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강 원 권

김삿갓을 찿아가다.

바위산(遊山) 2006. 5. 8. 21:38

죽장에 삿갓쓰고~방라앙 삼천리~기념관에 들어서니 구성지게 노래가 흘러 나온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곰봉을 등산코자 찿아 갔으나 경방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충북은 대부분 사월말로 끝이 난줄로 아는데....이곳까지 와서 헛걸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곰봉을 지나 조금 더 올라 가니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소와 기념관이 있어 들렀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이다. 1807년에 양주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으로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난고(蘭皐)이며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이라고도 한다. 평안도 선천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었으나 노복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세도가인 안동김씨들의 도움으로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안근은 홧병으로 사망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이사와 이를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하여 그의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으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자칭하여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으며 1987년 이곳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시비를 세웠다. 시집으로는 그의 시를 묶은 "김립시집"이 있다 아래 사진은 김삿갓의 유적비다.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 망할놈의 마을에선 쉰밥을 주더라. 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 내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묵었다. 이때 둘째아들 익균을 낳았으나 또다시 서울·충청도·경상도로 돌아다니다 도산서원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동안 훈장노릇도 하였다. 다시 전라도·충청도·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 김성수 아들집에서 1년쯤 훈장노릇을 하였다. 충청도 계룡산에서 아버지를 찿아 나선 아들 익균을 만나 재워놓고 도망하였다가 1년 만에 찿아온 아들과 경상도 어느 산촌에서 만났으나, 이번에는 심부름을 보내놓고 도망쳤다. 3년 뒤 경상도 진주땅에서 또다시 아들을 만나 귀향을 마음먹었다가 또 변심하여 이번에는 용변을 핑계로 도피하였다.

 

이곳엔 김삿갓계곡이 있어 맑은 계곡수와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다.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쎄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쎄"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 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되고 부자도 가난뱅이된다오"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간 그는 끝없는 저항과 비판의식이 시로 표현되었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신세를 지고 회복이 되자 다시금 지리산을 두루 살펴보고 쇠잔한 몸으로 선비 집을 다시 찿아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후에 아들 익균이 유해를 이장하여 이곳에 묻었다 한다. 이곳에 묘지가 셋이 있어 어느 것이 김삿갓의 묘지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설도 있고.....

 

 

스틱에 배낭메고 삿갓앞에서 폼잡다.

"푸른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 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과 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 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김삿갓 한시는 저항과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으며 규격화된 한시를 틀에 억매이지에 아니하고 자유로이 표현하여 파격적인 양상을 보이며 그시대의 몰락한 양반들의 편재와 과거제도의 문란등을 저항과 조롱과 야유로 표현하고 있다.

 

김삿갓 동상과 뒤로 김삿갓 기념관이 있다.

 

 하루는 한여인과 눈이 맞아 운우의 정을 나누게 되었는데 일을 마치고 삿갓이 읊길~

"털이 깊고 속이 넓은 걸 보니 필이 다른 사람이 지나갔나 보구나?

하고 여인의 처녀인척 하는 내숭을 비꼬으니 여인이 응답하길~

"시냇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절로 자라고 뒷동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절로 터진다오"

 

"여보소! 댁은 왜 촬영을 방해하는 거요?"

 

 

돌아오는 길에 덕가산에 들렀으나 이곳도 입산 통제다. 5월 중순이나 5월 말경은 되어야 입산통제가 풀릴 듯하다.

 

 

청석 암벽위로 연록의 푸르름이 짙어만 가고 아래로 동강의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르니 오늘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근디 김삿갓을 보고오니 인생의 무상함이 가슴을 후비던가? 대낫부터 왠놈의 소주 생각이 나는지....  덕가산 밑 동강변에 자리를 피고 점심을 먹으며 쐬주 둬병 비우니 알딸딸 하구먼~

 

 

한잔술에 거나해져 나도 김삿갓 흉내를 내고자 한수 읊어 보는데~

 

"청색 암벽에는 녹음이 흐드러지고 파란 하늘엔 뭉개구름 두둥실 떠간다.

산허리를 휘돌아 동강의 푸른물이 흐르니 내마음도 강물따라 하염없이 흐른다.

우리네 인생도 저 강물처럼 흘러~~~"

 

그때다~ "여봇!!!!" 울 마늘이 천둥을 친다. "이 영감탱이 대낫부터 술은 마시고 운전은 나보구 하라구?...###"

에고! 그냥 살자. 시는 무신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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