이 있지만 매우 가파라서 대부분 팔괴리 오그란이에서 오르는 길을 택한다. 영월화력발전소를 조금 지나 우측에 있는 팔흥교를 건너 500m쯤 전진을 하면 팔괴리가 나온다. 이곳에 잘 조성된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오그란이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아담한 절 봉정사를 비껴서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오두막처럼 작은 태화산 농장이 나온다. 농장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임도가 끝이 나고 수림이 빼곡한 등산로로 접어 들게 된다. 단풍은 시원치 않으나 산은 이미 퇴색되어 가을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숲이 울창한 등산로는 돌들이 가득한 너덜지대가 계속되나 걷기가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한시간쯤 완만한 비알길을 오르면 태화산성과 태화산 정상으로 오르는 삼거리 안부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태화산성으로 향한다. 잠시 능선을 걷다보면 작고 허물어져 가는 초라한 태화산성이 나온다. 산성의 끝에 서면 태화산을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과 영월읍의 모습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맞은편으로 남한강을 건너 이제 막 물감을 칠하기 시작한 듯 단풍색이 물들어 가는 계족산이 우뚝 서있다.
 
 
석성과 토성을 혼합하여 축조된 태화산성 전시에 적정을 관찰하고 우군에게 연락을 하던 사령탑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두남매의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같이 키우며 모두 죽게 된다고 하여 둘중 하나를 살리기 위하여 고민하다 아들과 딸에게 성을 쌓게 하고 먼저 쌓는 자식을 키우기로 하고 성쌓기를 시작하였다. 아들 왕검에게는 인근 정양리에 돌성을 쌓도록 하고 딸은 태화산에 흙성을 쌓도록 하였으나 딸이 먼저 쌓을 것 같아서 아들을 살릴 마음으로 딸이 쌓고 있는 성을 무너뜨리고 딸은 무너지는 성벽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왕검성은 아직까지 건재하고 태화산성은 허물어졌다고 한단다. 잘못된 남아선호사상이 불러 온 이러한 전설은 초정에 구녀성과 충주의 장미산성에도 비슷하게 전하여 지고 있으니, 누가 원조인지는 몰라도 둘은 컨닝을 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간다. 구비구비 산맥들이 이어져 나가는 영월은 수려한 동강과 서강이 만나서 남한강을 만들어 놓아 물좋고 산좋은 고장이며, 세조에게 왕권을 찬탈당하고 이곳으로 귀향을 와 눈물로 외로움을 삭히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단종의 한이 서린 고장이다.
 
 
영월에는 앞과 좌우로는 강물이 휘돌아 흐르고 뒤로는 산맥이 가로막아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렴포와 단종을 모신 장릉이 있으며, 태화산 아래로 4억년전에 생성되었다는 종유석 동굴인 고씨동굴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태백쪽으로 향하다 보면 대역죄로 처단된 조부를 조롱하는 시로 과거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후에 자기가 조롱한 사람이 자기의 친할아버지임을 알고 조상을 욕되게 한 불효자가 하늘을 볼 수 없다 하여 처자식을 버리고 평생 삿갓을 쓰고 유랑하며 풍자와 야유로 세상을 꼬집는 시를 남긴 김삿갓의 묘와 기념관이 있다.  
 
 
이렇듯 영월은 사연도 많고 애�음을 간직한 곳으로 어찌보면 한이 서린 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산성을 되돌아 와 안부에서 태화산으로 향한다. 능선에는 빛바랜 철쭉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기는 하나 능선은 부드럽고 수목이 울창하여 그늘을 만들어 놓으니 걷기가 좋다. 태화산이 가족산행지로 유명한 것은 이 부드러운 능선이 기인 하지 않았나 싶다.
 
 
단풍나무가 많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단풍이 화사하여 제법 가을산행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능선을 걷다보면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지나면 노송이 어우러진 전망대에 다다른다. 이곳에 서면 나무가지 사이로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소백의 주능선이 하늘금을 이루고 늘어서 있다. 빛바랜 수목 사이로 침광처럼 파고드는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능선길은 산행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전형적인 가을이다.
 
세상 구석구석 사연도 많겠지만 능선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과 강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강변 마을의 모습은 마냥 평화스럽게만 느껴진다. 능선길을 걷다 보면 이러한 전망대는 몇개를 더 만나게 된다. 태화산이 100대 명산이라고는 하지만 수려한 암봉도 괴암괴석도 없는 그리 멋진 산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산세와 능선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조망과 주변명소가 산의 가치를 높혀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능선길 군데군데 단풍이 화사하여 시선을 잡아 끈다. 비록 설악에는 가지 못하였지만 이만하면 가을산행으로 그리 아쉽지는 않을 것 같다. 길게 밧줄을 매어 놓은 위험지구(?)를 지나면 또하나의 전망대가 나온다
 
 
 
 
산은 적막하리만치 고요하고 가끔씩 우짖는 산새소리와 알록달록 등산로를 덮은 낙엽 밟는 소리만이 귓전을 파고 든다. 오늘 산행길에 산객을 만난 것은 단 한 팀 뿐으로 100대 명산이라는 태화산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것 같다. 한적하고 조용한 산행을 좋아 하는 나와는 달리 적막이 감싸고 있는 산행길이 아내에게는 조금 식상한 듯하다. 단풍이 한창이니 모두들 단풍이 좋은 산을 찾아 간 모양이다.
 
능선의 끝으로 태화산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는 두개의 정상표지석과 함께 이정표가 서 있다. 태화산은 영월군의 세심한 세심한 배려로 등산로도 잘 정비 되어 있고 곳곳에 이정표와 함께 등산길 안내표지판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과일로 요기를 한다. 산에 오르면 이렇게도 마음이 편하고 너그러워 지는데 일상에 뛰어 들면 욕망과 경쟁으로 근심을 버리기 힘들으니, 아직도 수양이 덜 되었거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각박한 세상살이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태화산 정상에서 다시 오던길로 되돌아와 큰골 안부에서 큰골로 하산을 한다. 하산로도 경사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걷기가 아주 좋다. 빛바랜 갈참나무가 빼곡한 숲 아래로 노랗게 물들은 싸리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한시간 정도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비알이 급해지고 길게 밧줄을 매어 놓은 숲을 빠져 나오면 시야가 확 트이고 몇채의 산골농가가 있는 큰골에 다다른다.
 
 
날머리에는 구절초가 화사하게 피어 있고 산공농가의 마당에는 노인 한분이 풍구를 수리하고 있다. 다 낡아서 그만 버려야 할 것 같은 골동품 같은 풍구지만 문명이 파고들지 않은 산골에서 딸뱅이 전답을 가꾸는데는 더없이 필요한 물건일 것이다. 지게와 풍구를 보니 소시적 아버님을 도와 시골에서 지게와 풍구를 이용하여 농사일을 하던 힘겨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큰골에서 콘크리트 포도를 따라 걷다 보면 아스팔트 포도가 나온다. 수량은 적으나 암반으로 수려한 계곡을 타고 한시간 가까이 걸으면 오그란이에 다다른다. 산행시간은 5시간이 소요되고 큰골에서 오그란이까지 1시간 가까이 소요되므로 모두 6시간이 소요되었다. 계곡의 소에는 제법 많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노닐고 길옆으로 노란 들국화가 화사하게 피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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