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동안 계속된 폭우가 그치고 모처럼 햇살이 따갑게 내리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판인데 배론성지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고행이다. 날씨가 이러하니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나 이곳은 전국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드는 우리나라 최고의 천주교 순례지로 방문객들의 편의로 도모하기 위하여 넓은 주차장과 함께 순례자들이 쉬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순례자의집"을 만들어 놓았다.
잘 가꾸어진 잔듸 밭에는 조경수를 심어 놓아 시원히게 만들어 놓았으며 잔듸밭 앞에는 미로처럼 야외제대를 마들어 놓았다. 인생여정에는 동서남북과 사해팔방, 춘하추동, 생로병사와 유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가 있어 어느 과정도 생략할 수가 없으며, 모두 거쳐야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묵묵히 인내하면서 걸어 보라고 적혀 있다.
성지 안에는 갖가지 꽃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봄이면 봄꽃이 화사할 듯하다. 지금은 한 여름이니, 꽃이 많지는 않으나 폭염속에 보는 꽃은 나름대로 정감을 더한다.
"로사리오"길을 걸어 오르면 "로사리오동산"이 나온다. 로사리오 조각공원에는 최양엽신부가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선교를 하는 고행의 인생역정을 돌벽에 그림으로 표현하고 글로 설명하여 놓았다.
"로사리오동산"을 내려오면 "순교자의 집"이 있다. 원래는 "최토마스신부회관"으로 불리우던 것을 1986년 "순교자의집"으로 개칭하고 기존건물 개보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배론성지"는 단순히 천주교 순례지일뿐 아니라 2001년에 충청북도 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791년 신해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우들이 모여 농사를 짖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하였으며 아렛배론, 웃배론, 중땀배론, 점촌배론, 박달나무골 등 6개마을에 70여호가 신앙촌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옹기를 굽던 가마를 재현해 놓은 가마터가 있고 가마터 뒤쪽으로 토굴이 있다. 황사영(알렉시오)은 1775년 창원황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총명하고 재덕이 남달리 뛰어나 이미 16세에 "사마시" 에 급제를 하여 임금의 칭찬과 함께 손을 어루만자며 "네가 20세가 되면 내가 옆에두고 일을 시키고 싶다"고 하였다 한다. 출세가 보장된 황사영은 정약용의 맏형의 딸과 결혼하여 처가의 영향으로 천주교에 입문하였다. 처가쪽으로 이벽(요한), 홍재영(프로타시오), 이승훈(베드로)등 쟁쟁한 천주교인들의 영양을 받았던 것 같다. 세속의 공명과 영화는 모두 뜬구름 같다하여 교리연구에만 열중하였고 임금은 황사영이 일부러 과거시험에 백지를 내는 것을 알고 공부하여 과거에 응하길 권유하였으나 천주교에 입문한 것을 알고 매우 슬퍼하였다고 한다.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이곳 저곳으로 숨어 다니다가 이곳 교우촌에 들어와 토굴을 파고 기거하다 그해 8얼 주신부의 처형 소식을 듣고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찾고자 중국에 있는 주교에게 보내는 백서를 썼다고 한다. 토굴옆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신학생을 양성하던 신학당이 있다.
그해 9월 황사영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이송되었으며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한다. 황사영의 체포와 더불어 압수된 백서는 천하고금에 둘도 없는 흉악한 글이라 하여 위금부 창고에 보관되어 오다 1894년 문서정리시에 관계관이 천주교인 친구 이건영에게 전달하고 교구장 뮈텔주교를 통하여 1925년 한국순교자 79위 시복식때 교황에게 전달 되었다 한다. 뮈텔주교는 이를 동판으로 제작하였으며 현재 절두산 순교자기념전시실에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을 오르다 보면 사제들의 묘지가 나온다. 근래에 새로 조성된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으며 이곳에 오르며 교인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고원을 오른 예수와 고통스럽게 순교한 순교자를 위한 순례자들의 묵상의 길이다. 불볕처럼 내리쏘는 한낮의 태양열로 인하여 땀이 줄줄 흐르니 천주교와는 소 닭보듯이 살고 있는 나에게도 고행의 길임은 분명하다.
숲을 타고 오르는 "십자가의 길" 끝으로 우리나라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의 묘지가 나온다. 종교를 떠나 하여간 묵념 한번 하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수목이 울창한 나무계단을 내려온다.
오늘은 모처럼 지인들의 모임에서 가족동반 야유회를 하는 날이다. 이곳 배론성지 아래로 계곡물이 맑고 시원하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다른때 같으면 태양열이 작열하는 한낮이면 벌써 눈망울이 해롱해롱 할 정도가 되어 있겠지만 사랑니 발취와 임플란트 시공관계로 술은 입에도 못대고 술마시고 해롱대는(내가 선순디....) 친구들만 쳐다보고 있기도 그렇고 불볕 양광을 맞으며 배론성지를 둘러 보기로 하였다.
십자가의 길을 내려서면 최양업신부의 동상이 서있다. 최양업신부는 원래 1861년에 문경에서 선종 하셨다 하는데 이곳 베론 신학당 뒷산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대충 둘러보고 나니 온몸이 땀투성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어디 순교자들의 고통과 인내에 비하면 고통의 맛이나 보았는가 싶고, 한여름에 땀을 쥐어짜며 종일토록 산행도 일삼아 하는데 이까짓거야~뭐...^^*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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