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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 <의림지 얼음축제>

바위산(遊山) 2019. 2. 8. 11:06

의림지는 우리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힌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義臨堤)라고 표기하였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척(尺)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결(結)이나 되었다.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다. 상주의 공검지(恭儉池)나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는 물의 주입부에서부터 토사가 쌓여 작아진 것이다.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과 흙과 모래·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지되 제방 외면이 크게 단을 이루도록 하였다. 단면이 이중의 사다리꼴을 이루고 외면은 석재로 보강하였다. 지금은 원형이 사태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패어나간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 년 뒤에 박의림이 쌓았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가 수축하고 다시 1457년(세조 3)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복위운동에 대비하여 군사를 모으면서 호서·영남·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10년부터 5년 동안 3만여 명의 부역에 의해 보수하였던 것이 1972년의 큰 장마 때 둑이 무너지자 1973년에 다시 복구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둘레가 약 2㎞, 호수면적은 15만 1,470㎡, 저수량은 661만 1,891㎥, 수심은 8∼13m이다. 현재의 몽리면적은 약 300정보에 이른다.

수리관개뿐만 아니라 유서깊은 경승지로 이름이 있으며, 충청도지방에 대한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방과 호수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섰고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가 있으며, 이곳 특산물로는 빙어가 유명하다.

의림지는 물이 차고 맑아 속이 보인다는 공허 특산지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을 하였다고 한다. 제천의 의림지에서 얼음축제가 열리고 있다. 아쉬움이라면 포근해진 날씨 때문에 얼음이 녹아 무너진 곳도 있고 본 저수지에는 위험하여 출입을 금지해 놓았다. 이림지는 제방에 늘어선 아름드리 노송군락이 풍치를 ㄷ하는 곳이다.

눈썰매장



의림지 박물관






 


































얼음썰매장












인공폭포












빙어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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