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산수유마을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있다. 지리산 자락의 구례 상위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산수유 군락지로 수도권에서 가까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4월 초순경 산수유 축제가 열려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동내에서 각종 행사기 펼쳐지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뒤로 해발 634m인 원적산이 올려다 보이고 산아래로 만발한 산수유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모처럼 객지에 나가있던 딸래미가 내려왔다. 같이 산행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비지땀 흘리며 오르는 산행보다는 여행을 원한다. 서해안 태안반도를 찾아가 태안팔경 구경도 하고 맛난 해물도 먹어볼까 하여 출발을 하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급히 이천의 산수유마을로 방향을 바꾼다.
이천의 산수유마을은 축제기간이 끝났음에도 주말을 맞은 많은 관광객들로 주차장이 만원이다. 마을로 들어서니 산수유꽃과 함께 목련이 화사하게 반긴다. 이천의 산수유마을은 몇년전에도 아내와 함께 다녀간 곳이다. 그때는 꽃구경 후 작으나 암릉으로 수려한 도드람산 산행을 한 기억이 있다.
입구에서 조금 오르면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사찰인 영축사가 나온다. 영축사 들머리에 커다란 돌을 세워 한면에는 영축사라 써 놓았으며, 다른 한면에는 '일체(절)유심조(一切唯心造)' 라 쓰고, '세상 모든 것은 마음 지은대로 길이 열린다' 라고 써놓았다.
일체유심조란, 일체만법이 오직 이 한 마음에 있다는 의미이다. 원효 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서 해골물을 어둠 속에서는 맛있게 먹고 갈증을 쉴 수 있었으나, 밝은날 해골물임을 알고부터 구토로 온 창자가 뒤틀리는 괴로움을 당하여 크게 깨닫고, 한 마음이 일어난 즉 가지 가지 마음이 일어나고, 한 마음이 멸한 즉 가지 가지 마음이 멸한다고 하였으니 따라서 더러움과 깨끗함이 모두 나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분별이라 생각했고, 천태만상의 현상 역시 어리석은 마음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고통스럽게 느끼는데 또 다른 사람은 평안하게 보는 수가 있다. 이는 오직 마음의 조작일 뿐이라는 말이다.
마을 가운데 작은 우물과 함께 정자가 있어 남당이라 부르고, 그 옆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해묵은 느티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지치주의와 현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남당 엄용순이 건립 했다는 정자이다. 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그 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당 옆으로 육괴정이란 고 건물이 있다.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모제 김안국을 비롯 규정 姜隱, 계산 오경, 퇴휴 임정신, 성두문, 엄용순등 여섯 선비가 모여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연못은 많이 메워지고 6그루의 느티나무 중 대부분 고사하고 후손들이 다시 심었다고 전한다.
이곡 백사면 도립1.2리와 송말1.2리, 경사리등 5개 마을에는 500년 이상 묵은 산수유나무만 1만7천여 그루라 하며 연간 20ton정도의 산수유를 수확하여 우리나라 산수유 생산량의 30%이상을 차지하여 구례 상위마을에 다음가는 산수유 생산지다.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마을에는 가끔씩 매화나 복사꽃과 개나리가 피어 나도 꽃이라 시샘을 하는 듯하다. 축제기간이 끝나서인지 행사를 위하여 조성된 임시 집단시설은 대부분 비어 있고 몇몇 상인들이 자리하여 막걸리나 부침게등을 팔고 있으며, 이 고장 특산물을 파는 모습도 보인다.
<원적산>
산수유 군락 끝으로 그네도 보이고 많은 행락객들이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즐기는 모습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 놓는다.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수유마을 뒤에 있는 이천의 진산인 원적산 산행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원적산은 그리 볼만한 풍경은 없다. 산수유마을 구경하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암릉을 자랑하는 도드람산을 산행하는 것이 좀 더 좋은 풍경과 산행의 즐거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산수유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와 도립서당으로 오른다. 이곳도 산수유꽃이 화사하게 만발하였다. 도립서당은 한재홍(40), 재근(37), 재훈(31) 세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모두 20여년간 한학을 공부해 온 순수 서당 출신이다. 막내 훈장 재훈씨를 빼고는 전연 학교교육을 받은 바가 없다. 어려서부터 순천, 남원, 곡성 등지의 전통 서당들을 다니며 사서삼경 등을 공부, 각자 훈장노릇을 하다가 지난해 봄 이곳에 도립서당을 열면서 세사람이 뭉쳤다.
<도립서당>
몇그루의 진달래가 분홍색 꽃을 피운 서당 뒷편으로 훈장님이 학생들과 함께 가마솥 걸이를 수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훈장님들은 부친의 영향으로 조부때부터 신봉해 온 민족종교 '갱정유도'에 따라 부친 한양원(79.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옹은 모든 가족들의 삶을 그에 맞춰 이끌어왔다. 갱정유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80년전 일제 말기에 태동한 우리 민족종교중 하나로, 현대의 물질문명과 전래의 정신문명을 접목시킨 것이다.
원래 남원에 본부를 두고 있던 갱정유도 신도들이 청학동으로 옮겨가 살면서 갱정유도는 청학동 일대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그후 지금까지 청학동이 서당의 마지막 요새처럼 자리하게 된 것도, 현재 청학동의 서당을 지키는 한학자들 전원이 갱정유도 신도들인것도 이같은 배경때문이다. 부친 한옹은 그 자신도 평생 한학과 입산 묵언수도 등으로 공부하며 살아왔다. 그 부친의 뜻에 따라 아들 3형제 역시 7세만 되면 부모님 곁을 떠나 서당을 찾아다니며 유학 아닌 유학생활을 했다.
도립서당을 내려와 이천쌀밥집에서 정갈한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다. 이천에는 산수유마을 이외에도 이천9경이 있어 함께 둘러 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이천9경은 산수유마을, 도드람산, 설봉호, 설봉산, 반룡송, 애련정, 노성산, 말머리바위, 도예촌 등으로 산수유마을과 함께 둘러 본다면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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