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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되어 산화한 "고미영"

바위산(遊山) 2009. 7. 14. 12:46

 

  2009년 7월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다가 실종된 코오롱스프츠 소속의 산악인 고미영은 금년 41세의 나이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오은선(43.블랙야크)과 함께 국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 주자로 꼽히며, 동반자이자 경쟁자로 일취월장의 가도를 달리던 그는 자랑스러 대한의 딸임에 틀림이 없다. 히말라야 8천m급 14봉 세계 첫 등정이라는 기록을 만들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고미영과 오은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8천m급 봉우리 각각 11개와 12개에 올라 세간의 관심을 모아왔다.

 

 

  고미영은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후 소속사를 통해 "남은 3개 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떨치겠다"며, 14좌 등정에 강한 의욕을 드러낸 바 있다. 20년전 코오롱 등산학교로 산악에 입문한 고씨는 160cm의 키에 48kg의 자그마한 체구로 국내 여성스포츠클라이밍의 1인자로 활약했다. '95년 대한산악연맹대회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2002년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 등반부문 산악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제12회 아시아인공암벽등반대회 여자부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05년 파키스탄 드리피카(6천47m) 등정을 계기로 높은 산에 관심을 보이다, '06년부터 고산등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06년 10월 히말라야 초오유(8천201m) 등정에 성공하고 나서 '07년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천848m)를 정복했다. 그해 국내 여성산악인 최초로 8천m급 봉우리 3개를 연속 등정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지난해에는 해발 8천163m의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베이스켐프를 출발한지 이틀만에 무산소등정에 성공했다. 금년 5월에 히말라야 마칼루, 칸첸중가, 다울라기리를 연속으로 오르고, 낭가파르밧까지 오르면서 히말라야 8천m 이상 고봉 14개 봉 중 11개 등정에 성공했다. 고미영은 14좌 등정에 도전하려고 지난 겨울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체력을다졌다.

 

그러나 14좌 등정과 그랜드슬래머를 꿈꾸던 고미영은 낭가파르밧 정복 후 하산을 하던 중, 베이스켐프를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떨어진 체력을 감내하지 못하고, 만년설의 협곡아래로 꽃잎처럼 떨어져 장렬하게 산화하고 말았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작은 사랑을 키워왔었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장 에는 애틋한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녀는 "영원한 것이 없는데, 결혼이나 사랑으로 미래를 약속하려는 시도란 얼마나 우스운가"라고 말하다가도 "나는 이제 당신을 100일 동안 완전히 잊으려 합니다. 그러나 곰이 사람이 되는 데 걸린 100일이 지나도 당신이 잊혀지지 않는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용서하세요" 라고 써 놓아, 한 남성 팀원에 대한 애뜻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 것은 몇배 더 고통스럽다" "인생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 관련되어 살아 가기에는 너무도 짧다"고 하여 산에 대한 열정과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직 산악인의 길만을 달려오고 산악인으로 살려고 하였던 그녀는,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그녀가 가장 좋아 하던 만년설이 쌓인 산상에서 요절 하였지만, 그녀의 투혼만큼은 산을 좋아 하는 모든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그녀의 굴하지 않는 투혼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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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두 남녀가 설악을 오르다, 여자가 실족사를 하고, 홀로 남은 자의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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