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십자봉(촉새봉)과 천은사계곡에 다녀오다.
여행기간
2007.08.26(일)
나의 평가
유붕(幼朋)이 자원방래(自遠訪來)하니, 한잔 아니 할 수 있는가? 멀리 있는 친구가 볼일차 들렀다가 술이나 한잔 하자하니 밤늦도록 고주망태가 되어서야 술판을 끝내고, 토요일 하루를 비실비실 보낸것이 못내 아쉬워 아침일찍 산행채비를 한다. 창밖을 보니 밖은 온통 운무가 내려깔려 자욱하니 날씨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일기예보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곳에 따라 소나기가 내린다 하는데 비가 올것 같지는 않으니 가까운데 있으면서도 아직 미답인 십자봉(촉새봉)을 찾아 간다.
십자봉은 높이가 984.8m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충북 제천을 경계하며 백운산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원주에서 충주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 조금 가다 큰양안치재를 지나 덕가산 방향으로 뻗어가는 능선상에 있는 봉우리다. 큰양안치에서 올라도 되고 덕동계곡쪽에서 올라도 된다. 오늘은 천은사계곡에서 올라 큰양안치로 하산하기로 하고 천은사계곡을 찾아 간다. 천은사계곡에 들어서니 마을 주민들이 주차료 2,000원에 1인 1,000원씩의 입장료를 징수한다. 절간에서 받는 문화재관람료는 아까운데 주민들이 징수하는 입장료는 별로 아깝지 않은 것이 내가 변덕이 심하고 편협해서 그런 것인지?
작은 절 천은사 입구로 들어서면 수량은 많지 않지만 맑은 물이 흐르는 천은사계곡을 따라 오른다. 아침인데도 계곡을 찾아 온 분들이 쉬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인다. 원래 십자봉은 촉새봉이라 불렀는데 일제때 촉새와 비슷한 즈네들이 개량한 십자매의 이름을 따서 십자봉이라 표기하였다 한다. 아직도 이곳 주민들은 십자봉을 촉새봉이라 부르고 천은사도 백운산 천은사라 부른다 한다.
산은 계곡을 끼고 온통 수목으로 가득하여 주변의 풍광을 조망하기는 어렵고 오로지 계곡을 타고 울창한 나무그늘을 걸어야 한다. 그늘 아래를 걷는다지만 이따금 숲을 뚫고 파고드는 햇살은 마지막 보내는 여름이 아쉬운양 작열하여 막바지 더위를 쏟아 붙는다. 밥맛이 없어 아침을 거른탓인지 컨디션은 별로이나 계곡을 타고 오르는 완만한 등산로는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서울에서 온 산악회 관광버스 3대가 산객을 풀어 놓으니 조용하던 산판은 금방 시끌시끌해진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골을 타고 오르다 갈림길이 나온다. 계곡을 타고 오르는 등산로는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져 있어 길을 막아 놓았다. 모두들 산악회의 선두주자가 이정표를 달아 놓은 능선을 따라 오른다.
그러나 오를수록 등산로는 희미해지고 가파라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숨은 턱에 차고 심장의 박동은 벌떡벌떡 쿵쾅거리고 비오듯 땀이 흐른다. 쉬다 오르다를 되풀이 하면서 얼마나 올랐는가? 아마도 8부능선쯤에 다다랐을때쯤 선두가 등산로가 없어 도저히 더 이상 전진이 어렵다하며 하산을 주장한다. 다시금 등산로도 없는 가파른 산판을 헤집고 내려온다. 에구~내려오다 보니 원점회귀를 하였으니 폭염속에 체력만 소진시킨 것 같다.
덕분에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산판을 헤메다 더덕은 몇뿌리 캐어왔다. 야생더덕이 초롱같은 꽃을 피워 더덕의 향기와 함께 이쁜꽃까지 볼 수 있으니 정감이 더한다.
다시 등산로로 휘귀하여 십자봉으로 향한다. 이미 많은 산객들이 알바에 지쳤는지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을 하고 몇몇 산객들만 십자봉으로 향한다. 땀이 너무 흐르니, 울마늘이 메이커라고 사온 등산바지가 척척 다리에 감겨서 걷기가 불편하다. 배낭속에서 반바지를 꺼내 갈아 입고는 산행을 계속한다.
완만한 계곡길이 끝나고 역귀대가 수북한 습지를 지나 가파르게 치고 올라 안부에 다다른다. 안부에서 잠시쉬다보니, 버글대던 산객들은 대부분 중도 하산을 하고 서너명만 뒤를 따르고 있다. 안부에서 잡풀이 무성하여 봉분을 알아보기 힘든 묘지를 지나 울창하고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 한다.
앞에 우뚝하니 971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기력이 쇠잔하여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회로를 타고 돌아가니 십자봉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이곳에는 수목이 울창한데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는 곳이 많아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한팀의 부부팀이 돌아 오는데 십자봉을 찾다가 못 찾고는 되돌아 오는 길이란다. 능선에서 갈등을 하고 있는데 산악팀중 유일하게 이곳까지 따라 온 산객 한분과 만난다. 능선을 타고 계속 전진하면 십자봉이 나온단다. 셋이서 십자봉을 찾아 간다.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울 마늘도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고 물도 부족하다. 동행하는 분이 물통을 댓병으로 두병이나 지고 올라 왔으니, 물동냥을 하여 수통을 채운다.
십자봉 정상은 수목으로 가리워져 조망이 전혀 되지 않는다. 치악산맥과 백운산의 장쾌한 능선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이곳에는 두개의 정상표지석이 있다. 원주시에서 세운것과 제천시에서 세운 것이다. 정상석은 한개만 있어도 좋으니 이정표를 좀 더 설치하여야 할 것 같다. 특히 준비한 등산지도에는 천은사계곡을 타고 오르는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십자봉이라 표기 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정표와 정반대다. 내가 준비한 지도뿐 아니라 다른 산행팀들의 지도도 대부분 꺼꾸로 되어 있으니 헷갈리기가 십상이다. 십자봉에 오르는 분들은 이점을 참고로 하여야 할 것 같다. 정상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건빵과 계란으로 대신한다. 배는 고프나 먹는 것도 귀찮다. 서울산행팀중 유일하게 정상에 오른 한분은 이곳 저곳 기념 리본을 달고 서둘러 먼저 하산을 한다.
지친 탓으로 하산길이 얼마나 지루하던지? 체력도 소진되고 지도도 맞지 않는데다 수목이 울창하여 위치를 분간하기가 힘드니, 암봉을 돌아 큰양안치로 하산할 계획은 포기하고 올라 온 길로 원점회귀하기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하산중에 계곡에서 족탕도 하고 시원하게 등목도 하며 잠시 쉰다. 산행시간은 알바를 포함하여 5시간이 걸렸으니 그리 긴 산행은 아니지만 알바와 폭염으로 인한 체력의 손실은 배가 된 듯하다.
들머리에 도착하니 아침나절엔 한산하던 계곡은 피서객으로 만원이고 곳곳에 삽겹살을 굽고 술타령도 한다. 계곡의 입구에는 <취사금지>라는 풀랭카드 걸려 있고 그옆에는 <삼겹살 배달해 드립니다>라는 프랭카드가 나란히 걸려 있어 아이러니컬하다. 위에 사륜오토바이가 전화 한통이면 계곡으로 삼겹살과 양념소금을 즉각 배달해 준다. 버스 세대로 가득 싣고 온 산객들이 한명만 정상을 다녀오고 나머지 분들은 이미 취기로 불그레 하니 왁자지껄하다. 남들은 시원한 계곡에서 삽겹살에 쐬주를 기울이는데...나는 왜 폭염속에 비지땀을 흘리며 산을 올랐는지? 울마늘 하산후에 한마디 하길~"내가 죽을때까지 십자봉과 방태산은 다시 안온다" 한다. 한여름 폭염속에 끌고 나온 내죄가 크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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