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란 도박의 고수라는 은어다. 나는 도박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오래전 사업을 접고 어려웠던 시절 잠시 부동산중계업을 한 적이 있다. 그시절 우연치 않게 나의 사무실은 타짜들에게 안전지대라 불리우며, 많은 타짜들이 몰려들어 도박판이 형성되곤 하였다. 그러나 하나둘 패가망신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부담되어 어느 날 소리 없이 문을 닫고 그 곳을 떠나온 적이 있다. 영화에서 보듯, 도박은 "큰거 한판에 인생은 예술이 된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것은 마약중독처럼 환상에 빠져 스스로를 제어하기가 어렵다. 애초부터 도박은 승율3 : 패율7의 힘겨운 싸움이다. 그 중간에 운영자의 고리(판돈의 일정부분을 수수료로 공제하는 것)와 승리시의 팁과 식주대비 및 유흥비 등으로 날라가게 되어 있다. 간혹 운이 좋아 승리하는 날이 있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도박의 매력에 빠져들어 결국은 재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으로 끝을 내게 된다. 영화는 영화일뿐, 세상에는 영원한 고수도 영원한 승자도 없기 때문이다.
< 영화의 줄거리>
영화 '타짜'는 열 가지 소제목으로 단락을 분류했다. 간간이 화투판의 꽃, 설계자라고 부르는 정마담 역의 김혜수의 나레이션이 있다. 주연, 조연의 구분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캐릭터가 주는 인상이 확실하고 연기가 탁월하다. 시대배경은 허영만화백의 만화로 제작된 것은 1960대라고 하나 영화에서는 1996년에서 1999년 사이의 3년간의 주인공의 행로를 엮어간다. 26세의 승부욕이 강한 고니역의 조승우, 도박판의 꽃 정마담 역의 김혜수, 도박에 살고 도박에 달관한 욕심 없는 중견 도박사, 전국 최고의 타짜 평경장 역의 백윤식, 도박을 직장 일처럼 여기며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인 입담 좋은 서민형인 고광렬 역의 유해진 등이 긴박감 넘치며 잔인한 도박의 세계를 연기해 간다. 작은 가구공장에 다니는 평범한 재미로 사는 청년 고니는 우연히 도박판에 끼어들어 도박판에서 꾼 돈 100만원을 모두 잃는다. 그 날 공교롭게도 이혼 위자료를 들고 친정에 누나가 와 기거한다. 갈등 끝에 누나 돈을 몰래 가져다가 만회하려 노름판에 뛰어 들었다가 속임수를 당하여 그 마저 모두 잃는다. 속임수를 쓴 박무석을 찾아나서는 중 전국의 타짜와 스펙터클한 도박판을 우연적, 필연적으로 접하게 된다.
1. 낯선자를 조심해라 - 정마담의 나래이션이 나온다. “놀음을 왜 하냐구요? 글쎄요” “화투란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이라고 하지요” 고니는 전국 최고의 타짜 평경장을 우연적이고도 필연적으로 만난다. 잃은 돈의 다섯 배를 따면 노름을 끊겠다고 다짐 하고 평경장과 동거하며 특별과외를 받는다. 2. 사는 게 예술이다 - 평경장은 도박을 아트의 경지로 끌어 올려 가르친다. 또는 몰아일체의 경지, 혼이 담긴 구라라고 말한다. 내가 화투이고 화투가 나인 경지를 말하면서 돈은 나누어 먹어야 탈이 없다하고 욕심 부리지 않는 것도 일러준다. 또는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면 우린 뭘 먹고 사나" 하는 나름의 노름세계의 가치를 부여하는 철학도 일러준다. 단순한 승부욕에 불타는 젊은 고니는 평경장과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아 평경장을 떠나 이때부터 지방을 도는 원정경기를 다짐한다. 포항, 부산, 논산, 익산 등 전국 각지를 돈다. 3. 도박의 꽃, 설계자 - 부산에서 평경장의 소개로 정마담을 만난다. 돈과 사랑에 욕심이 생긴 고니는 정마담과 관계에 빠진다. 정마담은 고니의 승부욕을 읽고 최고의 타짜 감으로 만들려 고수의 세계를 소개하고 이끈다. 평경장은 정마담은 "예쁜 칼이니 조심해서 다루라"는 충고와 함께 "이 바닥엔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다" 라는 마지막 충고를 한다. 4. 화려한 돈 - 평경장이 죽임을 당했다. 고니는 전라도지방의 악명 높은 타짜, 아귀가 죽였다고 믿고 아귀를 찾는다.
5. 폭력은 박력이다 - 수억대 노름판, 그리고 노름꾼들의 속임수, 기술성, 한탕주의에 몰입하는 모습과 필연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잔인한 폭력이 이어진다. 6. 아름다운 칼 - 하우스를 멋지게 차려 놓고 하수인을 부리며 호구들을 도박판으로 끌어 들여 부를 취하는 무서운 욕망의 소유자인 정마담은 거짓애인의 막대한 돈도 삼킨다. 한편 고니는 고광열을 시켜 자기 집에 누나의 돈을 돌려 보낸다. 7. 눈을 보지 마라 - 고니는 경상도 지방의 고수 타짜인 짝귀를 만난다. 도박판에서 상해를 당해 한쪽 귀가 망가져 짝귀라 한다. 게다가 한쪽 손도 잘려 갈고리를 한 채 도박을 한다. “화투는 손이 아니야. 마음이야” “구라칠 때 절대 상대방의 눈을 보지 마라” 한다. 8. 악당이 너무 많다 - “어떻게 호구를 판대기에 앉히는가” 정마담의 궁리이다. 돈은 돌고 돈다. 호구의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9. 죽음의 액수 - 평경장을 죽인 것은 아귀가 아니라 정마담이다. 정마담은 평경장 때문에 이 길로 들어 선 것을 원망해 왔다.
10. 문은 항상 등 뒤에서 닫힌다.
도박 장소는 배안이다. 고니는 정마담의 소개로 드디어 아귀를 만난다. 평경장과의 의리에 대한 복수 때문이기도 하고 최고 타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아귀와 한판 붙는 과정에서 아귀와 정마담의 무심한 대화 중에 마지막 죽음의 모습을 그려내는 정마담의 실언으로 정마담이 하수인을 시켜 죽인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아귀는 판에서 상대가 지거나 자신이 지게 생기면 상대의 손을 잔인하게 잘라 왔는데 승부사 고니의 계략으로 아귀의 손이 잘리게 되고 고니는 딴 돈 반은 챙기고 반은 불을 질러버린다. 정마담은 불살라지는 돈에 미쳐 연연해한다. 배를 빌려준 선장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 중이고 이미 판에서 손이 잘린 도박판의 벗 고광렬과 함께 배에서 탈출한다. 정마담은 돈에 대한 집착과 고니에 대한 사랑의 원망으로 권총을 발사하고 고니는 부상을 입는다. 지인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하고 정마담은 경찰에 넘겨지는 과정에서 죽은 하수인의 시체를 고니의 시체라고 증언한다. 세월이 흐른 후 외국의 어느 카지노에서 고니가 일하는 모습이 보이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면 의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한 애인에게 명랑한 모습으로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고, 김상국의 '불나비"라는 노래가 처량하게 흘러 나온다.
<감 상 평 >
빠찡꼬나 화투, 카드 등의 예측불허의 승부놀이는 단순한 놀이에서 거액의 돈이 오고가는 노름의 용도로 사용된다. 그것은 칼이 조리나 도구를 만드는 유용한 도구에서 살인을 하는 흉기로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 사용하면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겠지만 자칫하며 인생을 망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제된 끝없는 욕망과 무모한 승부욕을 어떻게 제어하는가에 달려있다. 노름판에 뛰어 들기 전의 고니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이었고 정마담도 평경장을 만나기 전에는 평범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그들은 우연히 노름판에 발을 들이고 잔인한 승부의 세계에서 극단적 인물로 변하게 된다. 그들은 그 세계에 환멸과 멸시와 원망을 안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떨구지 못하고 그 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은 마약중독자가 마약세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망가져 가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나름의 철학을 터득하고 인간성을 지니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평경장은 하우스판에서 보기드믄 인물이다. 나는 오래전 나의 사무실을 밥 먹 듯 드나들던 타짜 중에 평경장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고수이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돈을 잃는 날이 별로 없지만 결코 많은 돈을 따려 하지도 않는다. 도박은 욕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도박판에서 욕심은 금물이다. 고로 도박은 절대 금물이다.
노인전문정신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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