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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연가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바위산(遊山) 2010. 5. 20. 01:23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춘기 시절, 서글픈 사랑에 감명받아 세번이나 읽었던 '괴테'의 '젊은베르테르의 슬픔' 은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고 자살신드름 현상으로 '베르테르의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끈 또 하나의 음악이 있으니, 바로 '글루미 선데이'다. 세남자와 한여자의 불행한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가뜩이나 잔뜩 가라 앉은 부다페스트의 하늘을 우울하게 만들어 놓는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로, 짧은 단편시를 서사시처럼 애잔하고 비극적인 사랑으로 묘사하여 놓았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자보' 와 그가 사랑하는 '일로나'와 '일로나'를 남몰래 사랑하는 가난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와의 삼각관계가 시작되며 서서히 불행은 싹튼다. 가난한 '안드라스'는 '일로나'의 생일에 좋은 선물을 구하지 못하고 '글루미 선데이' 라는 노래를 만들어 일로나를 감동시키고 '자보' 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일로나'를 바라보며 가슴 아파한다. 그무렵 독일의 사업가 '한스' 도 그녀에게 반하여 마지막 떠나는 날 사랑을 고백했지만 냉정한 그녀의 거절로 강물에 뛰어 들고 만다. 

 

사랑이 더욱 깊어진 '안드라스'와 '일로나'는 '자보'를 찾아가 둘의 사랑을 고백하려 하지만, '자보'는 '일로나' 를 전부 잃기보단 지금의 반이라도 지키고 싶다"며 자리를 피해버린다. 결국 두 남자는 '일로나'를 공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자보'는 알고 있다. '일로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럼에도 '자보'는 '안드라스'의 성공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안드라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점점 자신이 왜소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안드라스'의 성공에 환한 미소를 짓는 '일로나'와 '안드라스'를 위해 그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주며 함께 기뻐해준다. 어두운 빠에서 술병을 깨트리며 홀로 흐느껴 울면서도~~~

 

 

'안드라스'의 음악이 유명해질수록 자살자는 속출하게 되고, 3년만에 전유럽과 미국에 수백명의 자살신드롬이 일어나게 된다. 실제로 부다페스트에서는 이 노래로 하여금 연쇄자살이 꼬리를 물자 모든 음반을 회수하여 폐기처분하는 바람에 지금은 원본 음악을 구할 수 없다는 일화도 있다. 이로 인하여 정신과 육체가 황폐해져가는 '안드라스'는 자신의 음악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에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되고 늘 가슴속에 극약을 지니고 살며, 그 해답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 우울한 선율의 의문이 짙어질 때 독일의 히틀러는 부다페스트를 점령하고 강물에 뛰어 들었던 사업가 '한스'는 독일장교로 돌아온다. 양의 탈을 쓴 나찌 '한스'는 '일로나'로부터 또 다시 사랑을 거부당하게 되고. 유태인이었던 '자보'의 불안감은 마침내 '일로나'로 하여금 '한스'를 찾아가게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안드라스'는 그녀를 의심하게 된다. 그날밤 '한스' 는 작심한 듯 레스토랑을 찾아가 그곳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긴장의 끈이 팽팽해진 실내에 '한스'가 피아노 연주를 명령하지만 '안드라스' 는 두손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기만 한다. 그때 '일로나'가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안드라스'곁에서 악보를 보며 '글루미 선데이'를 부른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의 애처로운 눈빛에 연주를 시작한다. 두사람의 연주와 노래는 실내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한스' 마저 적의감을 사그라들게 한다. 연주가 끝나고 울려퍼지는 박수소리에 멎어버릴 것 같은 심장을 움켜잡고 주방으로 뛰어드는 '일로나', 그때  홀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린다. '한스'의 권총으로 '안드라스'가 자살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일로나'를 차지하려는 '한스'의 욕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유태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한스'의 계략은 '자보'를 매개로 제물을 탐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을 즈음 마침내 '자보'도 연행되어 가고 그를 구하기 위해 '일로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한스'를 찾아가지만 그 댓가로 몸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한스'는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고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역에서 '일로나'와 약속한 '자보' 대신 유태계 정치인을 구명해주며 전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가혹한 삶으로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고 연명되는 지리멸렬한 가냘픈 삶이기보다는 차라리 존엄한 죽음을 택하라고 '안드라스'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괴감과 질투심에 기인하여 자신을 향하여 피스톨을 당긴 '안드라스'와 유태인이라는 낙인과 사위어 가는 '일로나'의 사랑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간신히 연명하던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한 '자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일로나'는 세 남자 중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잉태하여 질긴 일생을 살아간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고, 유태인으로부터 엄청난 재물과 신분안전을 보장받은 '한스'는 전범재판을 교묘히 피해가며 오히려 유태인들의 존경과 엄청난 부를 양손에 거머쥔 채 평화로운 임종을 맞는다. 그의 유언은 '자보' 의 레스토랑에 운구되는 것으로, 그도 진정으로 '일로나'를 사랑한 것 같다. '부타페스트.의 레스토랑 밖에서는 '한스'를 추모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언론사들로 소란스럽다. 그러나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레스토랑의 주방에선 노파가 되어버린 '일로나' 의 '글루미 선데이'라는 콧노래가 나즈막히 흘러 나오고, 그 애잔한 선율에 와인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와 '일로나'를 껴안으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 젊은이가 있다. 

 

빼앗긴 사랑의 일부라도 붙들려고 한 처절한 자보. 사랑의 공유를 받아들였지만 끝내 일로나를 의심하여 자살한 안드라스. 거부당한 사랑에 죽음의 화신으로 변해버린 한스. 두 남자의 질투와 갈등에 절교를 선언하면서도 끝내 두 남자의 사랑을 끝까지 공유해버리는 그녀만의 이기적인 사랑방식은 미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양면적인 서글픈 모습으로 비친다. 이 영화에서 한 여인과 세 남자가 벌이는 비극적인 사랑의 모습은 어쩌면 인간의 내면 깊히 잠재되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사랑과 존엄이라는 단어가 놔리에 어른거리면서도 이 노래의 어떠한 부분이 그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는지, 진정 사랑과 존엄이었는지, 아니면 전쟁이 가져온 상실과 좌절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베르테르의 효과' 였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의구심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가슴 한구석이 휭하니 뚫린 듯, 허허로움으로 잠시 초점 없는 시간속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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