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끄적휘적

흥부가 우는 까닭이란?

바위산(遊山) 2006. 7. 12. 02:11

 

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며 흥부와 놀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일반인들에게서도 그러한 경향이 많지만 전문가인 문학인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왈가왈부하며 흥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놀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맞닥트리며 팽팽한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배우고 느꼈던 흥부에 대한 막연한 동정과 애정이 지워지고 수백 년을 이어오던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교훈을 무색하게 하면서 불과 사십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우리사회의 엇갈린 인식과 견해의 차이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토록 한다.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흥부와 놀부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대하여 들은 대로 본대로 아래와 같이 대충 정리해 보았다.

 

 

흥부의 노력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견은 흥부는 짚신을 만들어 팔고 흥부의 부인은 삭바느질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주장하며, 부정적인 의견으로는 흥부는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무기력하며 게을렀다고 주장한다.

형제의 재산분배에 있어서도 빈털터리로 쫓겨나면서도 흥부가 재산분배를 요구하지 않음에도 그 시대의 관례로 보아 장남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놀부옹호론과 흥부도 일부분 상속받는 것이 옳다는 놀부 비판론자도 있다. 흥부의 경제력에 대하여 농경시대에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는 옹호론자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였으면 소작이라도 하여서 재산증식을 꾀했어야 한다고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흥부는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니 무계획 적이고 의타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흥부의 남을 돕기 좋아하는 봉사심에 있어서도 원래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을 잘 도와준 것은 극히 칭찬하여야 할 일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들과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면서 남을 돕는 것은 옳지가 않다는 비판론자도 있다.

놀부가 재산관리를 잘한 것에 대해서도 유교적 논리를 깨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증식시킨 것은 기업가 정신이 있다고 호평하는 사람과 부모가 남긴 많은 재산을 혼자 차지하고 소작을 주고 소작료를 받으며 살았으므로 노력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부러트리고 얻은 박을타다 화를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데 대해서도 그의 집념과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요행을 바라며 무모한 박타기를 계속하는 것은 노력이라 볼 수가 없다는 평가도 있으며 놀부의 욕심이 흥부를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역할이다는 주장하는 놀부 옹호론자와 놀부의 욕심은 단순한 자기탐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흥부의 다산은 생명존중의 인본주의적이며, 지먹을 것은 지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옹호론과 부양능력이 없으면서 산아제한을 하지 않은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밖에도 많은 이견이 있는 줄 알지만 이정도로 하자.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평가와 함께 위내용에 대하여 긍정도 반론도 제기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지금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란에 대하여 조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식상하기도 하였지만 무엇이 우리사회를 이렇듯 분열하여 논쟁토록 하는가에 대하여는 다시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흥부와 놀부는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비교적 넉넉하게 살았다. 그러다 놀부가 분가를 주장하지만 흥부가 반대를 한다. 결국 놀부의 강권에 의하여 재산의 분배 없이 흥부는 쫓겨나게 된다. 이 강권에 의한 분가과정을 보면 재산분배에 있어서도 놀부옹호론자는 시대적 상황으로 장남이 전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장남이 더 많이 상속 받기는 했지만 차남이하에게도 일정한 재산을 물려주고 분가를 시켰지 맨몸으로 내쫓고 장남이 다 자치하는 것은 놀부가 탐욕스러움으로 형제간의 정리를 파괴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흥부 비판론자들을 보면 흥부가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의타적이며 비굴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흥부가 과연 게을렀는가? 흥부는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열심히 살았다. 무자본으로 짚신을 생산 판매하고 아내는 삭바늘질로 하는 등 경제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놀부옹호론자들은 소작이라도 하여 재산을 증식시켰어야 한다고 하나 그 시대에 소작으로 소작료로 바치고 나면 굶기가 십상인데 재산을 모을 수 있겠는가?


흥부의 무책임을 논하는 것은 다산(多産)을 뜻하는 듯하다. 책임지지 못하고 자식을 많이 나아 고생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산아제한의 어려움과  농경시대에 노동력을 확대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으며 자식은 또 하나의 재산이었다. 평균수명이 짧고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것에 비하여 가난하지만 잘 키워낸 것을 볼 때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흥부의 의타 성을 말함은 식량이 떨어져 놀부에게 양식을 얻으러 감을 비판하는 듯하다. 흥부가 평소에 놀부에게 뻔질나게 양식을 얻으러 간 것이 아니고 열심히 살았지만 피치 못하여 찾아 간 것을 의타적이라 논하는데 놀부옹호론자들의 논리에 의하자면 흥부는 놀부에게 엄연한 재산분배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함이 옳을 진데 급한 대로 양식만을 지원 받고자 한 것은 흥부의 형제애와 양보에 의한 대인적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스스로 자립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하여야 할 것이다.


대부분 놀부 옹호론자들은 놀부가 합리적이며 성실하다, 가족계획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흥부전에 보면 놀부는 어릴 적부터 고약하고 남을 골탕 먹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특히 놀부가 합리적이며 성실하다는 함은 그의 재산형성과 보존에 대한 평가를 높이하나 재산형성은 흥부의 목까지 강제로 빼앗은 횡령이나 갈취의 행위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며 재산이 줄지 않고 보존함을 성실을 논하나 그는 어데 에서 보아도 열심히 일하거나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를 않는다.

 

 

놀부의 가족계획에 있어서도 그가 산아제한을 한 적이 없으며 그의 부의 정도로 보아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심술과 욕심 등 인간성으로 보아 자식 복이 없어서 자식을 적게 두었다고 봄이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엇갈린 평가가 많은 듯하나 수백 년을 권선징악의 상징으로 상생의 근본으로 전해 내려온 흥부전은 급격한 산업화와 물질만능주의에 휩쓸려 새로운 평가대상으로 떠올라 있다. 그러나 보존하여 좋은 것이라면 보존하여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졌다고는 하나 되지도 않는 이유로 흥부를 쥐어뜯고 놀부를 옹호하는 행동이야말로 놀부만도 못한 사람들의 자위적 행동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의 각박함 속에서는 흥부의 장점을 주입시켜 순화함을 목적으로 하여야 할 시점에 흥부 조지기는 이기의 극치가 아닐는지? 제비의 도움으로 부자가 된 후에도 남을 도와주겠다고 외치는 흥부의 나눔의 정신이야 말로 현대사회의 복지와 분배를 스스로 행하는 장려하여야 할 훌륭한 기여문화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물른 놀부옹호론자들의 논리에서도 성취욕 등 이 시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타당성이 없지는 않으나 문학이 사회를 순화하는 그 본질의 훼손을 염려하는 바이며, 흥부의 그 순수함과 노력과 인정을 다 헛되게 하여 각박하게 변질되어 가는 이 시대를 통탄하게 만들고, 수백년 비판의 대상으로 주눅들었던 놀부가 벌떡 일어나 테크노 댄스를 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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