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산은 해발 689m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충북 충주시 소태면을 경계로 하고 있다.강원도의 고산준령이 치악산맥과 백운산을 끝으로 자세를 낮추고 나면 충북북부와 경기남부 일원에는 산다운 산을 찾아 보기 힘들으니, 마륵산은 고산준령의 끝자락에 위치한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닌 듯하다. 기암과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숲이 우거져 외형상으로는 육산처럼 보이나 산행을 하다보면 숲에 가려진 암봉을 오르 내려야 하고 부드러운 능선길도 걸어야 하는 아기자기한 산이다.
산행은 원주시 귀래면 운계리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주포리 황산마을에서 시작하여도 된다. 원주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운계리를 지나 귀래면사무소가 있는 작은 산골읍인 운남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2km쯤 들어가면 주포리 황산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황산마을로 오른다. 마을 들머리에 등산안내도가 있으나 이정표가 없어 산행 들머리를 찾기가 애매하다. 마을 끝머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오르다 보면 산뜻하고 아담한 절 황룡사가 나온다.
황룡사 옆으로는 작은 골짜기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작은 폭포를 이루어 놓아 물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폭포 옆에는 아담하고 예쁜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절은 적막하니 인기척도 없고 등산로를 찾느라 한바퀴를 돌으니 정자 앞에 보살님 한분이 산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등산로를 물으니 정자 뒤쪽으로 오르면 등산로가 나온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정자 뒤쪽으로 오르면 대낮에도 음침하고 한기를 느낄만치 숲이 빼곡하고, 수량은 적지만 깨끗한 물이 흐르는 작은 골짜기를 건너 산행이 시작된다.
산은 온통 수목으로 가득하여 그늘을 만들어 놓아 시원하니 여름산행으로 아주 좋을 듯하다. 어제는 고향에서 지인의 대사에 참석하고, 부모님도 찾아 뵙고, 스승의 날을 맞아 고딩 은사님 모시고 친구들과 밤늦도록 거나하게 한잔하고 돌아 왔으니 주독도 풀리지 않고 피곤하여 오전내내 구들목 신세를 지고 느즈막히 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치니 3시가 넘어 버렸다. 남들은 산에서 내려 올 시간에 산엘 간다고 미륵산을 찾으니 4시가 넘어서야 산행이 시작된다. 해드렌턴 빵빵한 것으로 하나 준비하여 야간산행에 대비도 하였다. 들머리에서 약 한시간 정도 수목이 우거진 가파른 등산로를 타고 오르다 보면 서서히 바위가 보이고 첫번째 능선에 오르게 된다. 치마바위로 오르려 한 것이 우거진 수목으로 방향설정이 어려워 능선으로 오르게 되었다.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가다보면 치마바위를 만나게 된다.
조망이 쉽지 않으니 지도를 가지고 갔는데도 헷갈리기가 딱이다. 어제 밤늦도록 퍼댄 주독이 다 가시지 않은 때문인지 따끈한 날씨 때문인지 땀도 많이 흐르고 숨도 차 오른다. 백악산에서 암봉을 타다 다리가 비틀리며 무릅에 통증이 오더니 아직도 가끔씩 통증을 느낀다. 화강암벽이 수십길 단애를 이루고 바위 위로는 멋지게 자란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위험하니 단애지역에는 밧줄이 쳐저 있다.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노송이 구불구불 어우러진 전망대가 나오고 이곳에서 능선을 타고 조금 더가면 미륵산 쉼터가 나온다.
치마바위를 지나 신선봉, 장군봉, 미륵봉이 나란히 늘어서 있어 암봉을 오르 내려야 하나 암봉까지도 수목으로 뒤덮혀 있어 조망이 시원치 않으니 한개의 봉우리에 오르면 곧 정상인 듯한 착각에 빠지고 다시 내려섰다 다시 암봉에 오르면 정상인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능선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고 바위와 수목으로 가득한 암봉을 밧줄에 의지하여 오르고 내려야 한다. 곳곳에 밧줄구간이 있으나 그리 힘들거나 어려운 구간은 없고 부드러운 능선과 암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오히려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수가 있다.
암릉을 타다보면 밧줄도 없는 난코스를 만나기도 하지만 우회하는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으니 무리하게 암봉을 탈 필요는 없다. 신선봉과 장군봉을 넘어서면 황산마을과 헬기장으로 갈라지는 안부로 내려서게 된다.
장군봉에서 내려오다 마주 보이는 미륵봉의 모습이 수려하다. 그러나 수목이 우거져 조망은 어렵고 나무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모습을 겨우 찍어 가지고 왔다.
밧줄도 없는 미륵봉 암봉에 올라서면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남으로 내가 타고 올라 온 치마바위-신선봉-장군봉이 고만고만 키재기를 하듯 늘어서 있다.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암봉위에도 수목이 울창하여 육산의 모습처럼 보인다.
미륵봉의 정상은 몇개의 바위를 모아 암봉을 만들어 놓은 듯하고 크랙이 있다. 조심조심 크랙을 건너 암봉위에서 잠시 쉰다. 오수에서 깨어나 입맛도 없고 속도 불편하여 점심을 걸렀더니 시장끼가 몰려 온다. 어제 마늘이 간식으로 먹다 남긴 빵이 몇개 있어 넣어 가지고 왔으니 빵을 꺼내어 시장끼를 때운다. 이곳까지 두시간 반이 걸렸으니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었다. 산아래 도착했을때에 관광버스 두어대가 산행을 마친 산객들을 싣고 떠났으니, 이 산중에는 나뿐인가 싶다. 쏴아 쏴아 밀려오는 바람소리 외엔 고요와 적막이 흐르고 까마귀 한마리가 머리위를 선회하며 까악까악 적막을 깨고 울어 댄다. 산 아래로는 운계리와 함께 중앙고속도로가 길게 늘어서 있고 북으로 헬기장이 있는 689봉과 그 뒤로 미륵산이 보인다. 멀리로는 동으로 십자봉과 북동으로 백운산과 치악산맥이 늘어서서 마루금을 이루고 남서로 국망봉과 보련산이 보인다.
미륵산 정상까지 가보고 싶지만 피로하기도 하고 어둠속에서 홀로 암봉산행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니 이곳에서 하산을 하기로 한다. 다시 황산마을과 헬기봉으로 갈라지는 안부로 되돌아와 황산마을로 향한다. 내려올때 미륵불을 보고 왔어야 하는데 숲이 우거져 어둠이 빨리 몰려오니 서두르다 그냥 지나쳐 버렸다. 숲이 울창하여 침침한 등산로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황산사터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조립식이나 천막으로 지은 보잘것 없는<불조사>라는 절이 일부에 들어서 있고 나머지는 빈터만 남아 있다.
황산사터에는 3층석탑과 부도가 있어 옛절의 융성함을 말하는 듯하다. 언제나 흥망성세는 반복 되고 있으니, 지금은 초라한 "불조사"가 언젠가는 번창하여 옛"황산사"의 융성을 대신할 수 있을런지?
부도에는 안내판도 없고 희미하게 암각은 해놓은 것도 같으나 침침하고 흐릿하여 보이지가 않는다. 황산사터에서 등산로가 잘 발달된 골을 타고 내려온다. 잠자리를 찾는 새소리가 골짜기를 시끄럽게 한다. 어느 놈은 아름답게 우는데, 어느놈은 끼악~끼악 괴성을 질러댄다. 요넘이 조폭새?
산행의 날머리에 다다르면 경천묘가 나온다. 신라의 마지막 56대왕인 경순왕이 국력이 쇠퇴하여 후삼국의 전란에 지쳐, 고려를 창건한 왕건에게 정권을 넘기고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의 빼어남을 보고 정상에 올라 미륵불을 조성하고 그 아래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고 전한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를 올린것이 영정각의 시발이며, 고려때 전각이 무너지고 인적도 끊긴 것을 조선초 목은 이색, 권근등에 의하여 전각이 증수되고, 조선 숙종때 원주목사가 화상을 그리고 전각에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영조때 재건하여 경천묘라 하였다 한다. 그후 다시 소실된 것을 신라의 문화를 보존하고 무고한 생명을 아끼고자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긴 경순왕의 충정을 기려 2006년 9월 경천묘를 다시 복원하였다 한다. 나라를 잃은 설음을 안고 명산을 찾아 누빈 경순왕과 신라의 재건을 꿈꾸던 마지막 왕세자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애닮은 사연과 함께 이곳에서도 신라 마지막 왕실의 비운을 느낄수가 있다.
경천묘를 지나면 산행의 날머리가 나온다. 이곳부터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콘크리포장길을 걸어서 황산마을 입구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오다 길옆으로 지석묘(고인돌)를 만나게 된다.
마을은 어둠속에 묻히고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 산골 농가의 담장아래 이름모를 꽃이 아름답다. 느즈막히 찾아 간 미륵산~ 비록 정상까지 다녀오지 못하였지만 다음에 다시한번 찾아 올 것을 기약하며 어둠에 쌓인 미륵산을 떠난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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