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충북 청주시 오동동이다.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지형이 용이 날라가는 형상이라 하여 "새비룡" 이라고도 부르고 신흥 부자농촌이라 하여 "새부롱"이라는 설도 있으나 자세히 알아 보지는 못하였다. 청주시라고는 하지만 도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시골이다.
청주로 진입하는 큰 도로에서 조금만 접어 들면 내가 살던 시골집이 나온다.
내가 살던 집은 작고 오래된 기와집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지었으니 50년은 넘은 것이 확실하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던 것을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때 다섯살이었던 남동생이 불장난을 하다 불이나서 기와로 바꿨다. 지금은 초라해 보여도 우리가 어렸을 적엔 시골에서 좋은 집에 들었다.
이곳에서 할머니와 부모님과 우리 6남매를 합하여 아홉식구가 오밀조밀 살았다.
오밀조밀한 시골동네에서도 조금은 언덕위에 외따로 있으며 집주변의 땅들이 모두 우리 것이다 보니 조금은 한적한 분위기도 풍긴다. 지금은 없어 졌지만 집앞에는 저수지가 있어서 여름이면 물고기도 잡고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며 지내다 보니 지금도 수영만큼은 자신이 있는 편이다.
겨울이면 저수지에서 얼음을 지치다 물에 빠지면 모닥불을 피워 양말을 말리곤 하다가 양말을 태워 먹어 어머니에 혼쭐이 나고는 했다. 옛날의 양말은 대부분 나이론양말이다 보니 불길만 다으면 빵구가 나곤 했던 것 같다. 앞마당가에 있던 물펌프는 수도로 바뀌었고 그 옆에 있는 화단은 여전하나 많이 초라해 진 것 같다.
집주변에는 유난히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많았었다.
지금은 대추나무는 병이 들어 모두 베어 버렸지만 감나무는 아직도 여러 그루가 남아 있다.
작황이 좋지는 않지만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리고 마당가나 집주위의 좁은 터마다 어머니가 텃밭을 만들어 놓고는 채소등을 심어 놓았다. 어머니는 늘 힘들고 귀찮아 하면서도 텃밭에 여러가지를 심어 놓고는 자급도 하고 자식들이 찾아 오면 바리바리 싸서 주고는 한다.
아버님은 공부는 많이 하신편이나 일하는데 있어서는 빵점이시다.
지금이야 원래 연로하시니 그렇다 하여도 기력이 좋으실때도 어머니의 여간한 바가지가 아니고서는
일손을 잡으려 하시지 않는다. 덕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남들보다 더 커진것은 아니가 싶기도 하다.
텃밭에는 없는 것이 없다. 계절에 맞추어 가꾸어 놓은 채마밭은 부실하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깃들어 있다.
얼가리 배추는 오랜 가뭄에 비실비실하고 그래도 김장배추, 무우 밭에는 아침마다 물을 퍼주어 조금은 싱싱한 기운이 돈다. 대파에 쪽파도 심고 그밖에도 계절따라 감자 ,상추등 없는 것이 없다.
호박과 들깨도 심고 콩과 시금치도 심어 놓았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리바리 싸줄 것을 챙기시고 또 챙길 것이 없나 텃밭을 돌아 보신다. 내고향 시골집은 이렇듯 연로하신 부모님의 사랑으로 초라하지만 정겨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 뿔뿔히 흩어져 객지에서 살아가는 우리 남매들의 그리운 고향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잡동사니 > 이것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별 호칭 및 기념일 (0) | 2010.10.16 |
---|---|
촌수 따지는 법 (0) | 2010.03.19 |
도량형 환산표 (0) | 2009.09.09 |
고사성어 모음집 (0) | 2009.04.19 |
저는 "주주" 입니다. (0) | 2005.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