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상고대와 칼바람이 몰아치는 소백산 비로봉에 다녀오다.
여행기간
2007.12.15(토) 눈
나의 평가
새벽잠이 없어지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드는 탓인지?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3시다. 창밖을 바라보니, 가로등 불빛을 타고 소록소록 흰눈이 내리고 있다. 불현듯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하고 싶은 충동에 주섬주섬 산행장비를 챙기고 곤히 자고있는 아내를 깨워서 소백산을 찾아간다. 어둠을 뚫고 눈은 쉼없이 쏟아지고 길은 미끄럽다. 요즘 산행알바를 밥먹듯하더니만 오늘은 차량알바까지다. 레비게이션은 집안에 잘 모셔놓고 엉뚱한 곳을 돌다보니, 한시간 알바를 하고는 차마져 미끄러저 한바퀴 돌았으니, 울마눌 잠이 싹 달아났나 보다.
어의곡에 도착하니 여명이 밝아오고 부지런한 아저씨 한분이 주차장에 눈을 치우고 있다. 소백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분이 막 출근을하여 대설주의보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하는데, 방금 풀렸으니 잘다녀오란다. 소백은 소록소록 내리는 눈이 수목을 뒤덮어 온통 설국을 만들어 놓았다.
눈덮힌 등산로에 우리가 처음 발자욱을 만들며 오른다. 눈은 부드러우나 곳곳에 얼음위로 눈이 쌓여 미끄러운 곳도 있다. 눈이 내리는 산속은 산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적막하나 가끔씩 수목위로 몰아치는 바람소리가 능선의 칼바람을 예고하는 듯하다.
어둠이 깔린 새벽에 집을 나서다보니 아침을 먹지 못하였다. 나야 산에서 잘 먹지를 않으나, 울마눌 허기로 눈이 돌아갈 지경이라 걷기가 힘들다 한다. 급히 도치램프로 라면하나를 끓여 먹다보니, 한팀의 산객이 뒤따라 오른다.
이팀은 소주한잔으로 속을 달래고 먼저 출발하고, 다시 한팀이 따라 붙어 막걸리로 해장을 하고 있다. 눈이 내리는 이른 아침 산행길에서 한잔하는 맛이야~꼴깍(왜? 라면엔 관심이 없고 남들이 마시는 술쪽에만 눈길이 가는지?) 잣나무가 울창한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능선으로 향한다. 산은 오를수록 눈이 깊어져 걷기가 불편하여 아이젠과 스패츠로 중무장을 한다. 오를수록 바람은 차츰 세력을 더하고 눈은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내리고를 거듭한다.
높이를 더할수록 눈내리는 양은 줄어들고 대신 운무가 짙어진다. 산의 아랫쪽에는 눈을 뒤집어 쓴 수목이 장관을 이루고, 오를수록 상고대가 만발하여 눈을 부시게 한다. 온통 백색의 눈과 상고대가 가득하고 운무에 휩쌓여 산속은 꿈속을 걷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눈길을 걷는 것은 체력의 소모도 크지만 역시 산행시간도 많이 걸린다. 해가 짧은 겨울철 심설산행은 체력과 시간이 20~30% 정도는 가중되는 듯하니, 산행시간을 넉넉히 잡아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정상을 500m정도 남겨두고 국망봉으로 갈라지는 안부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다시한번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처음 오신분들에게도 중무장을 하도록 권한다. 비로봉 능선의 칼바람은 가히 나라안에서도 명성이 자자한곳이 아니던가? 지난겨울에도 이곳에서 비로봉 능선을 오르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에 전진이 어려워 포기하고 후퇴를 한적이 있으니, 이곳의 칼바람을 경험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다행이도 오늘은 바람이 우측후면에서 불어와 오르기가 수월하다. 목책에도 수목에도 상고대가 달라붙어 덕지덕지하고 바람은 거세다. 능선에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겨울철 칼바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강풍이 눈을 날려서 깊고 낮은 곳이 반복되고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은 금새 묻혀 버린다.
국망봉으로 갈라지는 안부삼거리의 안내판도 온통 상고대로 덕지덕지하다. 오늘은 눈까지 합세한 능선의 칼바람을 뚫고 오른다.
우측후면을 때리는 바람은 오르기에 도움을 주나 사람이 휘청거릴 정도로 매섭게 몰아친다. 역시 소문난대로 비로능선의 칼바람은 제역할을 다하는 듯하다. 하필 이쯤에 벨소리가 울리니, 잠시 통화에도 금새 손이 얼어 붙는 듯하다.
정상에도 거세게 칼바람이 몰아친다. 안내판이나 이정표에도 상고대가 덕지덕지하고 심지어는 바위 등 모든 사물에는 상고대가 달라 붙으니, 등산복과 모자등에도 상고대가 달라 붙는다. 같이 오른 한팀은 연화봉 방향으로 향한다. 연화봉으로 가고 싶으나 차가 어의곡에 있으니, 원점회귀를 하여야 한다. 자차를 이용하다보면 늘 느끼는 아쉬움이 원점회귀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시 안부로 내려선다. 내려올때는 전좌측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내려와야 한다. 모두 가리고 눈만 빼꼼한데도 눈주위로 부딧치는 칼바람은 차갑다 못해 쓰라림을 느끼게 하니, 오를적보다 고통이 더한것 같다. 국망봉을 돌아 어의곡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곧바로 하산길을 택한다. 국망봉이 입산통제구역이기도 하지만 눈이 계속 쌓이는 국망봉에서 어의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뚫려 있을지도 의문이고, 시간과 아내의 체력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어의곡에 도착하니 산행은 6시간을 소요하고 마무리한다. 산아래는 햇살이 따스하고 눈이 녹아 질척하니, 산상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겨울철 심설산행은 역시 눈과 상고대와 바람이 있어야 제멋이 아닌가 싶으니, 잠시 딴 세상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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