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의 주천은 고구려의 주연현이었는데, 1937년에 주천면으로 바꾸었다. 지명유래는 주천강 부근의 망산에 있는 바위 밑에서 술이 나왔다고 하여 생긴 것이다. 酒泉 표지석 아래에는 주천의 유래가 새겨져 있는데, 조선시대 성종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문헌에 따르면, 이 샘에서 처음에는 술이 나왔는데 양반이 오면 약주가 나오고, 천민이 오면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또 설화에 의하면 조선시대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와서 약주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약주는 나오지 않고 평소와 같이 탁주가 나오자 화가 나서 샘터를 부순 이후에는 술이 나오지 않고 맑고 찬 샘물이 나오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는 내용이다.
술이 나온다는 주천이 주천의 들머리 에 있으며, 술막이라는 옛 지명이 있는 점으로 보아 주천의 들머리인 이곳에 주막거리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백덕산 남쪽의 산간분지에 위치하며, 아차치나 송치 등을 통하여 외부와 육로로 연결되었다. 이곳 망산에 망산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어 울창한 송림과 조망이 좋아 가벼운 산행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오늘은 망산에 올라보기로 하였다.
체력단련장
주천강▲
빙허루▼
비운의 어린왕 단종이 죽어 시신이 버려진지 200년이 지나, 숙종이 나라를 잡았다. 강력한 왕이 되고자 했던 숙종은 전대의 아픔을 해결하고자 했다. 버려졌던 단종의 시신을 찾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것도 단종으로 추숭하고 복권시켰다. 숙종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으로 생각한 것 중에 하나로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 누각에 글을 써서 보내는 일이었다. 산골마을에 왕의 시가 도착했으니 산골마을의 경사였다. 왕의 시를 건 곳이 빙허루였다.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세상은 예정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행운을 만들기도 하고, 낙망스러운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곳은 행운쪽이다. 빙허루에 화재가 나 타버렸다. 왕의 헌시도 당연히 타버렸다. 힘없는 주천 백성으로 크나큰 불경죄였다. 숙종이 죽고 아들인 영조가 왕으로 있을 때였다. 영조는 선왕의 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영조는 다시 시를 보내왔다. 숙종 영조 두 선왕의 시를 기념해서 다시 정조가 시를 지어 보냈다. 이는 주천의 깊은 산골마을의 누각에 세 왕의 시가 걸리게 된 사연이다.
망산에 오르다 보면 주천과 주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빙허루가 있다. 빙허루가 자리잡은 산이름이 반짝거리는 봄빛같다. 너무 잘 어울린다. 망산望山이다. 주천강과 주천 전경이 환하게 열린다. 세상을 한 시야로 바라볼 수 있는 산이다. 왕들의 사연이 얽혀있는 빙허루에서 왕의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려보라.
주천강 갈림길 삼거리
만남의 광장
공연장
들머리에서 가파르게 올라 채력단련장과 만남의 광장을 지나 조금 오르면 빙허루가 나온다. 빙허루에 오르면 주천강과 추천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다하누촌으로 명성을 얻어 관광버스가 줄을 잇던 주천이다. 빙허루에 다시 주천강 갈림길 안부로 내려왔다 깔닥고개를 헉헉대고 오르면 망산 정상이다. 등산로는 정상에서 사태봉으로 이어져 주천강변을 탁ㅗ 내려오면 좋은 등산코스가 되겠지만 오늘은 망산에서 오던길로 되돌아 가다 주천강 섶다리를 보고 강변길로 원점회귀한다.
산림욕장
깔닥고개
망산 정상
사태봉 가는길
하산길
주찬강 섶다리
오리때가 바글바글
섶다리
주천강
썰매밖에 안타본 사람~
빙허루
강변길
강변테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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