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강 원 권

폭설이 내린 발왕산에 오르다.

바위산(遊山) 2008. 1. 27. 12:24
여행지
용평스키장의 설원이 펼쳐지는 발왕산.
여행기간
2008년 1월 26일(토) 흐림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계방산으로 갈까? 발왕산으로 갈까? 휴일 아침이면 가끔씩 산행지를 택하는 갈등에 빠질때가 있다. 계방산은 심설산행을 즐기려는 산객들로 만원일 듯하고, 발왕산은 주말을 즐기려는 스키어들로 만원일 것같다. 어차피 겨울이 가기전에 계방산을 찾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눈이 더 쌓인 후가 좋을 것 같으니, 오늘은 산객이 별로 없는 한적한 발왕산을 택한다.
요즘들어 산행이 별로 즐겁지 않은 듯 한 울마눌과의 동행을 포기하고 대신 주(酒)님 사랑에 지친 몸을 추스린다고 구들장을 지고 있는 최과장을 꼬신다. 최과장 왈 "어느 산에 가십니까?" 나 왈(曰) "발왕산이라고 굉장이 좋은 산이 있어!" 가끔은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위하여 과장광고를 하여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것 같다. 용평은 스키장을 찾는 차량으로 만원이다. 북적이는 리조트 앞을 지나 곧은골로 들어간다. 인적을 보기 힘든 곧은골 진입로는 폭설을 뚫고 겨우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구간에 다다르고 더 이상 눈으로 인하여 전진할 수가 없다. 일단은 적당히 주차를 하고 들머리를 찾으나 그리 만만치가 않다. 언제나 헤메기를 정례행사처럼 자주하는 것은 준비성이 부족하고 즉흥적인 것에 기인되었으리라. 1m라는 무식할 정도의 폭설이 퍼부어댄 이곳에서 등산로를 찾기가 그리 쉬울리가 있나? 겨우 들머리를 찾았다. 그러나 그것이 들머린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나 사람의 발자욱이 있으니, 그리 간주하고는 발자욱을 따라 오른다.

그러나 앞서간 산객들의 산행로는 처음부터 헤멘것이 여실하다. 들머리에서 오락가락 조금 들어가니 두갈래의 발자욱이 나있다. 계곡으로 들어선 발자욱은 한사람의 발자욱이고, 능선으로 향하는 발자욱은 여러 사람의 발자욱이다.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여러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 길은 된비알과 눈으로 인하여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돌아와서 산행지도를 찾아보니 계곡길이 등산로가 맞다. 다수결주의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능선에는 갈참나무가 빼곡하고 갈참나무 가지에는 유난히 겨우살이가 많이 기생하고 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겨우살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최과장이 아니다. 사자산에서 악만 쓰고 수확이 없더니만 오늘은 위태위태 나무에 기어 올라 제법 수확을 하였다.
능선길은 부드럽지만 눈으로 인하여 속도가 나지 않고 피로를 안겨다 준다. 이곳이 정규 등산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자욱을 조금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진다. 처음 길을 내며 오른 사람들의 고행이 눈에 선하다. 제법 경사가 있는 능선길을 타고 오르다 보면 잠시 완만하고 부드러운 쉼길이 나오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 주목군락지가 나온다.
주목군락지에 다다르면 천년은 묵음직한 주목이 고사하여 쓰러져 있고 주위로는 크고 작은 주목들이 자라고 있다. 발왕산은 주목이 유난히도 많은 것 같다. 주목으로 유명한 태백산이나 함백산, 소백산 보다도 더 많은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주목군락지를 가파르게 뚫고 오르면 정상에 다다른다. 발왕산은 1,458m로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진부면과 강릉시 왕산면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산세가 부드러우면서 적설량이 많아 우리나라 최대의 휴양지라 자랑하는 용평리조트와 용평스키장이 있다.

발왕산은 "발왕이와 옥녀의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이 고을에 유난히 발이 크고 기골이 장대하여 발왕이라고 불리우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너무 기골이 장대하여 장가를 못가던 중, 우연히 옥녀라는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둘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결혼비용이 없어 결혼비용을 벌기 위하여 각각 남쪽과 동쪽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 후 발왕이는 산적두목이 되어 호의호식하며 옥녀를 잊고 주색잡기에 빠지게 된다. 10년이 지난 어느날 관군의 기습을 받은 발왕은 세력을 잃고 남쪽으로 도망쳐 옥녀를 찾아가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만다. 고루포기산에서 이 소식을 들은 옥녀가 찾아와 정성껏 무덤을 만들고 머리카락이 희게 될때까지 무덤을 지키었다고 하며, 그때부터 발왕이가 죽은 산을 발왕산이라 부르고 옥녀가 평생 무덤을 지킨산을 옥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발왕산의 정상 부근은 넓은 마당을 이루고 있다. 고산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청명하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눈발이 흩날린다. 정상에서 조망은 아주좋다. 능선의 북사면을 타고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남사면으로 채 녹지 않은 눈꽃이 수목을 뒤덮어서 좋은 풍광을 만들어 놓았다. 북으로 오대산이 보이고 북서로 선자령의 하얀 설원이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좋다면 설악산과 동해의 푸른바다가 보인다고 하나 오늘은 시계가 좋지 않아 볼 수 없음이 유감이다.
정상의 동쪽으로 관광곤돌라탑이 보인다. 여기저기 수술자욱이 있는 늙은 주목들의 모습이 보이고, 관광곤돌라 앞으로 영화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카페와 함께 배용준과 최지우의 실물크기의 모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광곤돌라를 타고 발왕산의 정상에 올라 좋은 풍광과 조망을 즐기고 스키를 타기도 한다. 
곤들라 승차장 앞으로 전망대가 있고 이곳에 서면 주목이 군락을 이룬 발왕의 북사면과 우람한 산맥들과 선자령의 설원과 풍력발전기가 가슴이 시원해지듯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레드능선슬로프를 타고 내려온다. 슬로프와 등산로를 번갈아 걸어야 하는 실버, 골드 등산로가 있으나 폭설로 아직 길이 뚫리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길래 사람들이 밟아 단단해진 눈높이가 아래 사진처럼 목책의 끝부분만 드러나고 모두 묻혀 있다. 
슬로프의 설원을 타고 하산하는 길은 잘 다져진 덕분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시원하게 뻗어 내려가는 설원도 좋지만 내려다 보이는 조망과 함께 주변의 풍광도 아주 좋다. 아래 사진의 끝부분이 대관령을 지나 선자령으로 이어지고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설원위로는 풍력발전기가 늘어서 있다.
이미 해는 서산에 지고 어둠이 몰려온다. 곤돌라의 운행을 중지시킨 탓으로 스키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적막한 슬로프를 터벅터벅 걸어 내려온다. 가끔 산상에 근무하는 분들이 스키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곤돌라를 타고 출근하여 스키를 타고 퇴근하는 별난 출퇴근 모습이다. 용평스키장엔 조명이 들어오고 설원을 온통 대낮처럼 밝혀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놓았다.

밤이 되자 꽤나 강한 추위가 몰려온다. 산행시간은 4시간을 소요하고 다시 미끄럽고 어두운 길을 따라 차를 찾으러 간다. 늘상 겪는 자차 이용의 불편함이다. 무차별 경쟁사회속에서 갈등하고 가식과 위선속에 묻혀 사람의 역할을 잊고 살다가도 산에 오르면 다시 사람이 되는 것을 느낀다고 어느 산꾼이 말했든가? 가끔은 틈을 내어 자연을 벗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것이 각박한 이 시대를 살며, 오염되어 가는 우리의 인성을 순화시켜줄 방법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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