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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의 봄.

바위산(遊山) 2008. 4. 13. 19:19
여행지
충무공의 혼이 서린 아산의 현충사에 다녀오다.
여행기간
2008년 04월 12일(토) 맑음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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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는 잘 알려져 있어 세세한 설명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외침을 막아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모시고 애국충정을 기리는 곳으로 1706년 유생들의 상소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때 철거 되었다가 1906년 을사보호조약에 항거하는 뜻으로 아산지방 유림에서 현충사유허비를 건립하여 중건을 거듭하였으며, 지금은 문화재청 직속기관인 현충사관리사무소에 관리를 하고 있다.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나 주차요금은 받지 않고 있으며, 입장료는 대인 500원 소인 300원으로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다.
오늘은 지인의 대사에 참석하고자 아산을 찾아왓다. 예식시간까지는 한시간쯤 여유가 있어 현충사를 돌아 보기로 한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는 결혼때 돈이 없어 신혼여행을 못가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내와 현충사를 찾아 왔다가 온천장에서 하루를 묵고 신혼여행으로 대신하고, 이후에도 다시 한번 들렀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현충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머리로 들어서면 벗꽃과 함께 백목련이 만개를 하여 온통 화사한 꽃들이 눈을 부시게 한다. 봄을 만끽할 수 있을만큼의 화사한 날씨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현충사를 찾아와 관람도 하고 봄꽃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넓은 잔듸밭과 잘 가꾸어 놓은 조경과 함께 충무공의 충절을 되새길 수 있는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나들이의 명소가 되어버린 현충사에는 연간100만여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연못이 하나 있고 연못 옆으로 "정려"가 있다. 연못가에 청솔모 한마리가 사람들을 무서워 하지 않고 가까이서 놀고 있다. 연못가에도 개나리, 벗꽃, 조팝나무꽃이 피어 화사하다.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서울 건천동(지금의 인현동)에서 아버지 "이정" 과 어머니 "변씨" 사이에서 셋째로로 태어났으나 외가인 아산으로 내려와 성장하고 결혼하였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무예를 연마하고 학문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1576년 32세의 나이로 식년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 변방의 "동구비보" 권관을 시작으로 여러직책을 수행하다가 1591년 서애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발탁되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였다.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자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여 군사의 조련과 무기제조, 진지보수에 힘썼으며,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거북선"을 건조하여 전란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숫한 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치며 연승을 거두었으나 1597년 간첩 "요시라"의 간계로 모함을 받고 서울로 압송당하여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정탁"의 상소로 사면되어 권율장군의 휘하에서 백의종군 하였다 한다.

 
"정유재란"때 원균이 참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되어 "명랑해전"에서 대전과를 거두었다. 1598년 왜군 500여척이 철수하기 위하여 노량진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인 "진인"의 수군과 연합하여 적군을 기습하여 접전중에 새벽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5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충무공의 묘지는 현충사에서 9km 떨어진 아산 음봉삼거리 어라산에 있으며 아래묘지는 충무공의 셋째 아들이 이면의 묘지다.
이면공은 어려서부터 인물이 뛰어나고 지혜와 용맹을 갖추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뛰어나 충무공이 그지없이 사랑하던 아들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집에 있다가 마을에서 분탕질을 하는 왜적과 싸우다 젊은 나이에 전사하였다고 한다. 충무공이 이 소식을 득고 일기에 쓰기를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옳은 이친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남 달리 영특하하므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 것이더냐?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고 적어 매우 슬퍼하셨다 한다.
이면공의 묘지에서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수령이 500년정도 되는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두그루 자라고 있는 활터가 나온다. 남쪽 145m 거리에 과녁이 있었으며 활터를 둘러싼 산의 능선은 말을 달리던 곳으로 "치마장"라 부른다 한다.
 
활터 아래로는 충무공이 무과에 급제하시기 전부터 사시던 기와집이 있으며, 대대로 종손들이 살아 왔으며 집 뒤뜰에는 우물뒤로 장독대가 있으며 돌아가신분들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모신 가묘가 있어서 기일인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생가에서 서쪽으로 향하면 본전이 나온다. 이 본전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곳으로 1932년 민족성금으로 증건된 구본전을 전시관 옆으로 이전하고 성역화 사업으로 다시 건립된 것이라 한다. 본전의 둘래에는 장군의 강직함을 말하듯 대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장군의 애국과 충정을 되새기며, 영전앞에 참배하고 본전을 내려선다.
 

구본전 앞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장군이 쓰던 물건과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모형 거북선도 만들어져 있다. 교지나 난중일기등도 전시되어 있으나,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 찍어 오지 못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만화나 서적등도 팔고 있어 시간이 날때 읽어 볼까하여 한권 사들고 온다.

경내에는 어데를 가던 봄꽃으로 화사하다.

화사한 꽃들과 이제 막 연록으로 새싹을 틔우는 나뭇잎은 꽃보다 더 싱그러운 느낌이다.

서쪽의 터널지대를 돌아 정문으로 내려서면 현충사를 한바퀴 돌아보게된다. 이밖에도 사진에 담아오지 못한 유적들이 몇개 더있다. 날머리에도 봄꽃이 화사하여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현충사를 돌아보는데는 한시간 정도 소요된다.
 
현충사는 너른 부지와 함께 잘 조성된 조경으로 가족들과 함께 찾아 온다면 자녀들의 산교육장으로도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이곳에서 가까운 충절의 고장인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있으니, 함께 둘러 본다면 더욱 좋을 듯하다.
 

이렇게 현충사를  한바퀴 돌아보면 멋있는 봄의 풍경과 함께 충무공의 곧고 일관된 애국심과 충성심,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과 지극한 효심을 느낄수가 있다. " 밤바람은 차고 싸늘하기만 한데 달빛은 낮과 같이 밝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였다. 온갖 근심이 치밀어 오른다" 라는 "난중일기"의 한 귀절에서 보듯이 잠못이루면서 나라를 걱정하며,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충무공의 업적과 충절을 되새기며 현충사를 떠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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